방안에 모셔 두었던 호박을 써니 단내가 물씬 풍겨 옵니다.
"아, 색깔 참 곱다. 죽으로 끊여 먹으면 참 맛나겠다."
늙어 구부정한 손으로 호박을 다듬던 '할매'는 이렇게 연신 같은 말을 합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머리맡에 두고 본 노오란 호박. 호박꽃 피는 올 여름이 벌써 기다려 집니다. ( 다음은 함민복 시인의 '호박'이라는 시 입니다.)
호 박/ 함민복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바라다보면
방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하네
최선을 다해 딴딴해진 호박
속 가득 차 있을 씨앗
가족사진 한장 찍어 본 적 없는 나(我)라
호박네 마을 벌소리 붕붕
후드득 빗소리 들려
품으로 호박을 꼬옥 안아 본 밤
호박은 방안 가득 넝쿨을 뻗고
코끼리 귀만한 잎사귀 꺼끌꺼끌
호박 한 덩이 속에 든 호박들
그새 한 마을 이루더니
봄이라고 호박이 썩네
흰곰팡이 피우며
최선을 다해 물컹쿨컹 썩어 들어가네
비도 내려 흙내 그리워 못 견디겠다고
썩는 내로 먼저 문을 열고 걸어 나가네
자, 出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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