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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야 놀자, '시네바캉스 서울' 끔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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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야 놀자, '시네바캉스 서울' 끔찍함
  • 의약뉴스
  • 승인 2006.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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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릭스의 한 장면.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8월 극장가에 ‘괴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도 풍성하게 마련됐다.

그 중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야심적으로 준비한 ‘시네바캉스 서울’을 빼놓을 수 없다.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개막작으로 총 60편의 영화를 상영한 이번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끈 섹션은 역시 공포 영화였다.

공포 영화는 특이한 점이 많다. 계절 특수를 노리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이채롭고, 특정한 감정을 앞세운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대체 공포라는 감정에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인자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음이 판명되더라도 공포의 감정은 거의 반사적으로 작동된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위협이 실현될 경우 그 대가가 그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공포를 갖고 놀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실질적인 위협이 거세된 공포의 가상 체험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잘만 통제된다면 공포가 주는 스릴만큼 짜릿한 경험도 없는데, 이는 존재의 존폐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공포 영화를 볼 때 온몸에 전해지는 긴장감은 위험한 만큼 매혹적이다.

이번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마련된 여러 영화들 가운데 먼저 눈길이 가는 작품은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였다. 서커스단에서 살아가는 기형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에는 공연 장면도 없고, 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잔혹한 주인도 나오지 않는다.

서커스단에서 정상적인 배우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형 인간들의 모습이 전부다. 난쟁이 한스는 미녀 클레오파트라를 마음에 두고 있는데, 한스가 재산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 클레오파트라는 위장결혼을 한 뒤 그를 살해할 음모를 꾸민다. 이런 음모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단원들은 힘을 합쳐 그녀를 잔인하게 응징한다.

장애로 인한 차별 없이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한스의 열망은 동료들의 만류에 의해,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의 배신에 의해 좌절된다. 그래서 결국 체념하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는 한스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에 공고히 존재하는 여러 장벽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것은 비단 장애자 차별만이 아니라 인종 차별일 수도 있고, 계급의 장벽, 성별에 따른 장벽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외양이 아니라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박해하는 마음 속 악마임을 <프릭스>는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역시 차별의 문제를 다룬다. 차이라면 피해자가 사춘기 소녀라는 점, 그리고 그녀가 초능력을 보유한 자라는 점이다. 공포 영화에는 유난히 사춘기 소녀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나약한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타일적으로 양분된다. 친구들의 세계로 통합되고 싶은 그녀를 보여줄 때 영상은 극히 서정적으로 흐르며, 감미로운 현악기 소리가 배경에 깔린다. 이런 욕망이 좌절될 때 카메라는 불연속적으로 요동치며, 과장된 조명과 음산한 전자 음향이 신경을 긁어놓는다.

오늘날 ‘캐리’가 공포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적인 개연성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의 집단 따돌림 현상, 첫 생리의 공포, 교내 댄스파티의 추억 등.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때이다.

저예산 공포 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의 ‘공포의 휴가길’은 단순하고 투박하다. 휴가를 떠난 가족이 낯선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이방인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들이 누구인지, 왜 자신들을 습격하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그저 공격에 공격으로 맞설 뿐이다. 총과 무전기, 칼, 그리고 개 등 가진 것을 총동원해 대항한다. 황량한 사막과 바위언덕을 무대로 펼쳐지는 두 집단의 싸움은 피를 철철 흘리고 내장이 밖으로 꺼내지는 잔인한 장면을 제하면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특징은 불친절하게도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습격자들은 바위언덕에서 야생 상태로 살아가는 가족이다. 그렇다면 트레일러 카와 동굴로 상징되는 문명 대 야만의 충돌? 휴가를 나선 이들은 경찰관 가족들이다.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답게 투박한 스타일만큼이나 불친절한 상황 설명은 이 영화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읽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독해를 제하고라도 낯선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 증오가 증오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는 그 자체로 공포스럽다. 칼을 휘두르며 습격자를 난자하는 가족의 얼굴로 갑작스레 끝나는 이 영화는 뜬금없는 마무리인 만큼 가히 충격적인 인상을 남긴다.

 


사진 설명: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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