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29 17:58 (금)
90. 학이 난다(1957)
상태바
90. 학이 난다(1957)
  • 의약뉴스
  • 승인 2013.08.19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하는 남녀는 늦은 밤 살금살금 집에 들어온다. 자고 있는 것처럼 가족들은 모르는 체 하지만 다 알고 있다. 멋지게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자기 방에 와서는 침대를 향해 점프한다.

감기와 함께 속일 수 없는 두 가지 중 하나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는 남녀는 날아가는 깃털처럼 자유롭고 흔적을 남긴다. 사랑은 나라마다 차별두지 않는데 러시아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미하일 칼라토초프 감독의 ‘학이 난다’ (원제: Letyat zhuravli )는 이런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흔하고 흔한 게 사랑이고 이별이지만 ‘학이 난다’는 지금 세상에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하는 진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보리스( 알렉세이 바달로프)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 베로니카(티티아나 사모일로바)를 남겨두고 자원입대한다. 그 때부터 베로니카의 시름이 시작되고 설상가상으로 베로니카는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베로니카는 보리스의 집에서 함께 사는데 잘생긴 사촌이 흑심을 품는다.

사촌은 폭탄 파편으로 유리창이 깨지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는 절체절명의 순간, 베로니카를 안고 키스를 퍼붓는다. 베로니카는 영화 역사상 여자가 남자에게 갈기는 따귀로는 아마도 가장 많을 것 같은 따귀를 쉬지 않고 때린다.

때리고 또 때리고 그리고 때리다 지친다. 그 때를 노려 사촌은 베로니카를 껴안는다. 깨진 유리조각을 밟고 어디론가 베로니카를 들고 가는 사촌은 그녀를 갖는다. 이 순간 보리스는 전장의 진흙땅을 헤매다가 쓰러진다.

해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표피가 하얀 자작나무 사이로 숨바꼭질 하던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그 나무를 부여잡고 사라지는 비극과 겹쳐진다.

베로니카는 비록 몸은 빼앗겼지만 마음까지 준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사는데 사랑이 없으니 그녀의 얼굴은 생기 대신 수심이 가득하다.

이제나 저제나 보리스가 보낸 편지만을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편지는 그가 전사했음을 암시한다. 대신 보리스가 주고 간 다람쥐 인형 사이에서 '나의 하나 뿐인 그대, 언젠가 행복하자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읽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괴로워한다.

 
돈으로 입대 면제를 받은 사촌은 다른 여자에게 팔려 있고 결국 큰 아버지 집을 떠난다. 베로니카는 살고 싶지 않다며 죽기를 결심하고 기차에 뛰어들려 하는데 마침 차에 치일 것 같은 아이를 살려 집으로 데려온다. 아이의 이름이 보리스다. 그녀는 보리스를 친 아들처럼 키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전쟁은 끝났다.

환영인파가 광장에 모이고 그곳에 베로니카도 있다. 하지만 그가 찾는 보리스는 없다. 손에 쥔 꽃다발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베로니카의 시선에 하늘을 나는 학 떼가 보인다. 누군가 외친다. ‘학이 난다’.

영화 첫머리에 편대비행을 하는 희고 검은 학 떼가 지나갔고 마지막에 또 학이 날아가고 있다. 희망이 절망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구소련 영화이지만 이념 대신 사랑과 용기를 주고 있다.

장면 전개가 기가 막히고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수량많은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는 누가 보더라도 찬탄을 금할 수 없다.

러시아 영화의 힘과 저력이 확연히 느껴진다. 다시는 전쟁으로 이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사상의 강요보다는 사랑의 외침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스탈린 시대 사라졌던 소련 영화가 부활하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 러시아
감독: 미하일 칼라토초프
출연: 티티아나 사모일로바, 알렉세이 바달로프
평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