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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나나(1880)- 마릴린 먼노와 헤이 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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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나나(1880)- 마릴린 먼노와 헤이 쥬드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5.20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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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나나를 묘사한 장면은 많다. 에밀 졸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나나>의 주인공 나나가 어떤 여자인지 수시로 알린다. 거기에 따르면 나나는 대략 골은 비었지만 질은 발달한 것으로 판단된다.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보면 육체적으로 풍만하다. 살결은 하얗고 가슴은 탄탄하고 엉덩이는 크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겨드랑이 털은 황금색이며 정신적으로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다.

성품은 순진하기도 하면서 사납기도 하다. 언뜻 그려보는 배우는 마릴린 먼로다. 백치미로 온갖 남성들을 사로잡고 웃고 울게 만들었던 세기의 여배우를 연상하면 나나의 이미지가 대충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큼 나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터. 작품의 후반부에 나나가 자기 자신을 표현한 내용을 잠깐 옮겨보자.

“조르주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그래요, 모두요...나는 얼마나 불쌍한 여자인지...오! 나도 알아요!..그래요! 사람들은 나를 화냥년이라고 말하겠지요...퐁데트에서 슬픈 일을 당한 어머니도, 오늘 아침 문간에서 신음하던 그 불쌍한 사람도, 또 나 때문에 동전 한 푼까지 써버리고 파산한 사람들도...그럴 거에요. 저 나나를 때려죽여라! 짐승 같은 년을 때려죽여라! 오! 나는 죄를 뒤집어 쓸거에요.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귀에 쟁쟁해요. 아무하고나 닥치는 대로 자는 더러운 년, 어떤 남자를 빈털터리로 만들고 또 다른 남자를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년, 수많은 남자를 못살게 만든 년...”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다. 한 여자의 일생이 이렇게 몇 문장으로 정의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그녀는 눈물범벅으로 숨이 막혀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더 이어봤자 화냥년, 갈보, 창녀 그래요! 난 그런 여자에요. 그래서 어쩔건데요, 하고 상대를 노려보며 소리칠 게 뻔하다.

한 지역을 덮쳐 초토화시키는 메뚜기 떼와 같은 존재, 한 마디로 기막힌 여자가 나나가 되겠다.

각설하고 인용문에 조르주가 나왔다. 그녀와 큰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렇다. 조르주는 속된말로 이마에 피도 안마른 10대 청춘이다. 그녀가 우리 아기 지지로 불러 주는 어린애.

하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피가 활활 타오른다. 나나의 가장 젊은 정부가 되겠다. 조르주가 나왔으니 그의 형 필리프도 언급해야겠다. 육군 중위로 홀로된 위공 부인이 믿는 듬직한 장남이다.

여자의 촉으로 조르주가 나나와 동침한다는 사실을 안 부인은 장남을 나나의 집으로 보낸다. 조르주는 이제 죽었다면서 장롱 속에 숨어서 나나와 형의 대화를 엿듣는데. 아뿔싸, 조르주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날 이후 조르주와 필리프 형제는 나란히 기둥서방으로 나나를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아뿔싸는 이런 때 써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 나나로 인해 파산한 사람이라는 인용문도 따라가 보자. 거기에 해당하는 남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왕세자는 제외하자. 그가 파산할 리는 없으므로.

백작과 후작, 은행가 등이 나나에게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이름을 대기도 벅차다. 그 중 뮈파 백작만큼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나가 끝까지 단물을 빼먹어 골수까지 비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황실을 드나들며 온갖 고귀한 짓을 다하는 백작도 나나 앞에서는 신발을 물고 기어 다니는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했다. 어이 이리와! 하면 신하처럼 머리를 굽힌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백작의 체면은 나나의 육체 앞에만 서면 먼지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러면 여기서 나나의 직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의 여배우. 그럴듯한 직함 아닌가. 나나가 연극배우라니 뜻밖이라고 여기는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졸라가 그녀를 배우로 만들어 놨다.

