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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특전 유보트(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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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특전 유보트(1981)
  • 의약뉴스
  • 승인 2013.10.0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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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를 뚫고 해수면에 무언가 소리 없이 올라온다.

상어 같기도 하고 숨을 쉬기 위해 올라오는 거대한 고래 같기도 하다. 비스듬히 머리부터 올라오는데 좀 더 올라오자 공격용 기관단총이 보인다.

잠수함이다. 연합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특전 유보트다. 소리 없이 다가와 어뢰를 발사하고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바다의 제왕.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특전 유보트( 원제: das boat)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잠수함에 관한 영화이다. 좁은 공간에서 수 십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죽음과 마주하면서 벌이는 공포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군인들의 이야기다.

전쟁 상황이니 당연히 싸움이 있고 죽고 죽이는 잔학행위가 펼쳐진다. 하지만 노골적이지 않다. 영화는 그저 잔잔한 파도처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간혹 파도가 일면 격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전체 흐름은 조용하다.

그것이 관객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조용하니 언젠가는 소음이 일 것이고 그 소음의 강도와 결과에 대해 미리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이런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대서양의 망망대해.

 
지루한 대기 시간 끝에 영국해군과 첫 교전이 벌어진다. 비상, 비상. 좁은 선실에 긴장감이 흐른다. 잠망경으로 수면을 관찰하던 선장(위르겐 프로크 노브)은 상승을 명령한다.

잠수함은 다시 지상으로 떠오른다. 수송선이 촘촘이 떠 있는데 이를 호위하는 구축함은 보이지 않는다. 선장은 유보트를 최대한 접근시켜 어뢰를 발사한다. 명중이다. 첫 전투를 승리로 마감한 유보트는 추격을 피해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한다.

90미터인 한계치를 넘어 수압을 감당할 수 없는 280미터 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땀을 흘리는 병사들의 시선은 승리의 환호보다는 닥쳐올 수중폭뢰에 대한 공포로 일그러지고 죽어서 나라를 지킨다는 애국심보다는 살아서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간혹 상층부를 비난하는 말도 한다. 우리 군 수뇌부는 처칠의 새 별명을 찾는 데만 골몰한다. 술 취한 돼지, 뚱보, 중증 환자. 그런데 환자가 싸움은 잘한다고 비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상부의 명령은 계속되고 병사들은 죽어서야 고향에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극도의 피로를 느낀다. 수중폭뢰가 떨어지고 잠수함은 고장을 일으킨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잠수함에 물이 차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햇빛을 보지 못한 날이 보름이 되고 나침반도 고장 나 정확한 위치도 모른다. 다행히 잠수함은 수리를 마치고 제 기능을 찾는다.

선장은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온다. 깊고 푸른 밤이다. 아니 붉은 밤이다. 어뢰를 맞은 수송선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뱃전에 남아있던 영국군들이 불에 탄 채 바다로 떨어진다.

일부는 잠수함을 향해 수영해 오지만 선장은 뒤로 물린다. 승리의 기쁨보다 참혹한 죽음에 대한, 전쟁에 대한 깊은 회한이 몰려온다.

유보트는 스페인의 '비고'에서 잠시 정박해 물품을 챙기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는다. 잠시 이들은 푸짐한 음식과 술로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곧 영국 함대의 근거지인 지브롤터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내가 아픈 병사와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중위는 집으로 가라는 명령이 취소된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이들은 다시 바다로 나온다. 전투함이 가득한 지중해는 바늘구멍처럼 통과하기가 어렵다.

명령이니 수행해야 하고 그것이 군인이 해야 할 일이니 죽기에 딱 좋다는 자조 섞인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해류를 따라 적의 음파탐지기를 피하기 위한 선장의 작전은 생각처럼 먹히지 않는다.

잠수함은 고장을 일으켜 침몰 직전이다. 물이 차고 산소는 부족하고 모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군기를 어겨 군법회의에 회부될 위기에 처한 병사와 합심한 선원들은 잠수함의 물구멍을 막는데 성공한다.

절망과 희망 죽음과 삶이 순간 교차한다. 수면위로 떠올라 모여서 숨을 쉰다. 공기를 마시고 달콤한 음악을 듣는다. 술 마시고 노래한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 있다.

환영인파가 부두에 나와 있다. 꽃이 있고 나치 깃발이 선명하다. 안도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그 때 비상 사이렌이 울린다. 전투기가 환영인파에 기총소사를 한다. 폭탄이 떨어진다. 부두는 일순 아수라장이 된다. 선장이 죽는다.

동료병사들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피를 흘린다. 눈을 감는 선장의 시야에 잠수하는 잠수함이 보인다. 축제는 가고 죽음은 남았다. 극적인 반전에 느슨했던 공포감은 분노로 바뀐다.

유보트를 응원했던 관객들은 허망함으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쌀 수밖에 없다. 특전 유보트는 이래서 위대한 영화의 목록에 이름을 남겼다. 하이 히틀러를 외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조국을 위해 몸 바치는 뻔한 애국심은 없고 밀실에 갇힌 인간의 삶과 전쟁반대가 영화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국가: 독일

감독: 볼프강 페터슨

출연: 위트게프로크노브, 헤르베르트 그뢰네마이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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