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사랑해서 결혼해도 깨지기 쉬운 것이 남녀관계인데 하물며 별로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결혼하면 그 결혼이 온전할 리 있을까.
물론 살다 보면 정이 들 수도 있지만 정이란 것은 동양에서나 어울리지 서양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모양이다. 카렌(메릴 스트립)은 브로(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 결혼은 이혼을 하기 위한 요식절차처럼 보인다.
브로는 아내를 남겨두고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가 올 때까지 사냥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참여한다.
카렌은 그런 그에게 애초에도 없었던 마음이 완전히 떠나고 떠돌이 상아 밀수꾼 데니스(로버트 래드 포드)와 사랑에 빠진다. 두 남녀는 드넓은 아프리카 케냐의 사파리를 정원 삼아 쌍발 비행기를 타고 고공 데이트를 즐기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섹스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혼하지 않은 카렌은 전쟁터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을 죽을 고비를 넘겨서 까지 찾아가고 치명적인 독소가 있는 비소로 치료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매독에 걸린다.
고향 덴마크로 치료하기 위해 돌아간 카렌은 아기를 낳을 수는 없지만 완치돼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오고 거기서 커피농장을 경영한다.
틈틈이 학교를 세워 원주민을 가르치고 쫓겨날 위기에 있는 정착민에게 땅을 내주는 등 좋은 일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카렌에게 심심풀이 땅콩이고 데니스와의 사랑이 진짜 삶이다. 정처 없는 그에게 자기 집으로 짐을 옮기도록 하고 아예 살림을 차린다. 하지만 이 데니스라는 자 역시 안주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내일 일은 자신도 모르는 모험을 즐기는 제 멋대로 인생을 산다.
이 사이 브로는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확인하지만 화를 내거나 불편해 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방해될까봐 조심한다. (남편이 모자란 인간이기 보다는 이렇게 표현해야 두 불륜남녀의 사랑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혼 이야기가 나오자 카렌은 돈 많은 여자냐고 적반하장식의 질문을 남편에게 던진다. 자신의 부정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죄책감이 없는 행동이다. 이런 마음은 관객들도 거의 대부분 갖고 있다.
남이 하는 불륜임에도 내가 하는 로맨스로 착각하게 만든 시드니 폴락 감독의 기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영화가 막을 내리는 내내 이어진다.
불륜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결실로 맺어지기를 관객들은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까지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 브로는 데니스에게 화를 내는 대신 잘못 하지도 않았는데 혼나는 흑인 노예들처럼 비굴하게 굴고 데니스는 어찌도 그리 당당한가. 남의 여자를 가로채고도 마치 원래 주인이었던 것처럼 여유를 피우는 장면이 아주 볼만 하다.
이 소식을 남편 브로가 전해주는데 카렌은 왜 그런 소식을 당신이 가져오느냐고 오히려 화를 낸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자신과 무수한 잘못이 있는 남편을 꾸짖는데 아무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렌도 데니스처럼 브로를 너무나도 함부로 대한다. 하지만 데니스를 땅에 묻는 카렌은 데니스의 여자로 소개 되지 않고 남작부인으로 행세한다.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검은 들소떼 , 목이 긴 기린 무리, 겁 없이 장총 든 사람에게 달려드는 암수사자, 진흙탕 속에서 물을 뿜는 하마, 나는 모습이 멋진 홍학, 작지만 빠른 영양의 모습 등 볼 거리가 풍성하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음악도 들을만하고 늙어 버린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래드 포드의 연기도 볼만하다. 피처럼 붉은 석양아래 노래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른 남자의 아내인 카렌의 불륜은 메릴 스트립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까지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드린 폴락 감독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원제: out of africa)는 이런 영화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일곱 개의 아카데미상을 포함하여 28개의 영화상을 받았다."
국가: 미국
감독: 시드니 폴락
출연: 메릴 스트립, 로버트 래드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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