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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어둠 속의 사건(1842)-운명의 낙인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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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어둠 속의 사건(1842)-운명의 낙인을 찍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10.06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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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상은 인간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인가 하는 점에서 ‘관상의 법칙’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발자크의 소설 <어둠 속의 사건>에서도 주인공 미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바로 얼굴 생김새였다.

만약 단두대에서 죽는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심지어 무고하게 죽는 사람의 경우라도 관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운명은 격렬한 죽음을 맞는 사람의 얼굴에 그 낙인을 찍어 놓는다는 것.

그렇다면 작품의 서두에서 벌써 미쉬의 운명은 결정됐다. 그렇다. 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낙인을 얼굴에 이미 찍어 놓았던 것이다. 그 가엾은 사내는 흉한 얼굴의 대가를 치렀다. 드 생시뉴 가문의 여백작 로랑스는 그의 사면을 위해 전쟁터로 보나파르트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왕정복고파로 나폴레옹의 적이었던 그녀가 이렇게 한 것은 그의 집사 미쉬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냉정했다. 전원 무고라는 그녀의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전원 무죄이니 석방해 달라는 말에 그것은 당신의 의견일 뿐 사냥터지기(미쉬)는 상원의원을 죽일 만큼 위험한 인물이었던 것.

나폴레옹의 판단은 정확했다. 미쉬는 실제로 상원의원 마랭의 납치 사건에 관여했다. 그리고 그 범죄행위가 발각돼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황제의 사면은 물 건너 갔다. 대신 나폴레옹은 그녀가 사랑하는 쌍둥이 사촌을 전쟁터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사면했다.

상원의원 납치 사건에 가담했던 로랑스는 자신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순간에 전쟁터를 찾았고 이런 청원 결과를 얻었다. 이것은 서두와 결말 부분이다. 내용을 좀 더 들어가 보자.

작품 해설에 따르면 <어둠 속의 사건>은 하나의 실재하는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썼다. 나폴레옹 제정이 성립하기 4년 전 상원의원 클레망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발자크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의 경찰부 장관 푸세와 부하 탈레랑이 등장하면서 사실적 흥미를 더해준다. 그 당시 정치적 음모와 그 음모를 둘러싼 왕정 복고파와 공화주의자 간의 치열한 암투가 현실과 상상을 통해 교묘하게 엮여 들어간다.

혁명의 과정에는 반혁명 세력의 희생이 따른다. 충직하고 헌신적인 집사 미쉬는 반혁명 세력으로 참수당한 시뫼즈 후작의 집안을 지키기 위해 자코뱅당원으로 신분을 위장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말랭 상원의원 납치 사건에 연루돼 단두대로 사라지는 인물이다.

▲ 타고날때부터 사람의 운명은 정해지는가. 낙인은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해도 지워질 수 없는가. 주인공 미쉬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의문에 당도하게 된다.
▲ 타고날때부터 사람의 운명은 정해지는가. 낙인은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해도 지워질 수 없는가. 주인공 미쉬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의문에 당도하게 된다.

미쉬의 주인인 아름답고 영웅적인 처녀 로랑스는 그의 구명에 실패하고 사랑했던 쌍둥이 형제도 잃게 되자 삶의 의욕을 잃는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어떤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친척 가운데 한 명과 결혼해 귀부인으로 생활한다.

행복해 보이는 것 같은 결말이지만 그녀 역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된 하나의 먼지 같은 개인에 불과했다. 그녀와 그녀의 쌍둥이 사촌과 미쉬가 사라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프랑스 혁명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공드르빌 영지를 둘러싸고 혁명기 귀족 집안과 신흥 부르주아 말랭이 벌이는 투쟁과 전투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혁명의 저항 세력인 전통 귀족은 처형당하고 그의 영지는 국유재산으로 몰수되는 과정은 혁명이 왜 어렵고 힘든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얼마나 격렬한지 잘 묘사된다.

말랭 같은 노련한 사람은 이 기회를 이용해 국유재산을 차지해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발자크가 보기에 좋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하고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인 것이다. 그 반대로 원칙을 중시하는 로랑스와 그의 사촌 형제들은 긍정적으로 그린다.

이렇게 보면 발자크가 혁명을 폄훼하고 왕정에 옹호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발자크는 이분법적으로 이들을 일도양단하지는 않는다. 원칙을 중시한다는 것은 타협할 줄 모르는 옹고집의 다른 이름이며 그러기 위해 행하는 과격한 행동은 사회의 불안요인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을 말하는 노귀족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발자크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역사소설이며 정치소설이고 범죄소설이며 추리소설이며 사랑 소설로 읽힐 수 있는 <어둠 속의 사건>은 발자크의 다른 작품 <고리오 영감> 등에 비해 문학적 완결성이 높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화려한 문장과 함께 드러날 때 독자들은 과연 발자크 최고의 작품임을 실감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나는 모든 역사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를 합친 것보다 발자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할 만큼 이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

: 여귀족 로랑스는 분노의 화신이다. 그녀에게 나폴레옹은 철천지 원수다. 그가 구테타로 왕정을 몰아내고 황제와 평생 제1집정관이던 1803년 로랑스는 나폴레옹에게 희생된 가족의 복수를 다짐한다.

사촌 시뫼즈 형제를 끌어들여 황제의 암살을 모의하는 등 당찬 여장부의 기세를 보여준다. 그녀가 말을 타고 숲 을 내달리는 장면은 돌격 앞으로, 를 외치는 깃발든 소녀 잔 다르크를 연상한다.

하지만 로랑스는 천상 사랑에 목마른 아름다운 처녀였다. 사촌 쌍둥이를 놓고 벌이는 사랑싸움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둘 중 누구와도 결혼해도 상관없이 그녀는 둘을 똑같이 사랑했고 둘 역시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로랑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누구와도 맺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어떤 낙인이 찍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이 소설은 정치나 추리가 아니라 멜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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