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항암치료를 해야 삶의 질도 개선된다.
2007년, 화제를 모았던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인 장준혁 과장은 간담췌외과 분야 최고의 천재의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담도암에 속절없이 당해 요절하고 만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손 쓰기 어려운 병으로 묘사될 정도로 당시 전이성 담도암에는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었다.
치료제도 없거니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담도’라는 단어로 인해, 때로는 그저 간암이나 다름없다고 설명되기도 했다.
굳이 담도암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더라도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만큼, 일반인들이 잘 아는 간암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하는 편이 서로에게 편했던 탓이다.
하얀거탑으로 일반인들에게 조금은 익숙해진, 무엇보다 췌장암만큼 무섭다고 알려진 담도암에서 그나마 쓸만한 무기가 생긴 것은 지난 2010년, NEJM에 하나의 연구 결과가 게재된 이후다.
젬시타빈과 시스플라틴 병용요법(젬시스 요법)이 담도암 환자의 사망 위험을 줄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
이전까지 케이스 리포트(Case Report) 수준으로 보고됐던 젬시스 요법의 효과가 40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을 통해 확증되면서, 전이성 담도암 1차 치료의 표준이 됐다.
비록 이 연구 역시 단일국가(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자주도 임상이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지적받았지만, 이후로도 10년간 이를 뛰어넘는 치료법은 등장하지 못했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지난 2021년 말, 진전이 없던 담도암 치료 환경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연구진을 중심으로 17개국 105개 기관이 진행한 TOPAZ-1 3상 임상에서 면역항암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 아스트라제네카)가 10여년 만에 담도암의 생존율을 개선했다는 탑라인 리포트(Top-Line Report)가 발표된 것.
그리고 이듬해(2022년) 1월, 이 연구의 책임연구자인 서울대학교병원 오도연 교수는 미국임상종양학회 소화기암 심포지엄(ASCO GI 2022)에서 젬시스와 임핀지 병용요법이 젬시스 단독요법대비 사망의 위험을 20% 줄였다는 구체적인 결과를 공개했다.
10여년 만에 전이성 담도암 1차 치료의 표준을 바꾼 것은 물론, 한국의 임상 역량을 다시 한 번 전세계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그해 11월, 담도암 1차 요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임핀지+젬시스 병용요법은 현재 건강보험 급여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
이에 의약뉴스는 임핀지+젬시스 병용요법 허가 1년을 맞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종양내과 오상철 교수를 만나 담도암의 특성과 TOPAZ-1 임상의 가치를 조명했다.
◇조기진단 어려운 담도암, 5년 상대생존율 29% 불과
담도암은 답즙이 배출되는 통로인 담관이나 담낭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크기가 작고, 몸 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진단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 기관으로 전이도 빠르게 일어난다.
특히 질병이 꽤 진행되기 전까지는 뚜렷한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보니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발견되는 환자는 약 20~30%에 불과하다.
더욱이 수술이 가능하더라도 60~70%의 환자는 재발을 경험할 만큼 예후가 좋지 않다. 실제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담도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29%로, 10대 다빈도 암 가운데 췌장암(15.2%)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이와 관련, 오상철 교수는 “담도암은 답즙이 배출되는 통로인 담관, 담낭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예후가 좋지 않다”면서 “암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치료방법은 항암치료 밖에 없는데, 항암치료는 아무리 좋아도 완치시키는 약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담도암은 이처럼 예후가 좋지 않은 암종이기도 하지만,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질병부담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담도암 사망률은 10만 인년(Person-Year)당 11.64명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발병률도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반면, 신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서양에서는 보기 드문 암이다보니 약제 개발이 더뎠다.
TOPAZ-1 연구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오 교수는 “담도암은 서양에서는 발병률이 비교적 낮아서 제약회사의 관심도 떨어져 약제 개발이 더디다”면서 “뿐만 아니라 담도암 자체가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있어서 여러 약제를 사용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양인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되는 유전적인 요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다”면서 “담도암 발병에는 담석, 염증, 기생충 등 여러 원인이 있으며, 이 가운데 환경적 요인으로는 민물고기에 기생하는 기생충에 의해 담도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부연했다.