▲ 나나는 그물로 고기를 잡듯 매일 남자를 사냥하면서 그들을 축복했으며 파멸로 이끌었다.
▲ 나나는 그물로 고기를 잡듯 매일 남자를 사냥하면서 그들을 축복했으며 파멸로 이끌었다.

극장을 중심으로 나나가 펼치는 인생이야기는 연극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인용문은 아니지만 서두에 순진하다고도 했다. 과연 나나는 그런 면모를 보인다. 극단의 허접한 인물 퐁탕을 애인으로 둔 적이 있다.

모든 남자를 탈탈 털어서 먼지 하나 남기지 않는 나나지만 퐁탕에게는 쥐어산다. 누구나 적수가 있기 마련이라는 말은 정의다. 나나와 퐁탕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그렇다.

잘 생기지도, 돈이 많은 것도, 힘이 센 것도 아닌데 나나는 퐁탕에게 얻어터지고 그가 남자에게 했던 온갖 비열 짓을 그에게 당하면서도 그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가 돈을 원하면 길거리의 여자로 기꺼이 나선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나는 순진하고 청순하다. 어쩌면 하루종일 숫자를 세도 모자랄 만큼 남자와 잠자리를 많이 한 나나에게 유일한 사랑이 있었다면 주먹을 쓰고 욕설을 아무렇게나 하는 퐁탕이 아닐까.

자, 이제는 나나의 최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나가 죽지 않고 그녀로 인해 죽은 숱한 죽음과 파산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작가는 에밀졸라가 아닌가. 사회에 눈뜨고 정의를 외치고 부조리에 대항했던 작가에게 나나의 해피엔딩은 상상할 수 없다.

예상한 대로 나나는 죽었다. 연적의 칼에 찔리거나 매독균으로 죽지 않고 천연두에 걸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는 썩어 문드러지고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애도했으나 이내 냄새를 피해 호텔 밖으로 도망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광장으로 나온 그들은 광기에 시달린 군중들의 외침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화냥년, 갈보, 창녀이며 남자라면 배내옷을 입은 아이까지 섭렵했던 나나가 잘 죽었다는 악담이 아니다.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하는 연속된 세 마디였다. 그 유명한 보불 전쟁의 시작이다. 그날 프랑스 의회는 독일과 전쟁을 선포했다.

: 상류층을 농락하는 나나의 거침없는 언행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충격으로 빠트렸다. 나나가 논란이 됐다는 말이다. 지식인들의 성적 타락이 어느 정도 까지 인지 숨기지 않고 까발렸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숭배자, 정통 왕당파, 세속적 사회주의자들이 뒤엉킨 프랑스의 혼란한 시대에 나나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나 파리를 발칵 뒤집었다. 나나는 남자로 만족하지 못할 때 거리의 여자인 사탱과 사랑을 나눴다.

나나의 성적 취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않았다. 불철주야 나나의 대저택에는 남자들의 발길로 문지방이 반질반질거렸다.

<나나>는 문학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출간 즉시 5만 5천 부가 나갔고 1885년 14만 9천 부, 1902년 19만 3천 부, 1928년 무려 27만 8천 부가 팔렸다고 한다.

에밀 졸라의 우상 <보봐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는 <나나>에 대해 “...나는 밤 11시 반까지 어제 하루 온 종일 <나나>를 읽는데 보냈다” 면서 “대단한 책이야, 이 사람아!” 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나>는 졸라가 펴낸 루공마카르 총서 20권 중 제9권에 해당한다. <목로주점>, <제르미날>과 함께 졸라에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명성을 안겨줬다. 명성과 돈을 얻은 졸라는 1890년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해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책을 덮고 비틀즈의 ‘헤이 주드’를 들었다. 읽는 내내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것을 실행한 것이다. 거기의 나나와 여기의 나나는 같은 곳이 하나도 없지만 지칠 때까지 나나를 불러 보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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