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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분노와 슬픔, 황폐화된 영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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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분노와 슬픔, 황폐화된 영혼 이야기
  • 의약뉴스
  • 승인 200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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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그놈 목소리

영화가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하면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 영화사 집)’는 가장 충실하다. 유괴에 대한 분노, 범인 검거의 당위성을 넘어 사회의 무관심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주 직설적이다.

2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영화적 재미를 위해 달려가지 않는다. 범인과의 두뇌게임이나 스릴러를 기대하지 말라. 유괴된 가정의 황폐화, 부모의 철저한 심정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다.

▲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의 힘겨움을 토로하며 관객들에게 유괴범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낸다.
잘나가는 뉴스 앵커 한경배(설경구)와 가정에 헌신적인 아내 오지선(김남주). 둘의 행복은 9살 난 아들이 유괴되면서 산산이 깨어진다.

범인은 지극히 건조한 목소리로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현금 1억원을 준비하라고 한다. 아이의 목숨 때문에 차마 신고를 하지 못하던 지선은 결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계속 겉돌기만 하고, 범인은 지능적으로 그들을 조롱한다. 유괴당한 날짜는 점점 지나가고 범인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영화는 처음엔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더니 서서히 분노를 토해낸다. 아이의 유괴로 시작된 가정의 해체는 점점 강도를 더해 두 사람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킨다.

“아빠가 구해줄께”라며 동분서주하던 경배는 무력감에 하늘을 쳐다볼 힘조차 없다. 햇빛만 봐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절망으로 되돌아와 그를 움켜 맨다. 아내 지선역시 슬픔이 배어 통곡할 힘조차 없다. 삶의 의미가 사라진 그에게 세상은 지옥 그 자체다.

   
▲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의 힘겨움을 토로하며 관객들에게 유괴범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낸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세상 무엇보다도 귀하다.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존재이자 삶의 전부이다. 그 희망을 빼앗겼을 때 부모는 자신의 가슴이 시커멓게 멍이 들도록 때리고 또 때리면서 통곡한다. “제발 우리 아이를 돌려주세요”라며 울부짖는 엄마의 호소는 범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유괴된 44일 동안 부모의 몸부림은 안쓰럽다 못해 처절하다. 서서히 강도를 더해가는 울분은 제3의 위치에 있던 관객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슬픔에 동화되도록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의 힘겨움을 토로하며 관객들에게 유괴범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말미에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부모의 애타는 심정 외에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긴장감을 분출한다.

건조하게 이어오던 드라마는 설경구가 눈물로 호소하며 그 놈의 실제 목소리를 들려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개인의 아픔이 아닌 사회의 아픔으로 극화된다.

시사 프로그램 PD로 10여년 일한 박진표 감독이 1991년 취재했던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사건은 15년 동안 경찰 10만여명이 투입됐지만 결국 지난해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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