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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시가전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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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시가전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7.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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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휴의는 여성 독립군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가 권총을 빼들었을 때 서너명 아니 수십명의 일경들이 총소리 현장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녀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두 명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 자신도 걸려들게 된다. 해야 할 자신의 몫을 생각한 휴의는 뺏던 권총을 누가 볼세라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고 혼란한 틈을 타서 군중사이로 빠져 나왔다. 슬픈 일이었다. 그는 그 일을 두고두고 괴로워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쓰러진 여성 독립군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리를 움켜쥐고도 현장을 지휘했던 종로서 완용. 휴의는 그 자를 쏘고 내가 잡힐까 생각했다. 이것 역시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급하게 그는 마음을 정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야. 전해 줘야지. 내게 맡긴 유언장이나 마찬가지인 편지. 조선청년도 지끔쯤은 사태를 파악했겠지. 그녀가 준 것을 그녀 남편에게 전해주는 임무가 남았어. 그녀가 나에게 조선청년인 남편에게 주라는 밀봉한 편지. 나는 살아서 조선청년에게 내 과업을 전해줄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휴의가 이렇게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완용은 여성독립군을 사살한 공로를  인정받아 종로서 경부로 승진했다. 순사부장에서 경부보를 건너뛰고 두 단계 오른 파격적 인사였다. 그만큼 일제는 완용의 능력을 높이샀다. 서장감이 충분하다는 뒷애기들이 오갔다. 다음 승진일에 그는 조선인 최초의 종로서장에 등극하게 된다. 서장. 그는 서장 자리에 불려갈 때 마다 느꼈던 자리의 위상을 실감했다. 총독부는 완용이 오랜 기간 독립군 끄나풀을 미행한 끝에 이런 성과를 거뒀다고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특히 글자체를 모방한 아이디어에는 누구도 감히 따라오기 힘든 지략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같은 사실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자세히 보도됐다. 일제가 조선을 접수한 후 처음있는 파격적인 것이어서 언론은 이 사건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성의 한 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것, 그것도 여성독립군이 주동이 된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완용의 활약상을 강조하기  위해 낸 그 기사는 되레 조선독립군의 사기를 일으키는 기회가 됐다. 여성 독립군은 백주 대낮에 일제 형사 두 명을 사살했고 현장 지휘자인 완용에게 타격을 입혔다. 흰옷입은 조선 백성들의 시선은 완용보다는 여성 독립군에 눈길을 주었다. 신문은 여성독립군에 대한 짧막한 내용도 기재했는데 죽은 여성 독립군은 밀양 사람 남편과 함께 부부 조선 독립군으로 우리에게 매우 골칫거리라고 적고 있다. 상하이나 만주에서 여성 독립군 양성은 물론 의열단 조직의 일원으로 일제 요인을 암살하거나 경찰서 습격 등 불순한 행동을 한 것으로 기록됐다. 조선 독립은 물건너 갔다는 일제의 선전은 이로써 허구로 드러났고 흰옷입은 백성들은 여전히 조선독립에 대한 갈망과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애초 불량선인의 최후와 완용의 활약상을 보도한다는 것이 되레 조선독립의 현재를 증명하는 기사가 되고 만 것이다. 완용은 여성 독립군을 체포하기 못하고 사살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산 채로 잡았다면 그 남편이라는 자도 체포하고 상하이 임정도 괴멸 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내 고문 기술이라면 천하의 여성 독립군이라고 해도 술술 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눈앞에서 다 잡은 여우를 놓쳤다. 완용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책상을 '탁'하고 치고 자신의 입으로 '억'하는 분함을 토해냈다. 아직 다리에 입은 총상이 다 완치되지도 않았지만 그는 목발에 의지한 채 총알을 빼내는 수술을 한 당일을 빼고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여성 독립군의 사망은 조선통신발로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 언론에도 소개됐다. 해외 언론은 매일신보와는 달리 그녀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을 주목했다. 프랑스 언론은 일제는 조선에서 반드시 실패할 것을 예견하는 그녀가 살아서 꼭 조선독립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음을 전했다. 한국인은 절대 독립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일제의 주장은 거짓말이며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조선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그녀는 자신의 작은 조국을 해방 시키기 위해 그 남편과 함께 모든 정력을 쏟아 부은 조선 독립의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완용은 여론이 자신의 활약상 보다는 여성독립군의 독립운동에 초점이 맞춰지자 기분이 상했다. 