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9 23:46 (월)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결제의 시간입니다
상태바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결제의 시간입니다
  • 의약뉴스
  • 승인 2012.12.10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 덮힌 산하, 돌아보니 아름답습니다.

이른 아침 아무도 걷지 않은 길 혼자 걷노라면 이 세상이 모두 제 것 인 것 처럼 뻐기게 되지요.

하지만 적요 가득한 산사에 들어서면 티끌 보다 작은 존재인 내가 서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 건강 조심하시고 기분 좋은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형권 님의 겨울산사라는 시 음미해 보시지요.

겨울산사/이형권

겨울 산사는 텅 비어 있는 듯하다.
눈 쌓인 산자락에는 창백한 낯빛의 하늘이 걸려 있고
전각들은 모두 문을 닫고 고요 속에 웅크려 있다.
응달을 지나온 바람소리가 허전한 마음을 스치고 가면
세상의 모든 자리가 허공처럼 텅 비어 있다.
겨울 산사의 매력은 이 텅 비어 있음에 있다.
수목들은 잎을 떨궈 낸 앙상한 가지로 서 있고
시냇물소리는 청빈한 수행자처럼 야위었다.
모두가 시련의 세월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결제의 시간인 것이다.
그 적막한 풍경 속에서
처마 끝에 우는 풍경소리는 더욱 명징해지고
적설을 이기지 못한 설해목 한 가지가
또다시 우지끈 부러져 내린다.
지난 계절 분주했던 인파는 보이지 않고
산사의 뜨락에는 오로지 적요만이 깃들어 있다.
스님들은 풀리지 않는 화두를 들고
아득한 시간의 어귀를 서성이고
지나가는 길손의 발자국이
잠시 산사의 정막을 일으켜 세워 면회를 하고 간다.  
하여 겨울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자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불러도 좋다.
세상의 시간으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고독한 영혼이 절벽처럼 서 있고
높은 사유의 정수리가 빛을 뿜어내며 새벽공기처럼 살아 있다.
꽃이 피고 달이 뜨는 낙화유수의 시간 속에서
윤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길손이 머리 조아릴 때
텅 비어 있는 겨울산사는  온전히 수행자의 도량이 된다.
속인이건 구도자이건 가난한 순례자이건
가장 진실한 시간 속에 그들의 영혼들을 불러 세우고
성성히 깨어있게 한다.
그 깨어 있는 시간을 향해
우리는 겨울 산사로 가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