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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미역국을 여순이 직접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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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미역국을 여순이 직접 가지고 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9.04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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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젊은이 조선 청춘들이 오고 있어요. 혈기왕성한 조선청년들이요. 그들에게 우리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로 모여도 어려운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임정을 중심으로 뭉칩시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선생밖에 더 있나요. 동의합니다. 나중에 다시 분파가 되더라도 지금은 손을 합칩시다. 나중에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절대로요. 세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이제 손을 놓읍시다. 오늘 같은 기분 앞으로도 죽 이어갑시다. 우리가 힘을 합지면 안 될 일이 없을 겁니다. 학도병들이 이쪽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은 사실입니까. 네 틀림없습니다. 일본군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는 하지만 강제징집 당한 일본 유학생 등이 주축이 된 조선 학도병이 일본군을 탈출했어요. 여기 그 장본인이 있어요. 죽산이 장발장을 보며 말했다. 중국 쓰저우 지역에 있었다고요. 네, 거기서 육개월간 있었어요. 겨우 탈출해 광복군에 입대했지요. 장하십니다. 아닙니다. 그러저나. 뜸을 들이며 죽산이 장발장의 손을 잡았다. 어디 손은 괜찮은가요. 손이라니요. 왜 왜놈 말로 된 교과서로 배우기 싫다면서 찢는 운동을 했잖아요. 그때 적잖은 왜놈 교과서를 찢었다고요. 아 좀 부끄럽네요. 손은 멀쩡 합니다. 하여튼 그들은 무사히 도착하겠지요. 중간에 일본군의 기습만 없다면. 지금까지 요리조리 잘 피해왔습니다. 마지막 구간만 통과하면 우린 천군만마를 얻게 되지요. 수 백명이 넘어요. 천명이 넘는다는 소문도 있고요. 그들이 일본군을 탈출해 수 천 킬로 미터를 걸어서 임정으로 향하고 있어요. 그들은 오면서 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하고 일부는 잡혀서 다시 일본군에 끌려가기도 하는 등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 선배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그저 보고만 있으니. 죽산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말씀드리자면 마침 제가 그리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중도 가고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지요. 날랜 지원군 여덟명을 데리고 바로 오늘 떠납니다. 중간에서 접선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올 생각입니다. 임정에 신고를 해뒀습니다. 고맙습니다. 약산 선생님. 그들이 어렵게 도착해 임정 마당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 어떤 감회가 일겠어요. 울컥 하는 심정에 목놓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겠지요. 너덜너덜 해진 몸으로 기진맥진해서 왔으나 태극기를 보고 불끈 힘이 솟아 날 겁니다. 조국이란 그걸 것이이죠. 그들에게 오로지 희망은 단 하나 임정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면 고향 집에 온 느낌, 그런 기분이 들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따뜻한 숭늉 한 그릇이면 충분하지요. 그런데 말이죠. 와서 보니 자기들끼리 싸우고 노선 다툼하고 자리를 차지한다고 언성을 높인다면 어떻겠어요. 이런 꼴 보려고 목숨을 걸고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왔나 자괴감이 들겠지요. 아마 나라도 다시 일본군에 입대하고 말 겁니다. 가미카제 특공대 출신이라면 비행기를 몰고 와서 임정을 폭파하고 싶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그런 비극은 생각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죠. 말해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나는 선생을 만나러 갑니다. 우리 세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말해 주고요. 조선청년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지요. 저는 약산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저도 죽산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장발장님은 알아서 잘 하니 걱정이 없습니다. 세 사람은 이런 언약을 하고 각자 헤어졌다. 그 무렵 휴의는 안전 가옥에 도착했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 다른 출혈은 없었다. 박선생은 임정 사무원과 함께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다음날 휴의는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으나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는 확실히 알았다. 병원에서 모처로 이동해 있고 전문의사가 돌보고 있었다. 살아서 안전하다는 마음보다 자신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휴의는 미안했다. 이곳에 오래 머물다 조직이 탄로나 일망타진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기에 하루빨리 일어나고 싶었다. 벗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신세를 갚는 길은 그것이다.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나 압록강, 두만강 도강 작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눈 덮힌 산야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조선독립군 사단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가야 한다. 싸워야 한다. 그는 몸이 아프자 더 전투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기력은 빠르게 회복됐다. 의약품 덕을 많이 봤다. 소고기국입니다. 드시지요. 저만 먹어서 죄송합니다. 여순 동지께서 직접 끓여 가져 왔습니다. 여순 동지라면. 휴의는 모른 척 했다. 왜 그 부부의라고. 처음 그곳으로 실려 갔지요. 그렇군요. 여러 사람에게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노출되면 어쩌려고 그런 위험을 무릎썼을까요. 그냥 안쓰러운 마음이겠지요. 자신이 치료한 환자가 완치되는 것을 보는 것은 의사의 큰 기쁨이니까요. 아 참 소고기는 약산인가 하는 그 분이 사온 거라고 합니다. 휴의는 약산이라는 말에 먹던 수저를 놓고 한동안 멍한히 있었다. 약산이라. 약산이 왔다 갔구나. 그 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떠났습니다. 휴 동지가 깨면 이걸 주라고 쪽지 하나를 남겼습니다. 어디 봅시다. 천하에 정의로운 길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한다. 그분다운 발상이내요. 언제나 무장투쟁을 강조했어요. 총칼을 든 일제에게 맨주먹으로 상대가 되느냐고요. 총을 들었으면 기관총으로 수류탄을 들었으면 다이너마이크로 까부수어야한다고 했어요. 그 말을 하던 빛나는 그 눈이 지금도 선합니다. 살았이쓸 동안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기를 바래야지요. 만나면. 그래요. 내가 만나면 차정 동지에 대한 죄스러움을 빌고 싶었어요. 거기에 대한 면죄부를 저에게 줬네요. 어서 드세요. 휴의는 억지로 미역국을 먹었다. 먹고 나서 정신 차려서 싸우는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 억지로 라도 낫겠다는 강한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일까. 삼일 째 되는 날 부터 부종은 내렸고 총상은 아물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에는 저 혼자 방안에서 거를 수 있었다. 그는 연습을 했다. 팔 힘을 길렀다. 처음에는 네발로 기다가 나중에는 비틀거리며 서고 아장아장 걸었다. 세 살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아. 종아리 통증이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한 보름 정도 더 요양을 한다면 걷기는 완성되고 그 시간 만큼 더 지나면 달릴수도 있겠다 싶었다. 총상이전의 완전체 몸이. 이런 운 좋은 놈이 있나. 휴의는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이런 농담을 했다.