◇임핀지+젬시스, 담도암 사망 위험 20% 감소
이처럼 답보상태에 놓여있던 전이성 담도암 치료 환경에서 항PD-L1 면역항암제인 임핀지가 TOPAZ-1 연구를 통해 전기를 마련했다.
TOPAZ-1은 이전 치료경험이 없는 절제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재발, 전이성 담도암 환자 685명을 대상으로 표준요법인 젬시스 요법과 임핀지 병용요법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 무작위, 위약(위약+젬시스)대조 3상 임상이다.
685명의 환자들은 각각 젬시스+임핀지 군과 젬시스+위약군에 1대 1로 배정됐으며, 3주 간격(임핀지 3주 1회, 젬시스 3주 중 1일차와 8일차 총 2회)으로 8주기 동안 치료를 받았다.
이 가운데 실험군에서 임핀지 단독요법이 아니라 젬시스와의 병용요법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 오 교수는 “시너지 효과를 보려는 것”이라며 “항암화학요법 자체에 세포 독성 효과가 있어 단독보다 병용하는 것이 효과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하면 여러 가지 암 단백질이 깨지면서 발현되기 때문에 치료가 잘 될 것이라는 가설이 있고, 이러한 기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실제 경험상으로도 확실히 면역항암제 단독요법보다 항암화학요법과 병용하는 경우 효과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
지난 2021년 발표된 TOPAZ-1 연구의 첫 번째 중간분석은 이 같은 기대를 충족했다.
임핀지 병용군의 전체 생존기간(Overall Survival, OS) 중앙값이 13.7개월로 위약군의 12.6개월과 비교해 사망의 위험이 20% 더 낮은 것으로 집계된 것.(HR=0.80, P=0.021).
무진행 생존기간(Progression-Free Survival, PFS) 중앙값은 임핀지군이 7.2개월, 위약군은 5.7개월로 역시 임핀지군의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이 25% 더 낮았다.(HR=0.75, P=0.001)
객관적 반응률(Objective Response Rate, ORR)은 임핀지군이 26.7%, 위약군은 18.7%로 집계됐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오상철 교수는 “획기적”이라며 “기존에는 젬시타빈+시스플라틴 병용요법으로만 치료할 수 있었는데,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있다는 이 연구 결과는 담도암 치료를 한 단계 뛰어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비록 임핀지 병용요법이 기존 표준요법 대비 사망의 위험을 20% 줄였다고는 하나, 전체생존기간의 절대값 차이(중앙값 기준)는 1개월에 그쳤다.
그러나 오 교수는 “이 연구 결과는 전체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변수나 환자의 임상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조군과 실험군을 비교한 값일 뿐”이라며 “효과가 더 길게 유지되는 환자도 많고, 심지어 암이 없어져 완치되는 환자도 있다”고 절대값 차이의 의미를 일축했다.
특히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은 일반적인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임핀지를 병용했을 때 (약제가 추가됐음에도)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면서 “증상에서도 굉장히 효과가 좋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임핀지의 환자 순응도와 부작용은 일반적인 항암제보다 낫다”면서 “보통 약을 하나 더 추가하면 환자들이 힘들어하지만 임핀지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TOPAZ-1 연구에서도 3, 4 등급의 치료 관련 이상반응은 임핀지군이 62.7%, 위약군은 64.9%, 이상반응으로 인한 치료 중단율은 각각 8.9%와 11.4%로 오히려 임핀지 병용요법이 더 낮았다.
