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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세상은 추위로 깊이 잠든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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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세상은 추위로 깊이 잠든다 해도
  • 의약뉴스
  • 승인 2013.01.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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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심은 철쭉에서 꽃이 피었다.

앞다투어 봉오리를 열고 진한 붉은색의 꽃을 피운다. 행여 얼어 죽을까봐 베란다에서 거실로 다시 안방으로 모셔온 보람이 있다.

화분을 갈아 주고 가지치기를 해주니 해를 거르지 않는 산쩔쭉 처럼 올해도 한 겨울에 꽃이 피었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했던 고정희 시인의 철쭉에 관한 시가 생각난다.

철쭉제 - 고정희

산마을 사람들아
고향땅 천리 밖에 있어도
철쭉 핀 노을강 앙금이 보인다
아름답게 갈라진 노을강 허리
하늘마저 삼켜버린 노을강 강바닥
지리산 철쭉밭에 꽃비로 내리고
즈믄밤 내린 꽃비 꽃불로 타오르고


이제는 적실 수 없는 강이여
참담한 추억에 불붙는 산이여
아무도 묻지 않는 꽃의 행방
아무도 찾지 않는 물의 행방
그 한쪽을 간절하게 밝히며
하나님께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아라
영원한 천벌의 꽃불을 보아라
어느 어둠 저 불 끄고 지나랴
어느 어둠 저 불 가릴 수 있으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
완벽하게 쓰러진 성벽에 앉아
하프를 뜯으며 타오르는 사람들아
타오르다 타오르다 숯이 되는 사람들아
고향땅 천리 밖에 두 눈 감아도
이 깊고 공고한 칠흑의 계곡에
그대들 꽃불은 환히 와 닿는구나
그대들 가락은 휘어지며 와 적시는구나


세상은 추위로 깊이 잠든다 해도
타오르지 않는 것은 불이 아니기
적시지 않는 것은 강이 아니기
스스로 스스로 강안(江岸)을 물들이는
지리산 철쭉들아,
스스로 스스로 숯이 되는 사람들아
불이 그리운 자는 또한 기리고 있으리
이 세상 적시는 물과 불의 축제
화부(火夫)의 야산에서 타오르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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