그나저나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안전할까. 병원장과 여순은 용의 선상에서 완전히 벗어 났을까. 나 때문에 그들이 체포되고 병원이 문을 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마 잘 빠져 나갔을 것이다. 여순의 남편은 지략이 뛰어났고 여순도 강한 여자였다. 휴의는 작전 과정에서 임정을 크게 칭찬했다. 여러번 지시를 받고 임무를 수행했지만 이처럼 세부적으로 완벽한 작전은 없었다. 병원장 부부를 묶어 놓은 것은 계략중의 최고였다. 불가항력의 그들 상태는 혐의자에서 되레 피해자로 둔갑하기에 적합했다. 일제는 자신의 도주를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의심을 받던 말수는 신뢰를 얻었다. 최초 신고자인 병원장을 의심할 근거는 없었다. 말수의 발 빠른 신고가 자신을 용의자로 제외하는데 적중한 것이다. 윤사장 역시 그 전과 같은 밀정 역할을 수행했다. 하루 늦은 신고를 문제 삼았으나 따로 심문한 결과 말수의 진술과 일치했고 영사관으로 직접 신고라러 온 것을 높이 샀다. 일제에게 윤사장과 말수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남았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얻을 것이 있을 거라는 판단은 와타나베가 내렸다. 잡아 넣은들 어떤 도움이 되느냐. 옥살이를 시키자는 의견을 이 한마디로 묵살시켰다. 여론만 나빠져요. 여기 조선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 보고 있어요.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일본이 아량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윤사장도 전처럼 말수와 내왕하는데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았다. 일본 영사관은 말수를 믿을 만한 밀정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그가 임정 요원을 만나는 것을 묵인했다. 선생을 포함해 한꺼번에 잡아들일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였다. 이런 계략을 일본 영사관이 짜고 있다는 것을 말수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려야 할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나 임정에게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줄타기는 그에게 새로운 의욕을 주었고 그는 늘 표정관리를 잘해 나갔다. 포목점 집 사장도 예전의 지위를 찾았다. 저 정도 충성심이라면 믿을 만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사람이 귀했다. 윤사장과는 수 년째 접촉을 하고 있다. 조선 사정에도 밝고 오가는 조선인들의 동태를 알려주는 것도 그였다. 그 즈음 일본 영사관의 고민은 다른데 있었다. 모처에서 한다는 한국독립군의 훈련이었다. 말수가 여러날 훈련에서 빠졌고 다른 대타가 없어 병력들이 불안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들어가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웠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황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인수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 영사관은 태평양전쟁이 패망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역전 시키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선독립군으로 훈련받는 사단 병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영사관은 포목점 사장을 통해 말수에게 이 삼 일간의 마무리 훈련을 지시하고는 그들이 압록강으로 이동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 야밤에 트럭으로 만주 전선으로 뺀다는 계획을 세웠다. 날이 밝을 무렵이면 그들은 속았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어쩌겠는가. 그들 가운데는 도망친 학병 출신들도 많으니 탈영에서 돌아와 자대로 복귀한 것이 된다. 거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주고 그런 자들에게는 일계급씩 특진을 시켜준다. 그리고 황군의 옷을 입히고 각자 분대로 나눠 인솔장교에서 인계하면 감촉같이 물갈이가 되는 것이다. 포목점 사장과 헤어진 말수는 이런 소식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형사들은 병원에서 모습을 감췄다. 귀찮은 상대가 사라지자 말수는 훈련기지의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났다. 일제가 나서기 전에 임정이 먼저 움직인다고 해서 자신이 의심받을 상황은 아니다. 어느 쪽 군인인가는 임정과 일제가 어떤 선택을 먼저 할지에 따라 다르다. 일단 휴의가 부상을 당한 이상 그는 병력 인솔은 어렵다. 그렇다면 지난번 왔다는 약산이 그 일을 대신할까. 아니면 몽양이나 죽산의 몫일까. 아니면 일본군을 탈영했다는 선생의 비서인 장발장의 몫인가. 그는 자신이 이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하루 빨리 손쓰라고 임정에 알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일제 몰래. 그리고 한 두 시간의 시차을 두고 일제에도 독립군의 움직임이 수상하니 어서 부대를 파견해 사단 병력을 태평양 전선으로 빼야 한다고 충고해야지. 그나 저나 일본 영사관이나 이곳 수사기관이 예전만 못해. 정보도 느리고.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한 대처도 어리숙해. 뭔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말수는 오전 일찍 환자를 보고 나서 임정 사무원과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 안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었다. 약산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약산의 옆에는 장발장이 함께 있었다. 휴의 탈출에서 벗어나 여유가 생긴 약산은 임정 보고를 마친 즉시 장발장과 함께 바로 모처로 이동했다. 약산은 죽산이 아마 지금쯤 험준한 산맥을 넘고 있겠지 생각했다. 도중에 만나는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중국 농부나 상인으로 변장하면서 학도병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무사히 임정으로 인솔한다. 학도벼을 죽산에게 맡기고 나자 약산과 장발장은 한 시름 놓았고 바로 독립군 인수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휴의 장군 대신 두 개 연대로 나눠 일년대는 자신이 이연대는 장발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꿈에 그리던 압록강, 두만강 도강 작전이다. 휴장군도 이해겠지. 한시가 급한 것을 뒤로 미룰 수 없다.  일제는 무너지는 속도가 빠르다. 함흥경찰서부터 파괴하고 그곳에 갇혀 있는 독립투사들을 석방시키자. 그리고 남으로 남으로 이동해 평양을 접수하고 개성을 거쳐 서울로 진격한다. 걸리는 것들은 모두 사살한다. 앞길을 가로 막는 자드레게 사전 경고는 없다. 잔학한 무리들은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우리 독립군 제3지대 병력들이 총독부를 접수하고 일장기를 끌어내린다. 그리고 태극기를 건다. 2지대 병력들은 혹시 모를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산개한 후 일장기가 팽개쳐지고 자랑스런 태극기자 올라가는 모습을 벅찬 감격으로 지켜본다. 그 시점에서 일제가 패망하면 좋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정해지자 약산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의열단 소속 병력을 급히 소집했다. 날센 8명의 장교급이었다. 피로써 맺은 형제들이었다. 한 마디로 믿을 만한 자들이었다. 음모와 배신이 날뛰는 시대에 이들은 약산에게 형제보다 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당장 전투를 한다해도 부족함이 없는 요원들이다. 일단은 모처에서 훈련 중에 독립군 사단과 합세하는 것이 급선무다. 훈련 대장 말수를 만나 흩어진 군대를 하나로 모아서 도강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훈련 대장이 돌아왔다. 병원은 어쩌고. 잠시 약산은 이런 생각을 했다. 박군도 자리를 비웠다. 병원은. 그러나 거기 안주인 역시 의사이니 어떻게든 꾸려 나갈 것이다. 두 시간이다. 상해 병원서 이곳 험준한 산악까지 이동하면서 걸리는 시간은. 말수는 인수인계만 해주면 된다. 그리고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병원으로 복귀하면 그의 임무는 끝난다. 다음은 우리차례다. 한양 진공 작전. 그래 나의 마지막 임무는 한양 진공작전이다. 거기 까지만 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서대문 형무소 습격이다. 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을 꺼내자. 그리고 아내에 대한 한풀이 복수. 내가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한 번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차정. 아내이기전에 동지였다. 여성독립군. 그대는 자랑스런 나의 아내이며 자랑스런 조국 조선의 딸이다.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죽은 뒤의 이름이.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이 허망하다 해도 나에게는 가장 값진 이름이다. 약산은 자신이 사령관의 부임을 받고 급하게 온 연유를 부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약산의 존재를 알고 있던 부사령관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였다. 사령관이 지금 오고 있으니 우리끼리 훈련을 마무리 짓자고 말했다. 사전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부사령관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도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였다. 군인들은 하루만 쉬어도 몸에 녹이 슬기 때문에 우선 기름칠 부터 했다. 연병장을 돌고 사격을 하고 제식훈련을 했다. 약산이 도착한 후 독립군 사단은 군인 같은 일과를 소화해 냈다.

