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텅빈 들판에는 달랑 허수아비만 여유롭다. 문득 허수아비를 보니 5년전 국립민속중앙박물관에서 허수아비를 만들던 기억이 새롭다.
이것저것 찾아서 무언가 하기를 즐기는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 박물관에 어거지로 따라갔다. 거기서 허수아비 만들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우리 가족은 아주 볼품없는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준비가 부족했다. 다른 가족들은 한복이나 옷가지 또는 무당이 쓰는 장신구 등 다양한 준비물을 마련했다. 상품도 푸짐하다는 말에 참여는 했지만 당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같이 간 일행들도 우리 작품? 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허수아비를 보고는 모두 당선감이라고 부러워 했다. 우리가 보던 전형적인 허수아비 였다.
우리는 풀이 죽었지만 내심 열심히 했다. 다른 가족이 생각하지 못했던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다름아닌 부엌용 호일이다. 옷이나 천으로 허수아비를 감싸는 것 대신 호일로 팔과 다리 얼굴 몸통를 감쌌다,.
그리고 제목을 그럴듯하게 '지구를 지키는 로봇 허수아비'로 칭했다. 결과 발표에서 예상을 깨고, 부러워 하던 가족 작품을 밀어내고 우리는 장려상을 받았다. 전직 국무총리가 시상을 했는데 우리 아이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기분이 삼삼했다.
한 바뀌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지구를 지키는 로봇 허수아비'는 수백개의 다른 허수아비 앞에서 자랑스럽게 장려상 꼬리표를 달고 참가자들의 눈길을 받았다.
아! 기분은 괜찮았다. 수상이유는 창의성.
부상으로 받은 상품은 나무 필통이었다. 이름도 선명한 '한민족 평화와 희망' 허수아비 축제가 새겨진 필통을 나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