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사원> 시리즈를 표방하는 LK사단의 새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김기호·박상희 극본, 이용석 연출)이 시작됐다.
이들은 초유의 대량 청년실업 시대를 맞아 백수의 사회진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강호에서 최강으로 개명은 했으나 주인공 백수 역에 문정혁이 캐스팅되어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연작의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러나 <신입사원>이 전산오류로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한 한심한 백수가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초점을 두었다면, <무적의 낙하산 요원>은 여전히 별 볼일 없는 백수가 우연히 낙하산으로 입사한 철통같은 국가 정보기구를 어떻게 휘저어 놓으며 주름잡는가에 그 핵심이 놓여 있다.
전자가 졸지에 백수에서 대기업 신입사원이 된 젊은이의 아슬아슬한 생존과 애환을 담아냈다면, 후자는 더욱 뻔뻔해지고 자신만만해진 그가 엉뚱하고 황당무계한 방식으로 산업스파이 색출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에 얽혀드는 상황을 그려낸다.
이처럼 요원들과 스파이의 대결을 그리는 첩보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역시 LK사단의 전작인 <달콤한 스파이>와 더 큰 유사성을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달콤한 스파이>가 다수의 수상쩍은 인물들 사이에서 누가 진짜 스파이인가, 볼펜에 담긴 비밀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긴장으로 극을 진행시켰던 것과는 달리, <무적의 낙하산 요원>은 처음부터 스파이와 요원들의 정체가 이미 드러난 상태에서 이들의 기묘하고 복잡하게 꼬인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돈도 빽도 학벌도 없이 처량한 백수신세인 최강에게 어느 날 우연히 대통령 차에 치일 뻔한 할머니를 구해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청와대 초청을 받은 그는 대통령 표창을 사양함으로써(대통령의 평일 한낮 골프행렬이 밝혀지면 정적들의 공격 빌미가 될 것이라는 구실로, 그러나 사실은 옆 사람에게 떠밀려 할 수 없이 할머니를 구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이 시대 보기 드문 인재라는 대통령 칭찬 한마디에 그만 국가 비밀 정보국에 낙하산으로 입사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는다.
최강이 청와대 빽이라는 사실을 안 팀장 강은혁(신성우 분)은 그를 혹독한 훈련과 기합으로 몰아치는데, 은혁에게 밀려 기회를 엿보던 양과장(안길강 분)은 오히려 최강을 자신의 든든한 발판으로 삼으려 적극 지원한다.
정보국 최대 현안인 국제적인 산업스파이 앨리스를 잡으려는 계획이 추진되는 가운데, 최강이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교육과제도 척척 수행하고 회사 기밀을 빼내던 중간간부와 러시아 마피아 일행을 우연히 체포하는 쾌거를 올리자 그의 진짜 정체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은 점점 커져만 간다.
여기에 두 명의 여자, 같은 정보국 요원인 최강의 고교동창 공주연(한지민 분)과 은혁의 옛사랑인 대규모 호텔의 상속녀 정윤희(앨리스, 윤지민 분)가 최강과 은혁 사이에 끼어들면서 네 사람은 복잡한 사각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이로써 최강과 은혁의 대치는 더욱 첨예해지고 은혁이 지휘하는 앨리스 체포 작전은 최강의 개입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간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 역시 애초부터 주어진 상황은 현실성이나 개연성이 거의 없다. 과장과 축소, 비약과 생략, 혹은 의도적 왜곡 등이 이 코믹 드라마들의 공통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 상황의 비현실성이나 디테일의 부정확함 따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청와대나 정보국에 대한 묘사가 안일하고 무성의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예 핀트가 어긋난 것이며, 일국의 정보국이나 국제적 산업 스파이가 한낱 백수였던 허접한 인물의 실체에 대한 정보조차 알아내지 못하느냐고 따지는 것 역시 부질없는 일이다.
그 대신 이 드라마들에는 드라마 전체를 가득 채우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뚜렷하고 명쾌한 일관성이 있으며, 여러 겹으로 배치된 이들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애증 관계에 따른 복합적이고 치밀한 심리전이 있다.
사건들 자체보다 오히려 인물들 사이의 심리전이 드라마의 중심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앨리스 체포 작전도 네 남녀의 사각관계와 뒤얽히면서 더욱 복잡한 심리적 복마전이 되어 간다.
사실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뭔가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그들과 두뇌싸움을 벌이는 대다수 첩보물이나 추리물과는 달리 처음부터 모든 사실들이 밝혀진 상태에서 시작한다.
최강이 어쩌다가 정보국 요원이 되었는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부터, 고혹적이고 도발적인 앨리스가 세계적인 산업스파이이며 그녀가 바로 국내 최고 호텔을 상속받은 거부 정윤희임이 처음부터 밝혀진 채로 시작된다.
따라서 뭔가 숨겨진 대단한 음모나 그 이면의 비밀이나 진실 따위는 애초부터 없다. 심지어 이 첩보물에는 사람들을 꼬여들게 하고 이후에 모든 일을 발생시키고 엮이게 하는 최초의 범죄사건 조차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정보국 요원들은 모르고 있다. 실상 이 드라마의 재미는 청와대 빽으로 낙하산 입사한 최강의 정체에 대한 정보국 요원들의 그 ‘오인’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싸움 좀 되고 몇 가지 잡기에는 능하지만 도통 실력이나 자질이라고는 없는 한심한 백수가 졸지에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국가의 숨은 인재나 해외 특수 요원으로 오인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아무런 자격증도 내세울만한 경력도 학력도 없기에 그의 정체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진 어마어마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반면에 최강의 실체를 너무나 잘 아는 그의 부모와 동생은 정반대 지점에서 그를 오해한다. 출판사에 다닌다며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는 그를 무슨 조직폭력이나 마피아단과 연루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강의 정체에 대한 이중적 오인을 통해 드러나는 비의도적인 조롱과 사기의 전술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진짜 재미를 구성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요리조리 그물망을 빠져나가고 엉뚱한 지점에서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최강은 뛰어난 능력과 남다른 재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우연과 운에 의해 문제와 사건들을 해결한다.
핵심은 최강이 어떤 중대 사건이나 미제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강이라는 이런 턱도 없는 인물에 의해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엉뚱하게 그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사실에 있다. 정보력에 기반한 유능한 특수 요원들의 활약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정보국 내에서 최강이라는 인물의 정체에 대한 오인, 그것은 그가 차지한 정보 요원이라는 상징적 자리 그 자체가 실재하지 않는 텅 빈 기표임을 드러내준다.
그것은 허접한 백수와 국가 최고의 인재 사이의 역설적 대체를 통해 그 실체없음과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이 낭만적 코믹첩보물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는 정보국의 모토가 역설적으로 그것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