약산은 이미 배운 폭약설치와 각개 훈련, 개인 화기와 수류탄 훈련을 일일 점검하면서 이제는 병사 각 개인이 폭약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경지에 까지 끌어 올렸다. 실력이 늘면서 사단의 사기는 크게 올랐다. 사령관 말수는 오지 않았다. 그는 전통으로 자신의 임무는 약산에게 일임했음을 부사령관에게 통보했다. 부사령관은 받아들였다. 그것이 말수가 아닌 임정의 지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대원들은 그 뜻을 충실히 따랐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배운 기술을 써먹기 위해 하루빨리 출정을 원했다. 적과 대치해서 배운 기술은 써먹어야 한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군기는 빠지고 사기는 저하된다. 약산은 부사령관에게 즉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상황을 설명을 했다. 처음 약산을 맞았을 때는 바로 출동 명령이 떨어진 줄 알고 기뻐했던 부사령관의 시무룩했던 표정이 밝아졌다. 부하들에게 드디어 우리는 출동한다는 일성을 내지를수 있기를 얼마나 학수고대 했던가. 그도 그만한 정세는 파악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이 틀어진 일제가 자신들의 병력을 접수해 태평양으로 빼낸다는 첩보를 들은 터라 당장 출동은 불신을 제거하는 기폭제였다. 시간끌기 작전이 끝난 것이라고나 할까. 잘됐습니다. 난 전투라면 나도 이골이 났소. 당장 갈기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한데 천금같은 소식입니다. 사기 충전한 부대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임정의 승인은 받았나요. 부사령관이 물었다. 출동은 임정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승인은 차후에 받기로 했어요. 이것은 나의 단독 결정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일제도 장교 30여명을 이곳으로 파견하고 있어요. 사령관 말수가 대동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요. 이는 죽산과 협의된 사항이고요. 부사령관은 죽산이라는 말에 두 사람이 언제 만나고 언제 합의를 봤는지 세세하게 물었다. 그런 다음 두 분이 합의했다면 믿어야지요. 하고 사후 스이늘 인정했다. 장소는 정해졌나요. 일단 여기서 18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이동합니다. 부하들에게는 긴급상황인 것을 알리고 군장을 당장 꾸리라고 하시지요. 그리고 여기 나와 함께 온 의열단 소속 장교들이 8중대로 나눠서 병력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장교들은 여기 있는 독립군과 한 몸 한 마음입니다. 동지라고 여깁니다. 다만 전투 경력이 많고 소련이나 중국군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으니 따라야합니다. 좋소. 우리도 믿고 의지할 누군가가 절실한 상황이니. 부하들도 의열단이 우리를 접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내 위치가. 부사령관은 그대로 그 자리를 유지합니다. 8명의 장교를 진두치휘하는데 사령관인 나의 명려을 따라야 합니다. 약산이 눈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노려보는 듯한 태도에 부사령관이 눈을 내리 깔았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조선 호랑이다운 기개 앞에 부사령관은 멈칫했다. 혹시 이 자도 배신자가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 였다. 이 시국에서는 누구라도 배신의 길을 가기 쉽다. 그러나 저 눈은 아니다. 눈에 노란 눈에서 불이 나고 있어. 배신할 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 군장을 꾸려라. 오분 출동이다. 안전 지대에 도착한 후 휴장군을 기다립시다. 거기가 접선 장소입니다. 왜 휴장군은 이곳으로 오지 않았나요. 여기서 진군하면 될텐데요. 아직 듣지 못했군요. 약산은 휴의가 총상은 입은 내막과 탈출한 경위를 설명했다. 그렇군요. 약산이 부연했다. 세 발을 맞고도 살아났어요. 그 분이 어디 일제 놈의 총알에 가죽이 뚫리겠습니까. 휴장군이 합류하면 우리 부대는 3개 조직으로 나눠져 압록강, 두만강으로 침투할 겁니다. 거기서 부터 일제를 빗자루로 쓸듯이 쓸어 나가려고요. 우리도 그 생각을 줄 곳 해오고 있었어요. 지체 할 시간이 없어요. 빨리 이동합시다. 휴장군 부상과 탈출로 일제는 지금 이곳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도 장소를 알고 있으니 언제 급습할지 몰라요. 아니면 사령관을 대동하고 작전 개시를 할수도 있고요. 이미 시작된 지도 모릅닏. 작전 개시라니요. 조선으로 들어간다고 눈속임하고 만주의 깊은 골짜기로 데려가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황군의 옷을 입히고 연합군의 총알받이로 내 몰겠지요. 부사령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독립군이 일제의 개가 되어 싸워야 하는 형편이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일제와 여기서 맞설 수는 없어요. 우리 목적은 만주에서 일제와 전투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땅에 있는 왜놈을 몰아내는데 있으니까요. 그럽시다. 서두르면 정오에 안가에 도착할 겁니다. 거기는 어떤 곳인가요. 중국연합군이 쓰던 장소인데 장개석의 사전 승락을 받았어요. 그들도 지금은 우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거기서 전열을 정비한 다음 휴장군과 합세합시다. 좋아요. 그럼 당장 출발입니다.

