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업계는 정부가 전에 없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그 내용에 어떤 것을 담고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모든 산업계가 마찬가지지만 보건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항상 나오는 것은 ‘국제조화’라는 단어다. 곧 국제적인 추세에 발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제약산업의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데도 국제조화는 필수적인 요소다. 외국은 어떻게 자국의 제약산업을 발전시켰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 판단된다.
국제적인 선두주자는 미국과 유럽. 아직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가 제약산업의 선두그룹으로, 중국이 차세대 주자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2000년 통계를 근거로 2003년 8월 작성한 'EU 제약산업동향'은 미국과 유럽의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유럽을 앞서게 된 이유를 분석해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 시장은 연구 개발과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으로 인해 지속적인 발전을 해온 결과 1997 ~2001년간 개발된 새로운 의약품의 62%가 미국 시장에서 소비된 반면에 유럽은 21%에 불과하여 유럽제약산업 경쟁력이 퇴보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1990-2000년간 미국시장은 년 평균 11.4% 확대되었으나 유럽시장은 년평균 7.3% 증가했다.
1990년 이후 유럽의 연구개발 기관이 지속적으로 미국으로 이전함에 따라 유럽 제약산업 경쟁력 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1990-2001년간 미국 연구 개발비 규모가 5배 확대되었으나 유럽은 2.4배 확대된 수준이다. 1997년 미국은 연구개발비 규모에서 유럽을 추월했다.
또한 미래의 제약산업(biopharmaceutical)의 관건인 biotechnology 연구에 있어서는 1980년대 초기 투자에 게을리 한 결과로 미국과의 격차가 심각한 실정이다.
2000년 기준으로 biopharmaceutical 부문의 총매출 규모가 미국은 23,750백만 유로인데 반해서 유럽은 8,679백만 유로 수준에 불과하고 연구개발비도 미국의 11,400백만 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77백만 유로 수준이다.
보고서는 그러나 EU 제약산업은 2000년 기준으로 56만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고 25,200백만유로의 무역흑자를 기록하였으며 17,500백만 유로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어서 유럽산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향후 제약 산업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평했다.
이러한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여러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의약품 특허권의 경우 기본적인 보호기간은 20년으로 같으나 5년의 기간 연장 제도는 미국이 1984년에 도입했으나 EU는 1992년에 시행했다.
생명공학에 관한 별도의 특허제도는 미국이 1983년에 시행했으나 EU는 1998년에야 지침이 제정되었고 현재 6개국에서만 시행중이다.
미국의 경우 모든 주(state)에서 동일한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EU는 일부 회원국가의 보호수준이 낮은 형편이다.
기업 여건측면에서도 미국이 대규모의 단일시장체계 아래서 매우 경쟁적인 시장가격 체계를 견지하고 있으나, EU의 경우에는 단일시장 형성이 미흡하여 시장접근에 아직까지 제약이 있고 의약품 가격통제가 유지되고 있다.
또한 미국이 노동시장의 유연성, 기업보조, 재정지원 등을 통해 과학적 연구와 기술혁신을 지원하고 있으나, EU는 이러한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보건의료제도에 있어서도 첨단 의약품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미국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다.
미국의 의료시장이 규제가 적고 수요독점이 없으나, EU는 보건의료가 공공재정으로 공급되고 있어서 많은 제약이 따르고 수요자 독점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연구 환경 측면에서도 미국의 경우에는 대학, 중소기업, 첨단 연구소, 산학 협동 등 연구 시스템과 제도가 매우 유연하고 변화에 능동적인데 반해서 EU는 단일 시장 형성이 미흡하고 각종제도나 법규가 분산되어 있어서 매우 경직된 체질을 갖고 있다.
의약품 법규에서도 희귀의약품(orphan drug)에 관한 법률을 미국은 1984년에 제정하여 지원하였으나 EU는 2000년에야 제정했다.
또한, EU는 orphan medicines의 연구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관련 법규의 정비등 여러 가지 정책적인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는데 EU 보다 앞서서 미국은 이미 1983년에 Orphan Drug Act를 제정하여 보건과 관련하여 가장 성공적인 법규로서 인정 받았다.