더구나 자신이 승진한 것을 두고 불만을 품은 일본인 순사 부장의 모욕적 언사에 사적인 복수심이 들끓었다. 한 때 자신의 상관이었으나 이제 부하가 된 경부보는 경부인 자신을 깔보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종아리의 총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완용은 재활을 한다는 이유로 자기 방에서 수시로 일본도를 꺼내 자르고 찌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얏 이얏. 그는 칼을 휘두르면서 기압을 넣었다. 그 기압의 끝에는 경부보가 있었다. 반도인이라고 깔봐. 네 놈을 이 칼로 베리라. 완용은 그런 억하심정으로 독립군 토벌보다 경부보에 대한 처리를 우선순위에 두는 등 엇나가는 행동을 했다. 그 자를 처리하지 않고는 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내부의 적부터 처치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내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서장까지 노린다면 가급적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 완용은 이런 다짐을 하루에도 여런 번 되풀이했다. 

처음부터 완용이 그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부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부보는 부하이면서 자신을 형처럼 잘 따르는 완용을 동생처럼 여겼다. 견제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나도 조센징이기 때문에 자신에 앞서 진급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완용을 이용해 자신이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완용을살갑게 대했다. 완용도 그런 상사에서 형재애를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완용은 상관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신뢰가 배신으로 변하면 애초부터 없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승진한 완용은 경부보를 예전으로 돌리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까이 두려고 했다. 어떤 때는 자신이 상사라는 것을 잊을 만큼 과거 상사에 대한 예우를 깎듯이 했다. 그러나  경부보는 단 한번도 완용을 자신의 상사로 여기지 않고 여전히 부하로 대했다. 그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 완용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자신의 자리를 탐내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오리지널 일본인이 가짜 일본인보다 지위가 낮을 수는 없다는 경부보의 판단이 틀린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부하의 상사에 대한 불만은 잘못됐다. 경찰은 계급이 생명이다. 이런 하극상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완용의 상관은 경시정은 둘의 이런 갈등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경쟁을 시켜서 나쁠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어떤 경우는 말리기보다는 부추키는 언사를 했다. 미묘한 상황을 즐기면서 충성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또다른 한편에서는 특진을 거듭하는 완용이 자신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서장역시 경부보처럼 기회를 보아 그를 제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싹을 잘라야 한다. 서장의 마음을 읽은 경부보가 앞서 행동했다. 현장 책임자가 사태를 잘못 파악했다고 뒷담화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이번 경우는 충분히 산 채로 잡을 수 있었으니 범인을 잡은 것이 아니라 놓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떠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왜곡된 말은 완용의 귀에도 아니 들어갈 수 없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내 공을 가로채려고. 누구나 아는 성공사례까지 실패로 둔갑시켜. 이것은 순간 꼭지가 돌아 상관에게 대드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가 작정하고 하극상을 벌이고 있다. 부하들 보기에 체면이 말이 아니다. 상까지 받고 두 계급 특진한 나를 모함한다. 완용은 그자를 처치하든지 옷을 벗기지 못한다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조센징과 일본인의 싸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신은 내선일체 이전에도 이미 뼛속까지 일본인인데 조선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내가 일본인이라도 그자가 이렇게까지 나올까. 내가 밟고 올라가야 하는 사다리의 계단은 아직 높고 많기만 한데 내부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그것도 부하가 태클을 강하게 걸고 있다. 이것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반칙이다. 파울을 범하는데 퇴장을 시키지 않으면 무능한 상관이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는 것이 완용이 화를 참지 못하는 이유였다. 내가 화내는 것은 정당해. 당연하고 옳은 일이다. 내가 이렇게 당하는 모습을 휘하의 많은 순사들이 다 지켜 보고있다. 경부의 체면이 이만저만 깎인 것이 아니다. 완용은 속에서 불길이 끓어 올랐다.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올라와 당장이라도 목울대를 타고 넘어올 것만 같았다. 지체없이 일본도로 놈의 목을 치고 싶었다. 작전 중이라면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처형도 가능했다. 책상에 아픈 다리를 올려놓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던 완용은  지휘봉으로 책상을 치면서 무슨 좋은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종로서의 최고 책임자 경시정의 방문을 노크했다.

