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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허공을 짚고 내려오는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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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허공을 짚고 내려오는 '거미'
  • 의약뉴스
  • 승인 2013.08.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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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거미줄에 매달려 잠시 쉰다. 뜨거운 태양 아래, 햇빛을 즐긴다. 그 여유, 완벽한 좌우대칭의 무늬처럼 아름답다. 박성우 시인의 '거미'라는 시를 읽어 보자. 허공을 짚고 내려오는 거미가 눈앞에 있다.

거미/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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