다음날 새벽 약산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원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안정하게 이동했다. 애초 계획보다 반나절 정도 늦었으나 그것이 되레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주었다. 행군하면서 그들은 하나된 마음을 느꼈다. 그 마음으로 조선의 독립에 투입된다니 감개 무량했다. 우리 손으로 일제를 몰아내자. 총독을 죽이고 흰옷 입은 백성을 해방시키자. 분위기는 무르 익었다. 이미 공중은 연합국의 대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 정도를 넘어서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해 나갔다. 일장기를 단 가미카제 특공대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미군의 비행기를 상대할 만한 힘이 일제에게는 없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만주 일대 일본군 진지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감했다. 약산의 부대가 늦은 것은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지연작전의 일환이기도 했다. 연합군은 독립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훈련장도 일본군 막사로 보고 공격 목표에 넣었다. 약산의 부대가 떠나고 나서 삼십 분 후 미군 전투기들은 그곳을 공격했다. 임정과 미군이 사전 연락된 결과였다. 먼 거리에서 막사가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약산은 미군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는 부대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면서 상당수가 파괴된 일본군 진지와 숱한 일본군 시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들은 첫 발의 성공이후 연속적인 타격을 감행했다. 영점을 잡을 필요가 없자 미공군은 그곳이 무차별적으로 파괴했다. 삼십분 만 늦었어도.부사령관이 헬멧을 벗고 약산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십년 공부 도루아미타불이 될 뻔 했어요. 고맙습니다. 사령관님. 운이 좋았어요. 하늘도 우리 편입니다. 그때 전투기 편대가 공격대형으로 모였다가 급전직하하면서 마지막 폭탄을 쏟아 부었다. 막사는 물론 연병장도 비행기 이착륙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여기 저기 생겨났다. 저들은 우리편이다. 임무를 마친 전폭기들은 기수를 만주 이북으로 돌렸다. 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독립군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이제 독립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확신이 섰다. 미군이 하늘에서 돕는다면 지상전은 우리것이다. 한국독립군의 사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다.

미군 전투기가 떠나고 나서 두 어시간 후에 약산은 그것이 임정과 미군의 연락으로 이뤄진 협상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약산보다 먼저 움직였던 몽양이 미군의 공격 지점이 독립군 부대의 근거지인 것을 알고 손을 쓴 결과였다. 미군이 여기까지 와서 공격했다는 것은 일제가 완전하게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약산의 부대원들은 날듯이 산을 넘었다. 일제 역시 그곳은 중요한 거점이었고 훈련된 독립군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들은 말수대신 포목점 사장을 앞세우고 미군의 공습을 피한 독립군 진지로 쳐들어왔다. 황군으로 편입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배불뚝이 윤사장은 군관학교 출신답게 군복을 입자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그에게는 훈련병을 지휘할 만한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일제의 소대 병력은 순식간에 연병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휴의의 부대가 떠난 지 한 시간 후였다. 일개 소대 병력으로 사단 병력을 인수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은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독립군 훈련장에는 개미 한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 오를 뿐이었다.여기도 파괴됐다. 허탈한 그들은 포목점 사장을 윽박질렀다. 작전이 미리 샌 것에 대한 추궁이었다. 그러나 포목점 사장은 나름대로 이유를 댔다. 이 보시오. 저기 폭탄 구멍이 보이지 않나요. 당신들은 눈을 어디에 두고 있어요. 그가 반격을 폈다. 저런 상태에서 막사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병사들이 있겠소. 이것은 사전에 일본군 침투에 대비해 병력이 미리 빠진 것이 아니라 방금전에 서둘러 떠났다는 것의 확실한 증명이었다. 떠나지 못한 자들은 저기 큰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오. 일본군 장교는 할 말을 잊었다. 애꿎은 포목점 집 사장을 추궁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가 둘러댄 이유는 맞았다. 그래서 더이상 그를 몰아 부칠 수 없었다.  이 한마디 말로 포목점 사장은 혐의를 벗었다. 사장님, 오죽 화가 났으면 제 부하가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그 보다 높은 장교가 나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자이라니. 이 계급장이 안 보이시오. 난 별을 단 장군이오. 투스타 사단장이란 말이오. 사단장이라고 부르시오. 장교는 급조된 군복에 별을 달아 준것이 자신인 것을 까맣게 잊은 말수가 같잖아 보였으나 그냥 넘어갔다. 말싸움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사단장님. 일제 장교는 당장은 윤사장이 필요했고 써먹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장교는 일단 그를 이런식으로 달랬다. 이러고들 있을때가 아닙니다. 추격해야지요. 윤사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잡아서 빨리 황군에 편입시킵시다. 여기 있는 장교 13명이면 사단 병력인솔이 가능합니다. 그들이 독립군에 편입해 조선으로 가거나 미군측에 서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어디로 간 줄 알고 뒤를 쫓는 답니까,그리고 쫒다가 우리가 당하면요. 일단 사냥개를 앞세웁시다. 그리고 3개조로 나눠 추격한 후 후발대가 올 때까지 전투를 지연시킵시다. 우리 장교들과 소대 병력이 있잖소. 그들은 충분히 사단병력이라도 해 볼만 해요. 우리가  등뒤를 따라 잡은 후 추격부대와 힘을 합치면 그들은 항복해 올 겁니다. 그때 피흘리지 않고 인수하면 됩니다. 윤사장이 인솔장교가 된 듯이 그럴듯한 작전을 내세웠다. 일제는 그 말을 따르기 보다는 원래 그러려고 했기 때문에 지체없이 병력을 출동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군 생활 중 작전 장교의 가장 큰 실수로 기록됐다. 노련한 약산이 그 정도 대비는 하고 있었다. 약산은 선발대를 앞세우고 후발대를 오분 거리에 두고 이동시켰다. 만에 하나 적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산의 의열단 장교들은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었다. 칠흑같은 밤에도 그들은 지형지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악했다. 돌부리에 걸려 약산이 넘어질뻔 했다. 이 길을 우리 선배들이 갔어. 홍범도 장군님. 장군님의 용기와 기개를 우리에게 주세요. 