그는 어렵지만 정중하게 두 다리를 모으려고 애를 쓰면서 경례를 척하고 올려붙였다. 완용은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 삐딱한 자세로 옆의 책상을 한 손으로 붙잡고는 제 부하 경부보를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회초리를 들게 해주세요. 처음에 무슨 일인가 싶었던 그는 알았다는 듯이 그건 경부가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사적 처벌이 아닌 공식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놈에게 상관 모욕죄로 일 계급 강등을 청합니다. 경시정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구두경고나 감봉 삼 개월도 아니고 계급강등은 지금 같은 전시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종로서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그건 자네 책임도 있어. 왜 산채로 잡지 못하고 그게 무슨 꼴이야. 더구나 자넨 다리 부상까지 당했지 않은가. 겨우 서 있는 꼴이 보기 싫어. 그 지팡이도 그렇고. 노인네도 아니고 이거 원. 종로서가 노인정으로 바뀌고 있어. 최고 책임자가 불만을 터트렸다. 그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하는 말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자네 신의주에서 그리고 평양에서 독립군 휴의를 체포하지 못한 것 말이야. 봐 준 것 아냐. 동네 친구라고. 그런 거야. 완용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거기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경시정의 입에서 휴의라는 말이 튀어 나올 줄은 몰랐다. 휴의가 동네 친구로 아는 사이라는 것도 아직 자신의 입으로 그 누구한테도 발설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휴의와 나와의 관계를 경시정이 알고 있다. 완용은 순간 너무 놀라 하마터면 책상을 '탁' 치면서 '억'하고 뱉을 뻔 했다. 고바야시의 습관이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는 그러나 노련한 사람답게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어릴적 친구인 것은 맞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전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럴리가요. 제 손으로 잡기 위해 자청해서 만주까지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잘 갔다오라고 격려금도 직접 주시고요. 내가 그런 것은 휴의를 잡아 오라고 해서 그런 거지 일부러 놓치라고 그런 게 아니잖아. 경시정이 노기띤 얼굴로 완용을 쳐다봤다. 일부러 라니요, 서장님 너무 억울합니다. 나가봐. 나 바쁜 거 보이지. 모두 능력없는 제 불찰입니다만 휴의 건은 정말 억울해도 너무 억울합니다. 억울하다고. 좋아, 그러면 이번 여성 독립군은 왜 체포하기 못했지. 줄줄이 끄나풀들을 엮을 절호의 기회인데. 완용은 이것은 경시정의 억지라고 판단했다. 현장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권총으로 사격하는 여성 독립군의 체포를 운운하고 있다. 더구나 그 여성독립군의 뒤에는 인파를 가장한 지원자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머리에 대고 자살하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다. 자살하게 놔두지 않고 사살한 것은 그도 칭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와서 왜, 그러지. 내 말이 맞지. 잘 생각해 보니. 경시정이 말 없이 어벙벙한 태도를 보이자 완용을 향해 물음인지 확인인지 모를 말로 쏘아댔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던 경시정은 대꾸했다. 휴의가 덫에서 빠져나간 것은 경부인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경부보 탓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경시정께서도 상황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도주로를 확실히 명기했고 현장 지휘관은 제가 아닌 경부보였죠. 책임은 그에게 있는데 왜 제가 지고 모욕을 당해야 하지요. 이 말을 하고 완용은 서장이 어떤 반격을 할지 고심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너는 왜 현장 지위관으로 총독부 표창까지 받고 두 계급 특진할 때 말이 없었지. 공을 세운 것은 내가 아닌 경부보라고. 사실을 알리고 상을 양보했어야지. 물론 승지도. 그러나 서장은 자신의 임무에 팔려 그 상황에 대해 완용과 시비를 더 이어갈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완용은 다행이다 싶었다. 