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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잃어버린 주말(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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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잃어버린 주말(1945)
  • 의약뉴스
  • 승인 2013.11.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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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친 눈은 조금 떨렸지만 이내 선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오후의 햇살이 열린 문틈을 통해 얼굴을 비추었고 나는 비로소 남자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보았다. 놀라지도 그렇다고 기분 좋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가 안방에서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미안하면서도 만족스런 모습으로 술병을 들고 사라지는 뒷모습은 그저 그랬다.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고 두 사람이었는데 둘 다 두어 번 나에게 들켰다. 그때마다 그들은 예의 똑같은 표정, 미안해하면서 기쁜 얼굴을 했는데 나는 그 미묘한 얼굴의 변화를 알아챘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나 나는 그들이 알코올 중독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잃어버린 오후'(원제: the lost weekend)를 보면서 나는 내내 어린 시절 우리집 안방에서 술병을 들고 행복해 했던 이웃 남자의 기억나지 않는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8살쯤 이었던 나는 그 때 어른들이 ‘술병이 났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알코올 중독에 대한 나의 기억은 말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돈 버냄( 레이 밀랜드) 역시 당시 나에게 들킨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술병을 들면 행복했고 술병이 없으면 불안했다.

화면은 뉴욕의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어느 빌라의 열린 창문으로 향하는데 창밖에는 술병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돈은 자신을 돌보는 동생 윅 버냄( 필립 테리)과 주말 동안 시골농장에 가기로 했지만 정신은 온통 창밖의 술병에 가있다.

몰래 가방에 술을 담기 위해 동생을 속이려 하지만 들키고 만다. 그 모습을 애인 헬렌 (제인 와이만)이 지켜본다. 그가 시골농장에 가지 않고 술집에 있을 거라는 것은 짐작한대로다.

3시 15분 기차 대신 6시 30분차를 타는 남는 시간 동안 그는 동네의 바에서 술을 마신다. 이후 영화는 술을 마시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돈과 그를 말리려는 윅과 헬렌의 눈물겨운 사투로 채워진다.

술을 먹기 위해서라면 돈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 여자의 지갑을 훔치는 절도를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돈을 꿔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가 그렇게 해서 원하는 술을 먹을 수 있을 때 그는 행복하다. 코넬대 시절에는 천재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학교도 때려 치고 걸작을 쓰기 위해 소설가의 길을 가려고 했을 때 그의 길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준 타자기를 저당 잡혀 술을 먹으려고 멀고 먼지 나는 3번가를 헤매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소름 끼치는 알코올 중독의 폐해에 주인공처럼 몸부림친다.

죽기로 작정한 그는 권총을 사지만 그 권총마저 저당 잡히고 술을 먹는다. 정신병동을 탈출한 그는 정말 죽을 결심을 한다.

헬렌의 옷을 맡기고 맡겼던 총을 찾아온다. 그리고 자살을 하려는데 헬렌이 그에게 술을 권한다. 반전이다. 늘 말리기만 했는데 이제는 말리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죽는 것보다는 술 취하는게 낫다고 이제는 먹으라고 애원한다.

돈은 술을 마시는 대신 담배꽁초를 술잔에 던진다. 해피 앤딩이다. 그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멋진 소설을 쓰고 서점에는 그의 책이 산더미처럼 쌓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극장을 빠져 나오는 관객들은 중독자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내 꽁초를 꺼내고 술을 먹는 돈의 모습을 그려내는 관객도 그만큼 있고 이런 관객은 소설 제목으로 'The bottle' 이라고 써 놓고 더 이상 다음 문장을 잇지 못해 괴로워 하다가 다시 술을 찾는 돈의 모습에 괴로워 할 것이다.

넘친 술이 잔의 모양을 따라 멋진 원을 그리고 원들이 모여 오륜마크를 그려낼 때 돈은 행복하다. 회전목마를 타면 돌기를 멈출 때까지 못 내리는 것처럼 돈은 목숨이 끊어져서야 술을 끊을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은 당시에 있었던 윤리적인 제제로 어쩔 수 없이 좋은 결말을 그려냈다. 당시 주류업계의 반발이 엄청났다고 한다. 지금 봐도 이 영화는 무섭고 처절하다. 벽을 뚫고 나오는 생쥐와 생쥐를 잡기 위해 날아다니는 검은 박쥐의 환각에 시달리는 금단증상은 소름끼친다.

술과 관련된 이전의 영화는 대개 코미디 소재로 쓰였거나 웃음이나 행복을 주는 요소였을 뿐이다. ‘잃어버린 오후’ 이후에 나온 모든 알코올 중독에 관한 영화는 이 영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영화로 기록된다. 아카데미 작품, 감독, 극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국가: 미국

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레이 밀랜드, 제인 와이만, 필립 테리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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