몸을 바로 세운 약산은 자신이 선두에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비호처럼 나서자 뒤따르던 병사들 역시 새끼 호랑이가 어미를 따라 가듯이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중간 중간에 낀 숙달된 조교들이 뒤쳐지는 병사들을 달래고 어르면서 그들은 하나의 무리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숨고 침투하고 공격하고 후퇴하는데 이골이 난 약산이지만 오늘의 이동은 어제의 이동과는 견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형이 험준했고 시간이 촉박했다. 안전 가옥까지 도착해야 안심할 수 있는데 일킬로 이동하는 것이 여간 벅찬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 작전의 성패가 조선의 운명에 결정적이 역할을 할 것임을. 휴장군과 접선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 절대적인 기회를 그와 함께 하고 싶다. 약산은 그런 마음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후발대를 잘 따라 오는가. 간격은 유지하고 있지. 약산은 중간 중간 부관에게 이런 질문을 쉼없이 하고 있었다. 추격대는. 낌새는 보이는가. 기분이 이상해. 여기서 일단 서너 명씩 산개하자. 각자 무기를 점검하고. 예민한 감각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작동됐다. 약산은 지체하지 않았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매복조를 만들었다. 앞선 부대들은 전방 일킬로 미터 앞에 대기 시킨다. 나머지는 여기서 일단 매복하자. 후발대가 기습을 받을지 모른다. 그들이 빠져 나간다음 추격해 오는 적은 우리가 잡는다. 매복조가 어둠 속에서 머리만 내놓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을 때 붉은 기운이 산의 중턱에 걸리기 시작했다. 산맥을 넘어온 해가 작은 산에까지 빛을 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은 징조인가. 시야는 확보됐다. 매복조는 적들이 근거리로 오기를 기다렸다. 후발대가 통과했다. 우리가 너무 붙어 있었군. 잘 됐군. 선발대와 합류하고 거기서 대기하라. 추격대는 우리 매복조가 처리한다. 약산은 급하게 따라 붙은 후발대를 나무라지 않았다. 간격을 유지하기 보다는 앞선 부대를 따라 붙기 위해 얼마나 사력을 다했을까. 따지는 것은 훗일이다. 컹컹컹. 사냥개의 짖는 소리가 들렸다. 거친 호흡이 다가온다. 매복조는 소총위 총구를 눈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정확히 조준했다. 서너 마리의 사냥개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총소리를 들은 적들은 일시 몸을 숨길 것이다. 그리고 총소리가 났던 곳을 가늠하면서 전진해 온다. 일단 적들의 숫자를 파악하자. 그리고 나서 한꺼번에 몰살 시키자. 약산은 지시 이전에는 어떤 누구도 사격을 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세 차례에 걸쳐 하달했다. 긴장한 병사들이 적을 보는 순간 겁에 질려 총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겨우 초병 서너 명만 잡을 뿐이다. 적들이 후퇴하면 우리는 추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약산은 포위망안에 적들이 다 들어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과연 약산의 작전은 먹혀들어갔다. 서 너명의 초병이 다가왔다. 그들은 죽은 사냥개를 살폈다. 그리고 냄새를 맡듯이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적들은 후퇴했다. 초병이 손짓을 했다. 그것도 부족해 휘파람으로 신호를 보냈다. 바위 속에 숨어 있던 일본군 소대가 서서히 전진해 왔다. 옆의 부관이 기관총을 들었다. 약산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아직은 아냐. 그 손짓을 30미터 위쪽에 있던 중대장도 보고 있었다. 그도 부하들을 손으로 제지했다. 겨우 소대병력이야. 많아도 50명도 안돼. 저 병력으로 사단을 인수하겠다고. 간도 큰 녀석들이군. 우린 8명인데요. 그런가. 간이라도 커야지. 이런 농담이 오간 직후였다. 약산의 올라갔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놀란 적들이 황급히 몸을 숨기기도 전에 약산의 부대가 총알을 뿜었다. 거치된 기관총의 위력은 대단했다.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즈음 이번에는 굉장한 폭발음이 들렸다. 설치한 폭약을 건드린 적들의 몸뚱이는 하늘 높이 솟았다가 사방으로 분해돼 떨어졌다. 인계철선을 건드렸어. 더 볼 것 없는 승리였다. 적들은 허둥대기도 전에 전멸됐다. 살아 남은 서 너 명만이 꽁무니가 빠지게 줄행랑을 쳤다. 추격할까요. 내버려 둬. 살아 돌아가서 이 상황을 알리도록.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안 될 것도 없지. 궁지에 몰린 적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 우리 도주한 자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자. 그러기 전에 노획물을 수고하고. 쓸만한 무기를 챙겨. 소총과 권총 그리고 실탄 수거가 끝나자 약산이 다시 출발을 명령했다. 겨우 일개 소대병력으로 독립군 사단을 포섭하려던 일제의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뒤는 신경쓰지마. 앞만 보고 가는 거야. 적들의 추격이 사라지자 밤새 이동하느나 지친 병사들이 잠시 휴식할 때 약산은 휘하 장교와 부사령관을 따로 불렀다. 오늘 작전의 성공을 치하하고 압록강 진격 잔적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 정도의 실력이면 일본 정규군과 붙어도 마땅히 승산이 있다. 보았지요.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일제도 별 거 아니지요. 우리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해요. 두려움 보다 더 큰 적은 없어요. 약산은 부하들을 추어 올렸다. 사기를 올려 준다는 차원이었지 없는 실력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대원들은 알고 있었다. 붙어보니 별 거 아니네. 이런 자신감은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 볼만 하지요. 어때요. 저보다 더한 군대도 상대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개인화기를 잘 다루고 폭약도 장난감 만지듯 하는 일당백의 전사들입니다. 우린 학도병으로 급조된 일제의 오합지졸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손에 조국으 독립이 달려 있습니다. 숲 속이 쩌렁쩌렁 울렸다. 거칠 것이 없었다. 산 소게서 사단 병력의 고함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이 기세를 밀고 나가자. 적들에게 틈을 주지 말자. 우리의 앞길은 오로지 무장투쟁 뿐이다. 약산은 여세를 몰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일본이 항복하기 전에 강을 넘자. 두만강에 기다려야. 압록장에 내가 간다. 그래야 한다. 일제가 떠난 자리를 우리가 접수하자. 일장기 대신 성조기 대신 태극기를 총독부에 걸어야 한다. 그래야 독립이 온다. 이 땅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오천년 동안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주먹을 쥔 약산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그러기 전에 아무리 급해도 백두산을 한 번 올려다 보자. 그럴 시간은 있겠지. 자 십분간 휴식. 약산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등을 뒤로 기댔다. 그리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 앉더니 연기를 내 뿜으면서 옆에 있는 부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만강은 휴장군에게 맡기기로 했다. 