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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100% 셀프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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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100% 셀프다 그러나
  • 의약뉴스
  • 승인 2006.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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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세번째 시선>
▲ <세번째 시선>의 마지막 에피소드 <나 어떻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언제까지 빈곤의 되물림을 반복해야만 하는가.

“행복은 100% 셀프다.”

<세번째 시선>의 두 번째 에피소드 <소녀가 사라졌다>(김현필)에서 교회오빠가 선희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행복을 누구에게나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을 해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셀프’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은 먼저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세번째 시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주 노동자, 소녀가장, 흑인소녀, 여성, 동성애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사회적인 멍에를 지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정작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사람들.

<세번째 시선>을 보면 ‘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말은 어찌보면 공수표와 별다르지 않다.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고 뒤돌아서면 싸우는 정치인들, 서로 위하고 사랑하겠다는 말을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 자기 스스로에게 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사람들. 이들에게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당신과 나 사이>(이미연)에서 대우와 호정 부부가 그렇다.

일요일 오전 늦잠을 자고 싶은 대우와 청소를 하는 호정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된다. 사소한 말다툼은 어느덧 큰 싸움으로 번지고, 두사람은 서로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된다.

싸움과정에서 사용된 말을 보면 ‘가족을 위해서 그런 것’,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등의 진실된 대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내의 바램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의 화목은 요원한 것이며, ‘당신과 나 사이’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말은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험난한 인생>(노동석)의 경수는 흑인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다. 친구들은 ‘블랙, 화이트’를 외치면서 여자친구를 소외시킨다.

첫 만남에서 한 사람을 소외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0분 되지 않는다. 단지 '블랙, 화이트'라는 진동으로 만들어진 소리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말은 그것은 단지 소리인 것이 아니다.

<BomBomBom>(김선, 김곡) 또한 마찬가지이다.

동성애자로 낙인찍힌 마선은 친구들 사이에 ‘동물’로 통한다. 마선이 학교 최고의 드럼주자라는 것은 그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그 어떤 관심사도 될 수 없다.

마선이 드럼을 칠 때 친구들의 관심은 ‘음악’이 아닌 ‘드럼치는 변태’이다. 그 중 같은반 친구 마택은 베이스 주자로 마선의 재능에 관심을 표한다. 그러나 마선과 가까워지는 행동은 말 그대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친구들은 마택을 일순간 ‘변태’로 만들기도 하고, 마택은 마선을 ‘변태새끼’라고 욕하자 다시 면죄부를 제공,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택이 변태에서 사람이 되는 짧은 순간, 달라진 것은 단지 말 하나이다.

언어로 형상화된 사회구조는 이 땅의 노동자를 고난하게 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에피소드 <잠수왕 무하마드>(정윤철)와 <나 어떻해>(홍기선)는 이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단한 삶을 그린다.

<말아톤>을 연출했던 정윤철 감독은 <잠수왕 무하마드>에서 또 한편의 판타지 영화를 선보인다.

무하마드는 유독성 가스공장에서 일하지만 절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관리자의 말대로 ‘깜상은 무식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무하마드에게는 그의 피부색으로는 말할 수 없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그의 고향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바다에 아침에 들어갔다 저녁에 나온다”는 것이다.

숨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이 그의 감춰진 재주이다. 단속이 끝나고 다시 공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무하마드는 숨을 한껏 들이쉰다.

순간 무하마드의 표정이 클로즈업 되는데, 또다른 세상으로 잠수해야만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에피소드 <나 어떻해>는 숨가쁘게 달려온 ‘시선의 여행’을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부제를 달자면 ‘비정규직 노동자 도씨의 일일’ 정도가 될 것인데, 영화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하루를 담는다. 야간조로 밤새 일을 한 도씨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찾아 갈 수가 없다. 도씨가 하루 근무를 빠지면서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단지 주차, 월차, 연차를 포함한 12만원 차감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씨의 고민은 자리를 비웠을 때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고용주는 하루 쉬겠다고 말하는 도씨를 곱게 보지 않는다. 2년을 일하면 정규직으로 승격시켜준다는 회사의 약속을 믿고 1년 8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한 도씨는 어머니를 포기하고 결국 ‘정규직의 희망’을 선택한다.

비정규직의 설움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기에, 지긋지긋한 가난의 대물림을 끝내기 위해 내린 도씨의 선택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도씨의 일일은 해질녘 전철역에 선 도씨의 모습으로 끝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사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고,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으며, ‘비정규직, 비정규직’ 하면서 손가락질을 받아야하는 도씨. 그의 처진 어깨 아래로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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