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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애니 홀(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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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애니 홀(1977)
  • 의약뉴스
  • 승인 2013.08.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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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게 손잡은 남녀가 수줍게 웃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순이와 우디 알렌이다. 두 사람이 익숙한 것은 순이가 한국계이며 우디 알렌의 입양아인 동시에 그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97년 결혼했고 나이차는 35살이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주름진 얼굴에 노인티가 역력하며 예의 둥근 뿔테 안경의 우디 알렌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순이는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여전히 부부인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며칠 전 시사회장에 나타난 이들의 사생활에도 조금 관심이 있는 듯 했다. ( 사진을 보고 나니 그의 영화를 더 늦기 전에 소개해야 했다.)

어쨌든 바로 그 우디 알렌이 만든 영화가 '애니 홀'( 원제: annie hall)이다.  애니 홀은 한 마디로 ‘떠벌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끝임 없이 조잘대는 앨비 싱어(우디 알렌)와 그의 상대녀 애니 홀(다이안 키튼)이 적절히 맞장구치는 ‘수다’ 영화라는 얘기다.

 
농담에서 시작해서 농담으로 끝나는 이 의미 없는 것 같고 아무런 메시지도 없는 것 같은 영화에 지식인을 자처하는 뉴요커들의 호응이 대단했으니 뭔가가 있기는 있나 보다.

앨비는 방앗간의 참새보다도 더 조잘댄다. 조잘대는 대회라도 있다면 그랑프리는 그가 당연히 수상해야 옳다. 물론 2등상은 애니다. 애니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입담꾼인데 둘 다 바다에 빠져 죽으면 속된 말로 입만 둥둥 떠서 다닐 것 같다.

말꼬리를 잡으며 순간마다 내가 이렇게 재치 있다는 듯 지적인 것 같은 말을 마구 쏟아내는 못생기고 비쩍 마른 이런 남자에게 예쁘고 귀엽고 상냥하며 정말 지적인 애니가 그의 섹스 파트너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영화이니까 가능한 설정이다. 현실에서 이런 떠벌이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아마도 우디 알렌은 치명적인 이런 약점을 영화를 통해서나마 이겨내 보려고 각본을 쓴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생각은 틀렸다. 영화가 아닌 실제에서 두 사람은 연인이며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각설하고 앨비의 바람처럼 가벼운 우스갯소리와 말도 안되는 개똥철학, 웃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웃어주며 말꼬리를 받아주는 애니는 그와 일순간은 천생연분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헛소리를 일삼는 저런 남자와 도망치지 않고 같이 살면서 좋아라고 웃어주는 여자도 있다니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 선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다는 영화가 끝나야 끝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시나리오라는 말은 애니 홀을 보면서 절실히 느낀다. 수다를 받쳐주는 또 다른 수다가 없다면 이 영화는 시간과 함께 소리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애니 홀을 기점으로 수많은 떠벌이 영화들이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최고의 수다 영화는 애니 홀이다. 떠벌이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면서 애니의 연기는 물이 오른다.

아카데미가 그에게 여우주연상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작품 감독 각본상도 받았다.)

뉴욕을 사진으로만 본 숱한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번쯤은 센트럴 파크나 허드슨 강가 혹은 맨하튼의 뒷골목을 걸으며 수다를 떨고 싶다면 그것은 순전히 수다와 떠벌이가 뉴욕에서는 먹힌 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뉴욕의 잘난 사람들이 감동하고 우쭐해하는 영화 애니 홀은 심심풀이 땅콩을 먹으며 보아도 되고 안 봐도 되지만 다이안 키튼 같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여자친구가 있다면 부디 한 번 보시라. 옆에 있는 내 남자 친구가 ‘또라이’가 아닌 것에 감사할 것이다.

우디 알렌은 이 영화로 할리우드의 거목으로 우뚝 섰다.  1979년에 나온 걸작 '맨하탄' 이후 2011년에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만들기도 하는 등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힘은 잠자리 수다에서 나왔을 것이다.
 

국가: 미국
감독: 우디 알렌
출연: 우디 알렌, 다이안 키튼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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