지금쯤 대기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병력의 절반은 거기로 간다. 우리는 압록강을 넘는다. 약산이 압록강을 선택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앞잡이, 고문의 황제 덕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덕기를 떠올리자 약산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갈았다. 덕기의 악행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립군들은 누구라도 덕기의 손에만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덕기에게 잡히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소문이 퍼졌다. 조선인이면서 조센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는 순사를 거쳐 순사부장, 경부까지 승승장구했다. 함흥경찰서를 근거지로 그는 숱한 독립군을 잡아 고문을 했다. 조선인은 조선인 손으로 처단한다는 일제의 이이제이 전술을 적극 따른 인물이었다. 간독특설대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입만 열만 이렇게 떠들고 다녔다. 우리가 조선독립군을 소탕한다고 해서 조선 독립이 늦게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일제를 배반하고 그들 편에 써서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서 조선 독립이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조선 독립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조선 독립군 게릴라를 계속 추격하고 사살해야 한다. 이런 덕술이 군복을 벗고 경찰고 변신하더니 독립군 고문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나 악질이었는지 평안도는 물론 멀리 부산이나 목포까지도 소문이 자자했다. 조선팔도에서 제일 가는 악질 친일 경찰 모리배 덕기는 서울의 덕술이 부산의 하형사 진주의 강형사 마산의 허병이와 더불어 조선의 4대 고문귀였다. 약산이 더 치를 떠는 것은 덕기가 청산리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운 독립군 장군 다수를 고문하고 죽인 때문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부하나 김좌진 장군의 부하들 가운데 그의 손에 죽은 경우가 여러명 있었다. 그는 일단 독립군이나 독립운동가를 잡으면 가혹하기가 이를데 없이 대했다. 차마 글로는 옮기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 눈을 도려내고 혀를 뽑았다. 그는 그런 과정을 고문을 기다리는 다음 고문 피해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독립군들은 차마 동료가 지르는 비명을 피하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돌렸다. 그러면 그는 고문을 멈추고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했다. 그것이 더 고통스러운 형벌이라는 것을 덕기는 알고 있었다. 자 보아라, 독립운동한다는 자들의 최후가 어떤지를.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덕기는 뽑기의 달인이었다. 혀를 뽑고 손톱을 뽑고 발톱을 뽑았다. 도려내기도 잘 해 관절의 뼈를 살과 분리했고 나중에는 눈알을 얼굴에서 빼냈다. 항일 투사들은 덕기 이름만 나오면 두려움에 떨지요. 그보다 악질은 없어요. 그 자를 죽이지 않고는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선생님도 반드시 그 자를 처단하라고 명령했고요. 약산은 선생이 그런 지시를 내리자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작전 지휘에 있어서는 현장 경험이 많은 그가 선생보다 낫다고 여겨 간혹 논쟁을 벌인 적이 있으나 그런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명령이 없더라도 자신이 나서야 할 판이었다. 말하자면 덕기의 처단은 임정의 만장일치 결론이었다.  약산이 압록강을 선택한 것은 강을 넘어 덕기가 살고 있는 함경도를 치기 위해서였다. 덕기는 그런데 지금은 형사일보다는 관료가 되어 철도 사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있다면 어찌 이런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멀쩡한 사람의 혀가 뽑히고 눈알이 얼굴에서 떨어져 땅에 굴러도 침묵하고 있었다. 신이 하지 못한다면 내가 한다. 약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덕기가 친일 고문기술자가 된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주마. 너의 반성은 바라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형사일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거리가 생기면 고문을 하고 평상시에는 관료일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철도 부설에 필요하면 그 쪽으로 갔고 경찰이나 헌병대에서 고문이 급하다는 지원을 요청하면 두 말 없이 경찰서나 군부대로 달려나갔다. 새벽에도 조센징을 장작불로 지져 주시오, 하면 맨발로 뛰쳐 나갔다. 약산의 부하 가운데 한 명도 그에게 걸려 비명횡사했다. 여성 독립운가에게는 더 치욕적인 고문을 했다. 얼굴에 흉터를 남기는 것은 다반사고 임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도산이 그 여성 같은 분이 10명만 있으면 한국은 독립되었다는 그 독립운동가도 그 놈에게 걸려 들었다. 약산은 김마리아를 추억했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는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한다는 말을 늘 새기고 있는 것은 덕기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이번 서울진공작전에 반드시 덕기를 체포한다. 그리고 죽이기 전에 서너 가지만 묻기로 했다.너는 왜 조선놈이 조선독립군을 잡고 고문하고 죽였느냐. 먹고 살기 위해서다. 지금은 그런 짓 하지 않아도 잘 살지 않느냐. 더 잘 살고 싶었다. 허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느냐. 배운 것이 그것이고 위에서 시키니 그대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체질에도 잘 맞고. 사람을 불구로 만들고 죽이는 것이 취미라는 말이지. 너도 해봐라. 처음 하기가 어렵지 한번 하고 나면 그 맛을 일지 못한다. 허어. 그래 지금은 후회하느냐. 난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다. 이것은 대일본 제국을 하는 일이다. 대를 물려 줄 생각이다. 내 아들이 틈틈이 내가 하는 고문을 배우고 있다. 허어. 알았다. 대를 물려 고문을 하겠다고. 장하다. 그러나 그 대를 잇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너도 한 번 당해봐라. 나를 고문하겠다고. 나를 죽이겠다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이 조센징 벌레만도 못한 놈아. 그래 실컷 욕을 해라. 잘못했습니다.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그러마, 네 소원을 들어주되 눈과 혀를 뽑겠다.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아니 살려 준다면서요. 그런다고 죽지 않는다. 셋 샐 동안 말하지 않으면 둘 다 하겠다. 둘 다 아닙니다. 간악한 일제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약산은 이런 대화를 상상하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하지만 죄를 따져 묻는 것은 필요했다. 죽기전에 반성의 기회를 주고 싶다. 