혹을 떼려다 붙일 뻔한 것을 놓고 완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완용은 그 사건은 이미 복기가 끝났고 보고서에 최종 사인까지 경시정이 한 마당에 이제 와서 뒤집는 듯한 발언을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그 말을 하지 않고 꾹 참았다. 경시정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완용을 쳐다봤다. 조선 놈 주제에 봐주니까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네 하는 못마땅한 태도였다.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네 놈은 태생이 조센징이야, 그런 말을 내고 싶어하는 눈치를 애써 참으면서 서장은 이제 완용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대꾸하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다만 입안에서 혀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센징 놈이 어디서 까불어. 하지만 좀 참자. 그런 말 할 기회는 올 거야.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아직은 때가 아냐. 저 놈은 더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우리 서에 유능한 자가 있어 독립군 소탕에 매진해야 해. 더구나 지금은 경찰서마다 경쟁이 붙어있다.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도 완용은 종로서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경시정은 이만큼 노련한 사람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완용의 자존심은 바닥을 긁었다. 심해지면 좋을 게 없다. 당장 독립군이 만주에서 신의주로 잠입했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들과 대적할 만한 완용만한 인물이 없었다. 조선인의 속셈은 조선인이 안다고 그가 작전을 짜고 계획을 세우면 대개는 맞아떨어졌다.

경시정은 자기 책임하에 있는 서에서 전과를 올리면 총독부의 총애를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를리 없었다. 그는 경시총감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적절한 선에서 완용을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경례를 올려 붙이고 나가려는 완용의 등뒤에 대고 그래 경부는 꼭 경부보를 처리하고 싶은가. 구체적으로 말해봐.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완용이 뒤돌아 봤을 때 그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 있었다.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사쿠라 처럼 살랑거리기 까지 했다. 완용은 그의 변심이 놀랍기도 했지만 나쁠 게 없었다. 강등이 어렵다면 순사 모두를 종로서 앞마당에 집합시켜 놓고  제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면 됩니다.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그렇습니다. 그래야 두 번 다시 하극상이 발행하지 않습니다. 이는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경시정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대 일본 제국의 일이기도 합니다. 

경시정은 난감했다. 이 자식이 보통이 아닌걸. 나를 걸고 넘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대일본까지 팔고 있어. 아냐, 경고하고 감봉하겠네. 그것으로 충분해. 알아 들었지. 완용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대접이라면 차라리 옷을 벗고 뛰쳐 나가고 싶었다. 처음으로 휴의가 배신했을 때의 심정이 이런 유의 것은 아닌가 느낌이 들었다.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다. 나가봐. 경시정이 한마디 하고 회전의자를 돌렸다. 그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또한 번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속은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다. 계급이 위인 내게 이번 작전의 책임은 경부에게 있다고 덮어씌우는 부하에게 면책을 주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총독부 포상까지 받은 내 위상을 흔들고 내게 책임을 지라고 한다. 겨우 감봉이라고. 순사들 보기에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다들 쌍심지를 켜고 있는데. 문을 닫고 나서도 완용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발을 옮기지 못했다. 아픈 종아리가 팽팽하게 당겨왔기도 했고 분함이 덜 풀리기도 했다. 

