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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햄릿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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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햄릿 (1948)
  • 의약뉴스
  • 승인 2013.08.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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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를 잃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성인의 말이 맥이 없고 정치인의 언어가 시정잡배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거늘 오늘날의 언어는 집밖을 나와 뒷골목을 헤매고 있다. 거친 말이 난무하니 세상은 험난하고 다툼은 끊임이 없다. 햄릿처럼 독백하고 햄릿처럼 멋진 말을 쓴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여유 있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올까.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햄릿’을 만든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햄릿(원제:hamlet)은 햄릿의 멋진 독백만 들어도 손해 보지 않는 영화다. 물론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어도 좋지만 잘 생긴 배우들의 벌린 입, 혹은 다문 입을 보면서 듣는 대사는 한 편의 시이며 자연이고 강물이다. 가령 이런 말을 보자.

“그대가 말을 할 수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 이 견고한 몸뚱이 녹고 녹아 이슬이 되어 다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이니라. 슬픔을 타고 오는 배편이 있거든 소식이나 전해다오. 돛이 바람을 가득 안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 사자의 힘줄처럼 온 몸의 핏줄에서 기운이 솟아나고 있다. 다른 기억 모두 지우고 당신이 명령한 말만 기억하겠다. 내가 기이한 행동을 하면 자네들은 “우리는 알지” 혹은 “말 못할 것도 없지” 와 같은 애매한 말로 무언가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 말라. 어째서 밤은 밤이고 낮은 낮인지 따지는 것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설혹 진리는 의심할지라도 내 사랑은 의심하지 마라. 다 맞는 말이지만 일일이 열거하니 점잖지 못하다. 보낸 분의 마음이 변하면 그 선물도 초라해진다. 여자들은 분을 쳐 발라 신이 주신 얼굴을 딴 판으로 만들고 간드러지게 걸으면서 음탕한 짓을 하고도 딱 잡아뗀다.
결혼을 하려거든 바보와 하라, 현명한 남자는 결혼하면 괴물이 된다. 이미 결혼한 사람은 한 쌍만 빼놓고 살려 둬야지.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조심성 때문에 우린 모두 겁쟁이가 되고 혈기 왕성하던 결심에도 창백한 병색이 드리워진다. 배우들은 시대의 척도요, 짧은 연대기다. 묘비명이야 어떻게 되든 생전에 구설에 오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받을 자격이 모자랄수록 선심이 빛난다. 예나 지금이나 연극의 목적은 자연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다. 그들의 비난은 수많은 관객의 칭찬보다 몇 배 더 중요하다. 저게 서문인가, 정말 짧군. 여자의 사랑처럼. 살인으로 얻은 이득을 아직도 움켜쥐고 있다. 천당을 발뒤꿈치로 걷어차고 시커먼 지옥으로 굴러 떨어진다. 황후이며 시동생의 아내 그리고 내 어머니.
손만 쥐어짜지 말라, 가슴을 쥐어짜 주겠다. 오늘 밤 참으면 내일 밤 참는 것도 쉬워진다. 모레는 더 쉬워진다. 오늘일은 알아도 내일일은 모른다. 네가 큰 소리 치면 나도 큰 소리 친다. 육감은 안 믿어, 운명은 정해져 있다.”

 

인용한 말들을 읽다보면 화낼 일도 참게 된다. 원전에 충실했으니 영화의 내용도 수준작이다. 왕관과 형수가 탐나 친형을 독살하고 왕이 된 왕(바실 시드니) 과 왕의 조카 햄릿(로렌스 올리비에)에 대한 이야기가 고성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펼쳐진다.

성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 같은 영화가 마치 고요한 절간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눈에 속속 들어온다.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한 삼촌에 대한 복수, 햄릿과 오필리아 (진 시몬스)의 사랑,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왕의 고문관(펠릭스 아일머)을 죽인 햄릿과 그로 인해 자살하는 오필리아. 오필리아 오빠(테렌스 모간)와 햄릿의 결투.

끝내 왕과 오빠를 죽이고 엄마마저 죽는 비극. 상대의 계략 때문에 독이 묻은 칼에 죽는 햄릿. (햄릿과 오빠의 결투장면은 펜싱 올릭픽 결승장면보다도 더 박진감이 넘친다.)

이 같은 비극이 또 있을까. 감독 제작 배우 등 1인 3역을 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햄릿은 영화로 나온 햄릿 가운데 처음이며 러닝타임이 155분으로 가장 길다.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여러 개 상도 받았고 이후 수많은 동명의 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족: 흔히 햄릿형 인간이라고 한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한 경우로 행동이 먼저 앞서는 ‘돈키호테’와 비교된다. 가장 유명한 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독백 장면은 햄릿의 결단력 부족을 여실히 보여준다.

흰 파도의 포말이 아스란 히 보이는 성의 꼭대기에 오른 햄릿은 작은 단도를 꺼내들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화살의 운명을 맞고도 거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죽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죽는 건 단지 잠드는 것. (그러다 다시 생각하더니) 잠들면 깨어나는데 그게 걸리고 영원히 잠들을 때 꾸게 되는 꿈이 걸린다. (자살을 미룬다.)

그러다가 문득 폭군의 횡포, 세도가의 오만, 좌절당한 실연의 고통, 지연되는 재판, 소인배들의 불손을 누가 참겠느냐며 다시 칼을 가슴에 겨눈다.

하지만 이내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그 미지의 세상이 망설이게 돼 차라리 이 세상의 고통을 견디게 마련이라며 칼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린다.

앞선 장면에서는 또 이런 대목도 나온다. 참회하는 왕의 등 뒤에서 칼을 내리 꽃을 찰라 지금 죽이면 천당에 가니 취해 잠을 자는 시간, 전혀 구원을 받을 희망이 없는 못된 짓을 하고 있을 때 해치우자며 칼을 거두기도 한다. (기도할 때 죽이면 영혼을 깨끗이 씻고 천국에 간다고 믿었다.)
국가: 영국
감독: 로렌스 올리비에
출연: 로렌스 올리비에, 바실 시드니, 진 시몬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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