네가 한 고문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 것인지 네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너는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알 것이다. 독립군 제 1지대장의 명령으로 너를 사형에 처한다. 덕기가 제발 살려달라고 두 손을 내밀고 싹싹 빌었다. 고문할 때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알았으면 제가 이랬겠어요. 맹랑한 놈이다. 총알이 아까우니 저기 있는 저 돌로 한 방에 보내 주마. 그러기 전에 일제의 훈장을 받은 그 가슴을 발로 걷어차야지. 자랑스런 훈장이 찢기는 기분이 어떠냐.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조금 더 대화가 필요하다 싶었다. 네가 그렇게 일본 노래를 잘 부른다면서. 왜놈들이 네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일본이노 사람보다 헤 노래를 잘 부른다 헤헤 하면서 박수를 쳤다지. 그래 죽으면서 불러라. 장송곡 치고는 제법 그럴듯 하겠지. 약산의 눈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먼저간 동료가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잠깐만, 잠시만요. 그 돌을 내려 놓으시오. 난 이런 사람이오. 일본 타도, 대한 독립만세. 덕기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내가 상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상황은 끝났다. 조국을 배신한 자의 말로는 똑똑히 보여주마. 내 너를 왜놈보다 먼저 잡아 반드시 처단하겠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부 사령관이 말했다. 그런데 사령관님. 그건 사사로운 감정도 들어간 것 아닙니까. 일제가 급하지요. 그깟놈 고문 형사 한 놈 때문에 지체한다면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잖아요. 더구나 부하가 당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고요. 그렇기도 하지만 조금 더 들어 보시오. 노기띈 얼굴로 약산이 덕기의 만행에 한 발 더 들어갔다.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평안도 사람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하룻밤에 수백명이 걸려들었다. 그는 잡힌 피해자들이 팔둑에 고무줄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게 하고는 주사기를 가져와 드러난 힘줄에 찔렀다. 피가 가득차면 그것을 그대로 피해자 얼굴에 뿌렸다. 이른 바 착혈고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부가 백짓장이 되도록 뽑았다. 몸에서 피가 다 빠진 피해자가 더 이상 뽑을 피가 없으면 옆의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피빠진 몸은 마른 나무처럼 가볍게 날아갔다.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온 몸을 지지는 대상은 주로 사회주의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병행했는데 잡히는 족족 자신의 살에서 타는 냄새를 자신의 코로 들이 마셔야 했다. 하도 지져대 손에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도 덕기는 지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간혹 아주 젊은 청년들도 잡혀왔다. 이십 대 이하인 경우 그는 호의를 베풀었다.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애들의 몸에는 상처를 내지 말라. 우리 황군에 유용하게 쓰일 몸이시다. 그러면서 주전자를 가져 오게 했다. 거꾸로 매달린 소년들의 콧구멍에는 뜨거운 고춧가루 물이 쉬지 않고 들어갔다. 비명을 지르다 기절하면 수건을 얼굴에 던졌다. 호흡이 멈춘 소년은 발작을 하다 자기가 판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치안유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은 덕기손에 이렇게 죽어나갔단 말입니다. 이래도 내가 사사로운 개인 감정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부사령관은 고개를 숙였다. 일단 압록강에 넘으면 우리 특공조는 덕기의 집을 급습합니다. 그를 처단하고 나서 바로 본대로 복귀하는 것이지요. 거기서 부터는 또다른 작전이 필요해요. 함경도 경찰서를 불태우고 평양까지 일사천리로 진군해야 합니다. 남하하면서 간간히 적들과 교전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만 군대고 경찰이라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질 겁니다. 이런 것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조선독립군과 전쟁을 한다는 시나리오를 일제는 짠 적이 없거든요. 그럴 겁니다. 이런 결정에 동조해 주다니 오늘은 분명 유쾌한 날입니다. 선전공작에 쓸 찌라시를 많이 준비합시다. 각각 100장씩은 가져야지요. 전단 살포를 하면서 남으로 갑시다. 전단지에 쓸 내용은 준비했습니까. 부사령관이 물었다. 조금씩 생각나는 대로 써야지요. 뭐 이런 식이면 어떤가요.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에는 조선팔도 삼천리 이 강산을 벗삼아 죽을 것을 맹세 합니다. 만주벌판 대신 한반도라고 해도 좋고. 이것은 지청천 장군이 한 말이지요.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장군, 유관순, 김마리아, 김란사 열사의 말씀도 가슴에 새깁시다. 약산의 부대가 이렇게 남하에 속도를 낼 때 건강을 되찾은 휴의 역시 뒤질세라 부대를 정비했다.. 내가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조선도 이랬으면 좋을 텐데. 기운을 차린 그가 제일 처음 생각한 것은 자신의 건강처럼 조국도 잃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아프고 나서 더 강해졌다. 의심이 들던 독립에 대한 기대는 더 커졌고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약산의 압록장 진격을 승인한 이후로 휴의의 자신감은 더 커졌다. 약산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너서 평양까지 접수해주면 두말할 것 없겠다. 우리 부대와 누가 먼저 평양에 도착하느냐 내기를 해도 좋아. 휴의는 또다른 사단의 책임자로 경쟁심이 일었다. 그는 두만강을 넘어야 한다. 아직 강바람은 차다. 조금 지나면 강이 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늦출 수는 없다. 임정은 전례없이 서두르고 있었다. 약산은 지금쯤 도강에 성공했겠지. 임정의 선생은 부상에서 막 회복하자 마자 전선으로 떠나는 것이 미안했던지 휴의에게는 개시 날짜를 물어왔다. 조금 더 지체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우리라고 질수야 없지요. 그러나 열흘도 아니고 하루 정도 늦는 것은 문제 될 것 없습니다. 각 대대와 중대장 인선까지 마쳤으니 내일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출정할까 합니다. 좋아요. 두 분이서 경쟁 한 번 해보시지요. 임정 수뇌부는 이렇게 농담을 했다. 그러나 휴의의 긴장된 얼굴은 이번이 마지막 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더는 끌어올 병력도 없다. 중국 국민당도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다. 소련은 믿을 수 없고 미국은 작은 반도 나라 조선쯤이야 지도에서 지웠을 것이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병력 손실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요. 알다시피 지원부대는 없습니다. 식량은 각자 조달해야 하는데 절대로 민간에 피해를 줘서는 안 돼요. 자발적 협조라도 반드시 갚겠다는 증서를 써주기 바랍니다.

