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꿩털을 줍고 말리라.
이것은 집뒤의 야산을 오르면서 꾸웡! 꾸웡! 하고 우는 꿩의 소리를 듣거나 아니면 갑자기 앞에서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날아 오르는 꿩을 보면서 다짐하는 생각이었다.
꿩이 있으니 꿩 털 역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한 몫을 했다. 내가 꿩 털에 집착한 것은 어릴적에 본 꿩의 그 화려한 색상 때문이었다. 장끼의 털은 붉은색 약간 붉은색 검은색 흙색 등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곱고 멋지다는 생각을 아마도 초등하교 4학년 때부터 했던 것 같다. 일명 싸이나나 다이맥코롱으로 불리는 독극물을 먹고 죽어 자빠졌거나 혹은 엽총을 맞고 하늘에서 몇 번 선회하다 떨어져 죽은 꿩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끼의 길고 긴 털은 아저씨나 형들의 몫이었고 몸뚱아리에 붙은 작은 털은 아이들이 마음대로 처분해도 됐다. 그때 장끼의 가장 길고 검은색이 대칭으로 나 있는 꼬리털을 가져 보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그것이 40이 넘은 성인이 된 지금도 꿩털에 집착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야산을 뒤졌다. 보리고개시절 이를 잡듯이 온 야산을 뒤졌다. 행여 꿩털이 떨어져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감으로 눈을 부릎뜨고 그야말로 산삼을 찾는 심마니 같은 정성으로 온 산을 해맸다.
그러다가 마침내 꿩털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온전하게 보존된 장끼의 털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몸이 얼어 붙은 것 같은 순간적인 감흥을 느꼈다. 장끼의 털을 확인한 나는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동안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꿩털을 수습했다. 손은 떨렸고 나는 속으로 가만히 심봤다!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