지휘체계가 엉망이야. 완용은 경찰서 바닥에 침을 탁, 하고 뱉었다. 참았던 고바야시의 버릇이 나온 것이다. 사적 보복을 해서 없애 버릴까, 아니면 이번에는 참고 넘어갈까. 완용은 둘 중의 하나를 오늘 중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하나를 매듭지어야 다른 것으로 향하는데 집중할 수 있는 그의 성격은 오후 6시까지다, 이때까지 결정을 하기로 스스로에게 대못 박았다. 그리고 나서 완용은 결정의 조건을 따져 보았다. 먼저 자신의 안전을 꼽았다. 어떻게 입은 제복인데 벗는다는 것은 꿈에서라도 생각하지 말자. 자신의 신분 보장이 첫째였다. 다음으로는 승진으로 가는 길목에서 경부보의 처리가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어떤 굴욕이라도 참아내야 한다. 다음으로는 조선인이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차별은 나쁜 것이다. 완용은 심복 하나를 불러들였다. 일본 건달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조선 땅으로 들어온 자였다. 출신 성분이 천하고 무식했다. 그러나 출세욕은 대단했다. 그는 완용을 롤 모델로 삼고 있었다.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은 자신의 출신 성분과 비교됐으며 충성심과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그와 닮았다. 저 조센징이, 키가 나보다 작고 구부정한 저놈이 나의 스승이다. 일본 건달은 아침에 눈 뜨면 그 말을 세 번 외쳤고 잠자리에서도 똑같이 세번 외쳤다. 완용이 부르자 말단 순사인 그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내가 당한 수치를 너는 알고 있느냐. 네, 그걸 모를리 있겠습니까. 왜 가만히 있었느냐, 같은 일본인이라서 그랬느냐. 나를 험담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자리에서 아니다라고 나를 변호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건달의 의리라는 것이 겨우 이 정도냐. 상관이 당하는데도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 건달은 당황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당연히 제가 나서야 했죠. 하지만 손가락은 총을 잡고 있었으나 탄창은 서랍 안에 있었고요. 일본도는 허리춤에 없었습니다. 죽이려고 했느냐. 하이. 순사는 낭랑한 일본어 목소리와 동시에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경부보가 감히 직속상관인 경부에게 책임을 지라고 삿대질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순사들이 다 모인 장소에서요. 불경한 짓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받은 것의 열 배로 돌려줘야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쥐도 새도 없이 죽여 버리려고요.

완용은 어이가 없었다. 단순 무식한 놈의 머리가 이 정도였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로 이 자는 그 자의 목을 밸만한 깜이 되지 못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둠의 세계에서는 어쩌다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어림없다. 나는 너를 알아. 말로는 다 하지. 넌 가짜 건달이야. 깡패 축에도 끼지 못하는. 그래 네가 총을 쏜다고. 그러면 범인이 누구인지 바로 나올 텐데. 너는 그때 내가 사주했다고 밀고할 것이냐. 현장을 목격한 자가 나타나면 분명 배후로 나를 의심할 텐데. 그런 짓은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트리는 것이다. 아니다. 내 뜻은 그런 말이 아니다.  그만 둬라. 너는 아직 쓸모가 많으니 몸을 아껴야 한다. 완용은 순사를 돌려보냈다. 서운하지 않게 다독인 것은 잘한 일이었다. 무모한 짓이라고 심하게 몰라 붙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혼낸 것은 건달 출신이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완용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완용은 초조해졌다.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너무 쉽게 벌어졌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시정의 방으로 향하던 완용과 경부보가 복도에서 마주쳤다.

경부보는 한 쪽으로 비켜섰으나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가에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완용의 인내에 한계가 왔다. 마침 일본도를 차고 있던 그는 칼을 뽑았다. 너를 즉결 심판하겠다. 죄목은 상관 모욕죄와 상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죄. 완용이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경시정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고 있을 때 완용의 장검이 경부보의 머리 쪽으로 날았다. 악,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경부보의 목이 복도로 떨어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임무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몸이 목과 떨어져 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몸에서 분리된 머리로부터 자신이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시정이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자기 방문을 열고 나오다 쓰러지는 자의 몸을 부지불식간에 부축하려고 했으나 한 발 늦었다. 이미 목은 떨어져 나간 뒤였다. 경시정이 목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외마디 소리를 내고 죽은 자의 목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나온 어디선가 날아온 피가 경시정의 얼굴에 쏟아졌다. 