휴의는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 것이라면 염려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병사가 급하게 공격하고 이동할 때 사령관이 그것을 일일히 확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휴의는 당연히 그래야지요, 라고 말하려다가 각 부대장에게 신신방부하도록 명령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전선의 특수성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일제나 독립군이나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들에게 독립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휴의의 눈을 들여다 봤다. 사령관이 더 열심히 챙기라는 당부였다. 전투에서 이기고도 민심에서 지면 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휴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백성들에게 써준 각서는 임정이 처리해야지요. 독립된 나라에서 흰 옷 입은 백성에 진 빚을 열배로 갚아야 합니다. 곤궁한 그들에게 돕지는 못할망정 식량을 조달했다면 그것은 애국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 선생은 말을 하면서 상자의 서랍을 이리저리 열더니 한 곳에 있던 지폐 꾸러미를 휴의에게 내밀었다. 약탈하는 대신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절실할 때 사용하시오. 전적으로 장군에게 맡깁니다. 휴장군은 임정의 살림을 뻔히 알면서도 거액을 내놓은 선생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봉투를 앞에 놓고 말을 이었다. 이제 제대로 한 판 붙는 거니까요. 일단 치고 빠지는 작전을 쓸 겁니다. 아직 수적으로는 우리가 불리하니 그 방법이 최선이지요. 남하하면서 일제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하고 방어진지를 기습하면 적들은 당황해서 허둥댈 겁니다. 선생의 눈에서 그게 맞다고 동조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조선 땅에서 독립군과 이런 심각한 전투를 예상한 일본군은 아마도 육군은 물론 해공군까지도 한 명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야말로 기습이지요. 맞아요. 그래서 작전이 필요한 거고요. 일정은 나와 있나요. 경성까지 한 달의 시간을 잡고 있어요. 평양은요. 보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강물이 얼기 전에 얕은 곳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서울에서 봄을 맞게 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어쨌든 1919년 그날의 함성을 기념할 수 있도록 해 볼 참입니다. 그날의 만세소리를 일제에게 들려줘야지요. 선생은 또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종로서 부대가 3천 명의 지원병을 압록강과 두만강 일원에 깔아 놓았다는 첩보를 받았어요. 그들이 지키고 있다면 우회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점을 저도 걱정하고 있는데요. 매복하는 적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완용의 병력은 열에 아홉이 조선인입니다. 그들을 회유하거나 선무 공작을 통해 우리 편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싸우기 전에 적진을 와해시킬 계획입니다. 다 생각이 있었네요. 약산도 찌라시 제작이 중요하다고 일전에 말했었지요. 그런 작전도 일단은 적과 접촉해야 하는데 전투 초반에 인명 소실이 크면 낭패지요. 그래서 작전을 하루 정도 늦춘 겁니다. 뚜렷한 해결책은 없지만 오늘 회의에서 중요한 단서를 잡았어요. 함경도 뱃사공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서너 척을 이미 섭외 완료 했어요. 일부를 뱃사공으로 변장시켜 놓고 적의 위치와 동태를 파악한 다음 싸울 것인지 아니면 우회해서 통과할 것인지 정하려고요.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 고기를 잡을 시기는 아니잖아요. 어구를 손질하는 척한다면 크게 의심 사지는 않을 겁니다. 선발 일개 중대를 배에 태워 함경도에 상륙시킨 다음 야밤을 틈타 조금씩 남하하려고요. 적의 반격이 없다면 굳이 공격하지 않고 빠르게 남하하려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이고요. 직접 현장에 가서 부딪쳤을 때 결론이 날 겁니다. 그때 그때 현장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지요.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어요. 건투를 비오. 사진 한 번 찍읍시다. 휴의는 임정의 지도자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따라 일어섰다. 낡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휴의는 왼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권총을 잡고 여차하면 발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무운을 비오. 약산도 삼일 전 이런 자세로 사진을 찍고 떠났습니다. 휴장군 부디 건강을 유의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총알 세 발을 맞고도 이렇게 건강합니다. 일제의 총은 썩은 총과 진배 없습니다. 사람 살 하나 파고들지 못하는 총으로 어찌 우리 독립군을 상대 할 수 있겠습니까. 휴의는 객기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것은 선생이나 임정에 대한 각오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었고 부하들에게 주는 용기였다. 나가자, 싸우러 가자. 휴의는 이렇게 다짐하면서 임정의 안가를 나와 빠르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산속에 있는 부대원들과 합류했다. 휴의가 산속에서 대원들의 환영을 받을 때 완용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문에는 한 달 전에 조선의 학도병 지원자 삼천명이 종로서장의 인솔하에 조중 국겨으로 떠났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를 근거로 선생은 그 기간이면 벌써 병력 배치가 끝났을 것으로 짐작하고 휴의에게 몸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완용은 애초 계획보다 늦어지자 화를 불같이 냈다. 젊은이들은 출세한다는 말에 국경 부근까지 왔으나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다. 쉽게 속아 넘어갔어. 이건 뭐 우리가 총알 받이 신세네. 무리 가운데서는 이런 불평도 나왔다. 굳이 독립군과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순사가 되면 강제 징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왔는데 그거나 이거나 다른바 없잖아. 완용도 이런 불만이 꺼진불처럼 살아나는 것을 알았다. 노동자, 농민들은 더했다. 삽질에는 능숙했지만 총을 겨우 잡아 봤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훈련 없이 급하게 끌고 오는데 천 명 이상은 대오를 이탈했다. 그들을 잡으러 갈 병력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완용은 이들을 강 하류에 모은데까지는 성공했다.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쳐야 한다. 어주이 떠중이를 모았으니 이 또한 순조로울 수 없었다. 그들은 총검술을 익히는 기본 군사 교육에만 보름 이상이 걸렸다. 말처럼 채찍질을 휘둘렀어도 이 정도 시간이 흘렀고 그나마도 겨우 발을 맞출 정도였다. 말이 총검술이지 찌르고 빼는 동작은 허수아비가 춤을 추는 모양새였다. 완용은 초조했다. 이런 병력으로 휴의를 막을 수 있겠나. 휴의를 쫒던 우리가 이제는 쫒기는 신세가 될지도 몰라. 곧 도강한다지. 막아야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놈에게 내가 질수는 없어. 영리한 놈.  한판 승부를 벌일 장소로 국경의 강을 택했어. 좋아, 나도 물러서지 않겠어. 그런 장소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제 놈이 아무리 기고 난다고 해도 겨우 수백명으로 우리를 당해낼 수 있겠어. 완용은 휴의가 이끄는 조선독립군은 기껏해야 수 백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들이 훈련된 자들이라고 해도 일당백은 불가하다. 숫자로 밀어붙이자는 것이 일단 완용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완용은 독립군 숫자가 일개 사단이 넘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굴이 뻘개졌다. 그렇게 컸단 말이지. 크기 전에 싹을 잘랐어야 하는데. 완용은 자신이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 했다. 그는 괴로웠다. 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장렬한 전사. 그는 자신의 최후를 그려봤다. 두만강에 둥둥 떠다니는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니 처량했다. 인생무상이란 이런 것인가. 이러려고 발버둥 쳤구나.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부디쳐 보지도 않고 이기고 지는 것을 논하다니. 나도 많이 약해졌어. 나보다는 저기 저 오합지졸 때문이야. 어쩌지.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고. 조선총독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제 한 몸 지키기도 버거운데 무슨 수로 병력을 보내겠어. 헌병대사령부는 조선 치안도 힘겨워 하는데. 그러면서 무슨 태평양전쟁의 승전보를 기대하는 원. 도대체 그런 정보를 올리는 자들은 어디서 소스를 얻은 거야. 거짓말이군. 다 거짓말이었어. 떠나 올 때 보았던 총독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오르네. 뭐 잘한 게 있다고 그런 표저을 짓는지 원. 탐탁치 않으면 네가 직접 하던지. 날 잘라도 하나도 아쉬울 게 없어. 이참에 휴의와 합작을 할까. 굳이 그 먼길을 갈 필요가 있소. 독립군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온다면 또 얼마나 온다고. 에잉. 불쾌한 감정을 담아 총독이 한 마디했다. 잡으라는 휴의는 안 잡고. 지금 잡으러 갑니다. 잡아서 끌고 오겠습니다. 두만강에서 부터 여기까지 차에 매달아 질질 끌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보고해. 미리 징징대지 말고. 완용은 총독의 인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면상을 갈겨주고 싶었다. 뭐, 후방을 친다고. 미군의 뒤를 타격한다고. 얼씨구나. 급조한 병력으로 양키를 어찌 상대한다고. 그런 말들이 완용의 귀를 마구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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