오 교수는 환자들이 임핀지 병용요법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로 “담도암은 늦게 발견되기 때문에 통증이나 황달이 있는 경우와 전신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치료가 잘되면 암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지만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동반돼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더 많은 환자들의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 크기 감소도 중요한 요소지만 임핀지를 통해 증상이 개선되고 오래 살 수 있어 환자들은 더 만족한다”면서 “임상 참여 당시보다 실제 진료 시 오히려 효과도 더 좋고 환자들이 잘 견딘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약은 임상 데이터는 좋은데 환자한테 투여할 때 몹시 힘든 약도 있다”면서 “이와는 달리 임핀지는 오히려 임상현장에서 환자들이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료현장에서는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의 환자들도 많이 치료받고 있는데 임핀지를 추가하더라도 부작용 없이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높은 임상적 유용성을 느낀다”며 “임핀지 같은 항암제가 더 많이 개발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년 전체생존율 24.9% vs 10.4%
TOPAZ-1 연구에서 임핀지 병용군과 젬시스 단독군의 전체생존기간 절대값 차이는 1개월에 그쳤지만, 18, 24개월 시점 추정 전체생존율은 임핀지군 35.1%와 24.9%, 위약군은 25.6%와 10.4%로 크게 벌어져 24개월 시점에는 두 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단순히 중앙값을 기준으로 한 절대값의 차이만으로 치료의 이득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오 교수는 “임핀지 병용요법은 8사이클 이후부터는 면역항암제만 사용하기 때문에, 효과가 좋게 나타나는 환자들은 면역항암제에 반응이 좋을 확률이 높다”면서 “따라서 임상 결과를 해석할 때, 전체적인 환자의 결과를 기반으로 중앙값에서 나타나는 1개월 차이가 얼마나 의미 있을지 비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치료를 결정할 때, 임상 결과에서 대조군과 실험군의 차이가 1~2개월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환자 개인에게는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경우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날 확률이 있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담도암에 급여적용되는 치료제는 젬시스뿐, 적극적으로 급여 고려해야
현재 임핀지와 젬시스 병용요법은 건강보험 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 아직까지 급여 결정이 되지 않다보니 환자들이 자비로라도 임핀지를 추가하려면 젬시스 요법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오 교수는 전이성 치료 기회가 많지 않은 담도암의 특성을 고려하면, 임핀지 병용요법에 대한 급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는 “여전히 비용 문제가 치료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평생 건강보험료를 냈는데 담도암 환자에게는 치료제에 대한 급여가 한 번 밖에 되지 않으니 억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암은 1, 2, 3차 치료제 모두 급여를 인정하지만, 담도암은 환자수도 적은데 1차 치료에만 보험이 인정된다”면서 “임핀지와 같은 치료제에 대한 급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회사와 국가 차원에서 노력해 환자들이 비용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항암 치료를 해야 삶의 질도 좋아진다
TOPAZ-1 연구는 단순히 담도암 표준요법의 생존기간을 연장한 것에서 나아가 후속 연구를 촉발했다는 측면에서 담도암 치료 환경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TOPAZ-1 연구 이후 다양한 면역치료제들이 담도암에 도전했고, 표적치료제들도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최근에는 임핀지가 담도암 수술 전/후 보조요법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등 담도암 치료 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2007년 하얀거탑 속 장준혁 과장에서 비롯된 ‘손쓰기 어려운 암’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
오 교수는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가 담도암은 완치가 안되는데 왜 치료가 필요한지 묻는다”면서 “항암제 사용이 힘들고 담도암은 치료 효과도 적은데 의사들은 왜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묻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대조군과의 생존기간 차이가 1~2개월이라는 연구 결과를 단순 개월 차이로 보면 안된다”면서 “어떤 환자에게는 생존기간이 3~4년 혹은 5년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상 데이터는 의사들에게 치료 방향성을 제시해줄 뿐, 모든 환자에게 딱 그 정도의 효과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치료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역설했다.
특히 “항암 치료 중에서도 면역항암제를 병용하면 효과가 좋을 수 있기 때문에 담도암 치료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의사들이 항암 치료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환자는 알아서 제외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권할 때는 그만큼 항암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다학제 협진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를 찾아가도 필요하면 소화기 관련 치료나 방사선 치료도 할 수 있다”면서 “의료 시설도 개선돼 항암 치료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이에 대한 다양한 지지요법이나 대중적인 시술도 많이 마련되어 있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그는 “무엇보다 항암 치료를 해야 여러 가지 부작용도 덜하고 환자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며 적극적인 치료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