에잇, 그는 부하의 목이라는 것도 잊고 자신이 받쳐 든 것을 바닥에 버리고 자신의 얼굴부터 먼저 손등으로 닦았다. 그러면서 여전히 칼을 들고 적에게 대들듯이 아니면 방어 할 듯한 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경부와 눈이 마주쳤다. 저놈이 나까지. 그러나 경시정은 그가 칼을 칼집에 꽂고 경례를 올려붙이는 것을 보자 권총집을 향해 오른쪽으로 갔던 손을 제자리로 돌렸다. 보고 올립니다. 즉결 심판,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상관을 모욕하고 죄를 뒤집어 씌운 자의 최후는 이렇습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경시정도 벌어진 상황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자기 방으로 급히 들어갔다가 권총을 손에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는 경찰서 복도 벽에 대고 총알 한 발을 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발사된 총알은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벽을 스치고 옆으로 뜅겨져 나갔다. 경시정이 그렇게 한 것은 뒤늦게라고 경부보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다. 허둥대고 당황했던 경시정은 총알 한 발을 발사하고 나서 자신이 당장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과연 고급 경찰 간부다운 민첩한 행동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무슨일이 일어난 것을 직감한 순사들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그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떨어진 목을 보고 머리의 주인공이 경부보라는 것을 알고는 경악했다. 저 상태라면 스스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는 확신을 갖고 목을 자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완용인가 서장인가. 현장에 있는 자가 범인인 것이 분명했다. 누가 손에 피를 묻혔는가. 서장이다. 온통 피범벅이다. 완용의 허리춤에도 피의 흔적이 있다. 누구인가.  그러나 눈짓을 주고 받는 그들 가운데 누가 그랬는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한 것은 몸통에서 여전히 피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은 신발에 피가 묻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흐르는 피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서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떨어진 목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서로 놀라고 있었다. 그 때 경시정의 목소리가 경찰서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저놈을 체포하라. 순사들은 저 놈이 완용인 것을 알아챘다. 완용이 자신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목발을 집고 힘겹게 걸어오다 목에 걸려 넘어질 뻔 한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부하들 가운데 건달을 발견하고는 너, 거기. 저 말인가요. 그래 너. 경부보를 잘 모셔라. 머리가 아직도 바닥에 굴러다는다. 어서 줏어. 건달은 완용의 명령을 받아 목을 들고 완용앞에 섰다. 체포하려던 자들은 완용의 기세에 몰려 멈칫하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부보를 잘 모셔라. 너희들의 상관이다. 목을 건네 받은 건달은 건달생활 수년 동안에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어떻게 목을 처리해야 할 지 몰라 계속 들고 있어야 할지 어디에 내려 놓아야 할지 망설였다. 명령이 내려 올때 까지는 들고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잠깐 동안이겠지 하는 견디는 마음으로 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가져가도 쓸데가 없는 물건의 처리를 고심하는 부하의 눈을 의식한 완용은 이리 줘라, 그 목을 받아서 몸통쪽으로 걸아가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얼핏 몸과 머리가 붙어 있는 형태가 되자 완용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경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비켜라. 바보가 저지른 실수가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 체포됐다는 의미였다. 상황 파악을 끝낸 순사들은 본능적으로 서너 명이 총을 뽑아 들고 경부를 뒤따라 들어갔다. 경시정은 왜 이제야 왔느냐는 듯이 그들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그들 대신 부동자세로 아니 조금 삐닥하게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완용을 쳐다봤다. 경시정은 총든 자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한심한 것들. 너희들이 별수 있겠느냐는 표정으로 그들을 무시했다. 저리들 꺼져있어.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방금 전에 체포하라고 소리쳤던 말을 잊었다. 그러면서 빨리 나가지 않으면 경을 치겠다는 무서운 얼굴을 했다. 들어왔던 문으로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급히 빠져나갔다. 그 순간 완용은 체포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더이상 활극을 벌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경시정은 느긋하게 담배를 꺼내 물고는 완용에게도 건넸다. 

