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제법 축구에 관심이 많았다. 또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지난 독일 월드컵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축구 이야기를 했다.
이천수나 이영표ㆍ 박지성 등은 좀 오버해 표현하면 발 뒷굼치만 봐도 누군지 알아 맞출 정도 였다. 어느 날 부터 인가, 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더니 이제는 직접 축구를 해야 겠다고 들들 볶았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지친 몸을 이끌고 축구공을 차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아들의 발 놀림에는 절로 신이 났다. 축구화를 사달라고 야단이어서 없는 돈 쪼개 축구화를 사주고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 맞는 축구공도 새로 장만했다.
한 달 정도 간것 같다. 이 기간 동안만 놓고보면 아들은 정말 축구 국가대표는 당연하고 심지어 맨유나 AC밀란 같은 세계적 클럽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인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지만 또 한편으로 감히 그런 아들의 상상에 즐거운 동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언제 부터인지 아들 입에서 축구 이야기가 쏙 들어같다. 일간지 스포츠 면을 샅샅이 훑으며 이런 저런 축구 소식을 전해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문득 신발장 구석에 쳐박혀 있던 아들의 축구화를 꺼내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축구공을 올려 놓고 잠시 헛 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의 꿈은 축구선수에서 어느 새 가수로 변해 있었다.
아들은 요즘 거북이의 비행기니 동방신기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신문의 스포츠면 대신 연예 소식에 눈이 고정돼 있다. 가수에게 필요한 무엇을 사달라고 할까봐 벌써부터 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