이를 통해 미국은 각종 세제지원, 정부보조, 임상실험 지원, 7년간의 독점권인정, 각종 인허가 비용의 면제 등 지원책을 실시하였고,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230건 이상의 orphan drugs가 허가를 받아 전 세계적으로 1천만명 이상이 치료를 받게됐다.
이 법률 시행으로 인해서 미국은 생명공학 기술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첨단 중소기업을 육성하게 되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됐다.
이에 비해 EU는 미국보다 훨씬 늦은 1999년에야 관련 법규인 European Orphan Medicinal Product Regulation을 제정하여 10년간의 독점권 인정 등 제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orphan medicine 대상 질병의 유병률 기준을 10,000명당 5명으로 정해 미국의 10,000명당 7.5명보다 강화하는 등 일부 규정이 개발 연구촉진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EU 지역에서는 미국에 비해 뒤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2000년 6월에 유럽제약협회(EFPIA)내에 관련업계로 구성된 '첨단생명공학의약기업그룹' (the Emerging Biopharmaceutical Enterprises Group ; EBE)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혁신적 신약에 대한 정보를 적시에 필요한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신약의 신속한 인허가 절차와 친화적인 시장 구현을 통해서 경쟁력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유럽사회전반에 인식이 부족한 첨단 생명공학 의약산업의 장점을 홍보하고, 학계, 소비자단체, 보건의료 전문가, 관계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첨단 산업의 이해 및 설득을 추진하는 것을 설립 목표로 했다.
미국에는 뒤지고 있으나 제약산업은 유럽의 핵심산업이다.
2000년 기준으로 유럽(EU + 스위스, 터키, 이하 같음)의 의약품 생산 규모는 130,104백만 유로로서 전 세계 생산 규모의 35% 수준이다.
유럽내에서는 5번째로 큰 산업이며 전제조업생산의 3.5%를 차지하고 있는데, 생산 규모가 큰 나라는 프랑스(25,174백만 유로), 영국(19,755백만 유로), 독일(18,558백만 유
로)의 순이다.
제약시장규모는 2000년을 기준으로 미국이 전 세계의 47.2%로 가장 크고, 유럽은 89,679백만유로 23.7% 수준으로 2위다. 독일(18,375백만 유로), 프랑스(17,263백만 유로), 영국(13,282백만 유로)의 순서.
시장 내역을 보면 약국을 통한 판매액이 가장 많아서 72,206백만 유로이고, 병원에서의 소비가 15,641백만 유로, 기타 소비가 1,832백만 유로다.
수출입 동향을 보면, 2000년 기준으로 88,987백만 유로를 수출하고 63,789백만 유로를 수입하여 25,198백만 유로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의 의약품 연구 개발비 투자규모는 2000년 기준으로 17,495백만 유로로 R&D 투자가 큰 나라는 영국(4,668 백만 유로), 프랑스(3,198백만 유로), 독일(3,171백만 유로)등 순이다.
2001년 기준으로 신약 하나에 투자되는 평균 연구 개발비는 895백만 유로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는 1991년의 187백만 유로에 비해 거의 5배에 육박하는 것.
연구개발 비용은 임상전 연구에 연구개발비용의 36.0%가 투자되고 임상실험 단계에 29.1%가 투입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2001년의 경우 임상전 단계에서 실패하는 비율이 53%에 달하고 있다.
최근의 유럽의 의약품 연구개발은 새로운 분야(new chemical and biology)에서 2001년의 경우 새로 개발된 생화학 물질 36개 중 미국이 16개, 유럽이 13개를 개발했다.
한편 2000년 기준으로 전체 연구 개발비 규모가 유럽의 경우 GDP의 1.90%를 차지하고 있으나 미국은 GDP의 2.64% 일본은 3.04%를 투자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제약산업의 키워드는 보건정책이다. 국제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모르고 못하든지, 혹은 알면서 안하든지,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뒤처질 뿐이다.
의약뉴스 이창민 기자(mpman@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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