이 사건은 상부에 보고됐다. 너무 늦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시간에 보고를 받은 조선총독부는 전시라도 그런 일은 흔하지는 않지만 일어난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직통으로 연결된 전화로 총독 관저의 고바야시는 종로서의 고바야시가 저지른 일은 경시정이 알아서 조용히 사건을 종결하라고 지시했다. 세 시간 후 경시정은 경부 완용은  아무 죄가 없다고 공표했다. 완용은 무죄다. 이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경부를 살해한 혐의는 정당방위로 바뀌었고 사건은 그것으로 끝났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칼이 아닌 총을 쓰라는 조건으로 경부는 면죄부를 받았다. 넌 정당방위야, 나가봐. 경시정이 말하면서 완용의 등을 툭툭쳤다. 별거 아니니 털고 일어나서 하던 일을 마저 하라는 지시였다. 완용은 나가는 대신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조선식으로 조상에게 하듯이 큰절을 올리면서 경시정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완용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무릎을 꿇은 것은 명예를 더럽힌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고 만세를 부른 것은 새로운 명예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경시정은 경부가 하는 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가소롭고 같잖았다. 그러나 그것이 완용에게 나쁜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경부가 고개를 들었다. 오 년을 함께 생활해 충분히 봐온 얼굴이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처럼 낯설었다. 써먹을 수 있을 때까지 써먹겠다는 것이 그때 경시정의 속마음이었다. 자신도 독하지만 저런 독한 놈은 언젠가는 자신을 배신할 것을 확신했다. 그러기 전에 자신의 손으로 처치하겠다는 다짐도 해두었다. 그 다짐은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는 또다른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그는 이 사건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완용의 마음은 달랐다. 그는 정말로 경시정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었다.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목에 당장 매달려 어리광 부리고 싶은 생각이었다. 내 목숨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아버지는 그 뿐이다. 그러자 완용의 가슴은 칼에 정통으로 찔리기라도 한 듯이 심하게 떨려왔다. 내 칼에 맞은 경부보의 순간이 떠오랐다. 정당방위는 언제든지 부하살해로 바뀔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경부는 경시정의 아들보다 더 한 것이라도 되고 싶었다. 이런 결정은 누구의 상의나 조언도 없이 순전히 경시정의 독자 판단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완용의 마음은 확고해졌다. 그것이 고마웠던 그는 부하를 일본도로 내리칠 때 다친 엄지손가락의 피로 ‘혈서로 맹세한다’는 충성 서약을 경시정에게 바쳤다.

친애하는 나의 아버지,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아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경시정은 받은 혈서를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두었다. 그날 저녁 술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가기 전 경시정은 서랍을 열고 혈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당신에게 매인 몸, 죽을 때까지 충성을 맹세합니다. 지독한 놈. 도대체 몇 글자야. 피가 부족했을 거야. 그렇지, 이빨로 물어 뜯고 또 뜯었겠지. 독한 조센징. 이런 놈은 써먹을데가 있어. 써먹을 데가 없으면 그때가 죽은 목숨이고. 서장은 그것을 다시 서랍에 넣고 그 즉시 경부를 불러 새로운 경부보를 추천하라고 명령했다. 완용은 지체없이 자신의 심복을 지목했다. 이렇게 되면 그도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순서로 보면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경시정은 알고 있으면서도 거절 대신 경부의 추천에 군말 없이 그를 신임 경부보로 임명했다.이로써 심복은 완용처럼 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았다. 술잔이 거나할 무렵 경시정은 완용의 혈서 이야기를 꺼내 들었고 경부보는 그 자리에서 자신도 천황을 위한 혈서를 쓰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건달다운 모습이었다. 취기가 오른 경시정은 오늘은 혈서의 날이구나 하면서 자신이 먼저 도마 위의 사시미 칼을 이용해 왼손 검지를 긋고 천황 폐하를 위해 피로서 맹세를 했다. 건달이 칼을 받아 따라했다. 우리 셋은 지금부터 의형제다. 경시정이 흘리는 피를 닦을 생각도 없이 그 말과 동시에 건배를 제의했다. 마지못해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완용은 자신의 잔을 한 번에 비웠다. 형님, 아우의 잔을 받으십시오. 경부가 방금 전에 자신의 손에 있던 잔에 술을 채웠다. 경시정이 잔을 입으로 가져 가자마자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역시 급하게 술잔을 비웠다.

