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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45. 400번의 구타(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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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00번의 구타(1959)
  • 의약뉴스
  • 승인 2012.11.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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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스토리, 뻔 한 이야기 구조인데도 묘하게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프랑소와 튀르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원제:The 400 BLOWS)가 그렇다.

세월을 뛰어넘는 감독의 수완은 이런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15살 주인공 앙투안( 장 피에르 레오)은 장난꾸러기다. 문제는 이런 장난을 받아 줄 수 없는 어른들의 태도다.

정부와 길거리에서 대담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어머니(클레르 모리에)는 계부(알베르 레미)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들과도 그렇고 그런 관계다. 부모에게 보고 배울게 없다.

애가 겉도는 전형적인 조건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할 수 있는 모든 어리석은 짓은 하겠다’는 듯 앙투안의 얼굴은 전의가 가득하다. 가정이 문제투성이이면 학교라도 괜찮으면 좋으련만 선생님은 아예 한 술 더 뜬다.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따귀를 갈기고 분필을 집어 던지고 처벌을 밥먹듯이 한다.

조각처럼 잘생긴 앙투안이 나쁜 길로 빠져 들수록 관객들의 한숨소리는 높아만 간다. 차라리 악당처럼 생겨 먹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목구비 뚜렷하고 뭘 해도 귀여울 것 같은 천진한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롭다.

수업 시간에 반라의 여자 사진을 돌려보다 혼이나 불려 나왔음에도 칠판에 글을 쓰는 선생님의 뒷머리를 만지는 흉내를 내는 등 장난기가 타고 났다. 집에 와서는 숙제 보다는 어머니 향수에 손을 대고 레이싱에 정신이 팔려 있는 아버지의 카다로그를 슬쩍 하는 등 말썽만 피운다.

학교생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등굣길에 만난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벽에 뒤로 매달리는 이상하게 생긴 놀이기구를 타면서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엄마의 글씨를 위조해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사유서를 내는 등 정도가 심해진다.

 

엄마는 회사에서 야근을 한다는 핑계로 늦은 귀가가 예사롭고 그런 엄마에게 계부는 화를 낸다. 어느 날 앙투안은 전처럼 학교대신 샛길로 새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선생님에게 들키자 엄마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정학당한 앙투안은 갈 곳이 없다.

더 이상 부모와 살 수도 없어 가출을 한다. 어른이 돼서 돌아오겠다는 가출일기를 쓴다. 그리고 친구 삼촌이 하는 인쇄소에서 하룻밤을 잔다. 우유를 훔쳐 먹기도 하고 건달처럼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담배를 피우고 집에서 촛불을 켜놓다 잘못돼 불이 나는 등 설상가상이다. 잠시 돌아왔던 앙투안은 영원히 가출하기로 작정한다. 친구 집에서 숨어 지내면서 타자기를 훔친다.

계부는 아이를 경찰서로 끌고 간다. 경찰은 형식적인 조서를 작성하고 앙투안은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또래의 아이들이 제법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석방 보다는 기술을 익힐 수도 있는 소년원에 있기를 바란다.

앙투안은 철조망이 쳐진 소년원에서 탈출한다.

죄수복을 입고 달린다. 보고 싶어 했던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모래사장을 지나고 마침내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에 멈춰 선다. 발이 바닷물에 닿는다. 앙투안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 표정, 소년의 표정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 모습, 세상을 다 산듯한 무표정에서 소년의 비애, 자유에 대한 갈망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누벨바그의 선두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봐도 세련된 화면은 이후 나오는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경쾌한 카메라 워크가 볼만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앙드레 바쟁에게 헌사했다.

국가: 프랑스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
출연: 장피에르 레오, 클레르 모리에, 앨베르 레미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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