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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이웃집 토토로(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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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이웃집 토토로(1988)
  • 의약뉴스
  • 승인 2013.10.1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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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를 걷어 부치고 구부린 허리로 모를 심는다.

머리에는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두건을 쓰고 일렬횡대로 모여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모내기철이다. 하늘은 높고 신록은 푸르다. 까까머리 옆집 아이는 제 머리통 보다 큰 모자를 썼다. (생김새와 모양이 같은 그 모자를 나는 중고교 시절 6년간 썼다.)

한국의 70, 80년대 시골 풍경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 안내양에게 차비를 내는 것도 익숙하고 바가지로 물을 붓고 펌프질 하는 우물도 비슷하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배경은 한국이 아닌 일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원제: となりの トトロ)는 주인공이 쓰는 말만 다르다면 한국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한국정서와 흡사하다.

친절한 할머니, 어쩌다 오는 우체부, 숲속에서 사는 신비한 정령 이야기 등 어느 것 하나 닮지 않은 것이 없다. 어쨌든 사츠키( 목소리: 히다카 노리코 )와 메이(목소리: 사카모토 지카) 자매는 낡은 트럭을 타고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온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아버지는 연신 기분이 좋은데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없어도 아이들은 말 그대로 아이들이다. 도깨비가 나오는 집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오래된 주택이지만 산이 있고 들이 있는 문 만 열면 온 세상이 정원인 곳에서 도토리를 주우며 신나게 뛰노는데 정신이 없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언니 사츠키가 학교에 간 사이 메이는 숲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 뒷산으로 가는데 거기서 배가 불뚝 튀어나와 올라타면 푹신한 산천초목에 사는 정령 토토로를 만난다. (하늘에 닿을 듯 엄청나게 큰 숲의 주인 녹나무가 토토로가 사는 곳이다. 먼 옛날부터 이 나무는 사람과 친구였다.)

버스를 놓친 아버지를 기다리다 늦은 밤 우산을 빌려 주는 사츠키도 토토로와 대면한다. 이들 자매와 토토로가 서로 친한 그것도 아주 친한 친구가 되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심전심 서로 통한다. 그러니 시골 생활은 더 없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놀기만 하면 영화는 싱겁다.

 

부재중인 엄마가 등장해야 하는데 엄마는 눈치 챘겠지만 아파서 산 넘어 요양원에 있다. 집에서 걸어서 세 시간은 가야 하는 먼 곳에 있으니 아이들이 매번 찾아가서 만나기도 어렵고 환자가 집에 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 날짜를 정해 놓고 만나기로 했는데 엄마는 약속한 날에 병세가 악화돼 오지 못한다. 한 번은 아빠가 없는 사이 요양원에서 급한 전보가 오기도 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쯤 가져 봤을 만한 두려움에 떤다. (엄마가 죽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혹시나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아이들이 너무나 순진하고 귀엽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삶과 죽음이 영화의 가장 큰 갈등이다.

엄마를 보고 싶은 메이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나고 동네사람들이 찾아 나서지만 메이는 없다. 하늘은 석양으로 붉게 물들고 마을 저수지 같은 곳에 메이의 신발이 발견된다.

긴 장대미로 혹시 빠져 죽었을지도 모를 메이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찔러 보는데 사츠키가 메이의 신발이 아니라고 확인해 안도의 한 숨을 쉰다. 날이 저물고 갈래 길은 많은데 메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때 토토로와는 다른 또 다른 정령이 나타난다.

발이 여러 개 이고 눈에는 자동차 서치라이트 보다 밝은 빛을 품는 고양이 버스다. 고양이는 날아다닐 수도 있으니 하늘로 올라서 메이를 쉽게 찾는다. 고양이를 탄 자매는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날아간다.

창가에는 엄마와 아빠가 웃고 있다. 위중해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고 병세가 회복되고 있다는 조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갈등이 해소 됐으니 영화는 끝이다.

잘 만들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아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에게는 잃어버렸던 것에 대한 추억을 되살린다. 이 영화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의식에 일침을 놓는 발언을 해 양심이 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까지 있으니 세상의 후배 감독들은 한 가지를 더 본받아야겠다. (한편 2013년 나온 ‘바람이 분다’는 전범을 미화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감독은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기로 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번 은퇴 선언은 세 번째다. ‘센과 히치로의 행방불명’( 2002) 등 무수한 걸작 애니를 남겼다.

국가: 일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목소리) 히다카 노리코, 사카모토 지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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