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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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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
  • 의약뉴스
  • 승인 2014.02.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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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멸시는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일도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원제: Angst Essen Auf Ali :Fear Eats The Soul)는 그 같은 따돌림을 극복하고 사랑을 하는 늙은 여자와 젊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모로코에서 일하러 독일로 온 근육질의 알리( 엘 헤디 벤 살렘: 파스빈더 감독의 동성 애인이라고 한다.)는 2교대 청소부로 근무하는 에미( 브리기테 미라)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나이 차이가 20년이 넘고 인종도 다른 두 남녀의 사랑에 우여곡절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누구나 할 만하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에미는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는 술집으로 잠시 몸을 녹이러 들어간다.

차가운 시선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금발의 육체파 술집 여종업원은 거만하게 에미를 대하고 술집안의 사람들 모두 야멸찬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에미는 아랑곳 않고 콜라를 시키고 춤을 추자고 다가온 알리를 거부하지 않는다. 벌판같이 널찍하고 산처럼 큰 알리의 품에 안긴 에미는 검은 턱수염이 피부를 더욱 검게 만드는 알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는지 묻는다.

알리는 내려다보면서 대답한다. 모로코는 멋진 곳이지만 일자리가 없다. 카센터에서 한 2년 쯤 죽도록 일만했다. 에미가 맞받는다. “저랑 똑같군요. 저도 평생 일만 했어요.”

처음부터 죽이 척척 맞는다. 춤이 끝나고 에미는 알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독일에서 아랍인은 인간적 대우를 못 받고 개 취급을 받는다는 알리의 고백에 마음이 아픈 것이다.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는 모정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커피와 브랜디를 마시며 두 사람은 서로 외롭고 불안하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다.

제 갈 길을 떠난 3명의 자식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휴가 때나 한 번 볼까 말까하고 평생을 청소부로 지내야하는 에미나 먼 이국땅에서 노동이 끝나면 술 먹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알리의 생활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서로 신세 한탄을 하다 보니 막차가 끈길 시간이고 에미는 한 방에서 6명이 자는 알리가 불쌍해 자고 가라고 권한다.

샤워를 마친 알리의 벌려진 셔츠 사이로 구릿빛 몸이 당당하다. 책을 보고 있던 에미는 알리가 손을 뻗어 쓰다듬는 팔뚝에 손길을 느끼며 그와 꿈같은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여자는 거울을 본다.

쭈글쭈글한 얼굴의 주름을 만지며 “이렇게 내가, 나 같은 늙은 여자를...”하면서 흐느낀다. “마음만 착하면 된다”고 위로하는 알리.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여자.

알리는 여자를 달래며 불안해 하지 말라, "불안은 영혼도 잠식한다"는 말이 있다는 아랍 속담을 인용한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는데 이웃집 여자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이전부터 깜둥이는 아닌데 왠 시커먼 외국인과 같이 들어가는 것을 본 옆집 여자가 노려본다. 에미의 가슴이 처렁하고 내려 앉는다.

어느 건물의 계단에서 에미가 청소부들과 식사를 하는데 “구역질나는 족속, 너절한 인간말종” 등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동료들의 소리를 듣고 놀란다. 하지만 에미는 사랑으로 가슴이 충만해 있다. 결혼한 딸의 집으로 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한다. 모로코 사람이고 나보다 20살 어리다고. 딸과 언쟁을 벌이던 사위( 파스빈더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는 잠시 싸움을 멈추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첫 날 밤 후 알리는 에미를 찾지 않는다. 불안한 에미는 술집에 가보지만 그곳에도 알리는 없다. 늦은 밤 힘없는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는데 거기에 알리가 기다리고 있다.

하아, 이런 기분 다들 한 번씩을 해봤을 것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간다.

서로 괜찮은 생각인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아랍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춤을 추고 다음 날 뭰헨 호적 사무소에서 결혼신고를 하고 손잡고 거리로 나선다.

히틀러도 찾았던 유명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최고급 요리를 먹고 두 사람의 행복은 최고조에 이른다.

꼭대기에 올랐으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자식들은 결혼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하고 아들은 추한 어머니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발로 차서 부순다.

쇼파에 앉아 우는 에미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알리. 이처럼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은 아랍음식을 먹고 싶다는 알리와 만들기 싫다는 에미의 사소한 다툼으로 멀어진다.

천국의 한 조각이라도 살 수 있는 것 같은 행복에 빠졌으나 음식으로 멀어지고 알리는 옛 애인인 술집 여자의 집을 찾아 간다.

식료품점 주인은 오랜 단골을 거절하고 집주인은 경찰을 부르고 이웃은 남녀를 짐승처럼 대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차별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두 사람에게 조금 살갑게 대한다.

텔레비전을 박살낸 아들은 자기 자식을 봐 달라며 어머니를 찾아오고 가게 주인은 장사를 위해, 이웃은 에미의 넓은 창고가 필요해 손을 내민다.

알리가 일하는 카센터로 찾아가 모욕을 받았던 에미는 처음 만났던 술집에서 알리와 춤을 추면서 화해하는데 알리는 급성 위궤양으로 병원으로 실려간다.

감독의 말마따나 행복은 항상 달콤하지 않다. 이 영화는 전후 독일에서 벌어진 좀 과장된 인종차별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하를 적나라하게 그려 큰 화제를 모았다.

남자 주인공 알리의 원래 이름은  '앨 해다 설램 바렉 모하매드 무스타파'라는 긴 이름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알리로 통한다. 당시 독일에서는 피부가 검은 외국인 노동자를 모두 알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국가: 독일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출연: 엘 헤디 벤 살렘, 브리기테 미라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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