아버지보다는 형님이 듣기에 좋구나. 형님이라고 불러라. 아들은 배신하면 복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동생의 배신은 용서할 수 있어. 무슨 말인가요. 그냥 해 본 소리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 보다 형님이 좋다. 알아 모시겠습니다. 형님. 완용이 넙죽 엎드려 잔을 내밀었다. 오냐. 동생잔을 받으마. 경시정은 입가에 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성공하고 내가 불행해지는 것도 모두 이놈 때문이다. 경시정은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형이 아우를 대하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경부를 바라봤다. 제 잔도 받으십시오. 그 틈을 노려 건달이 말했다. 이로써 도원결의를 맺었구나. 이번에도 경시정이 단숨에 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빠르게 먹은 탓에 입가에 침인지 술인지가 턱으로 흘러내렸으나 경시정은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침을 흘리는구나. 네 놈도 오래 못가겠어. 완용이 뱀같은 눈으로 곁눈질 했다. 그러나 행동은 그 반대였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수건이 아니 손으로 닦아냈다. 형님, 여기.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 손에 묻은 피가 경시정의 입가에 지문을 남기듯이 박혔다. 피맛이 괜찮구나, 경시정이 호기를 부렸다.

다음날 출근한 경시정은 건달을 불렀다. 그리고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조선총독부에 전달할 순사부장의 참수 사건에 대한 보고서였다. 조센징에게는 보고 하지 말고 이것을 총독부로 보내라. 내 말 알아 들었지. 하이. 건달이 고개를 숙였다. 입을 조심해. 사내는 입이 무거워야 해. 완용이 어떤 말로 꼬시더라도 넘어가서 발설해서는 안 된다. 넵. 건달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는 산 만한 놈이 목소리는 계집애야. 경시정이 혀를 찼다. 보고서는 에이 포 용지 하나 분량의 간략한 것이었으나 거기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제목: 조선인 경부의 일본인 경부보 참수 사건 내용: 조선인 경부 고바야시 (창씨 개명전 조선이름-천완용)는 일본인 경부보 아리수라를 일본도로 목을 내리쳐 죽였다. 상급자에 대한 모욕 행위와 누명 씌우기라는 제목으로 행해진 즉결처형이었다. 완용은 어떤 심문이나 반성의 기회를 주기도 전에 사살하기 위해 권총을 꺼내 들었으나 실탄이 없자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으로 위협을 느낀 순사부장이 도망치려 하자 뒤쫒아가 그대로 뒷 목을 내리쳤다. 독립군 끄나풀인 휴의를 체포하거나 사살하지 못한 책임을 경부보가 상관인 조선인 완용 경부에게 물은 것이 발단이 됐다. 경부보는 휘하의 순사들이 모인 장소에서 삿대질을 하면서 경부를 모욕한 정황이 있다. 장소: 종로 경찰서내 복도 일시: 1944년 11월 13일 오전 11시 30분경 결과: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

추신: 경부보 유족에게는 안 된 일이나 전시라는 위급한 현실과 완용 경부가 지금까지 쌓아온 개인 경력 등을 감안해 내린 결론임. 최근 여성 독립군 사살의 전과로 두 계급 특진한 것도 참고 했음. 보고서 작성자: 종로 경찰서 경시정 나시무라야 기요끼꼬. 경시정은 보고서에서 조선인 경부와 일본인 경부보라는 사실을 두 번에 걸쳐 정확히 명시했다. 유선상으로 보고하지 않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한 것은 경시정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문구였고 총독부도 그것을 눈치챘다. 경시정은 결과는 무죄였지만 조선인은 유죄라는 원초적 굴레를 씌워 후환이 생길 경우 용이한 처리를 위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경시정은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목이 잘려나간 것은 기록하지 않았다. 일등 사무라이도 하기 힘든 칼 솜씨를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경시정은 칼은 물론 총솜씨도 보통 이하였다. 은연중에 열등감이 드러난 것이다.) 경시정은 또 쓰러지고 있는 몸을 붙잡고 따로 복도에 굴러떨어져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경부보의 눈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쓰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어쩐지 그것은 자신에 대한 치욕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완용이 창씨개명을 한 엄연한 일본인이지만 조선인이고 조선인이 일본인을 죽인 것은 변할 수 없었다. 경시정은 술집에서 맺은 도원결의를 생각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였다. 경시정은 순간적으로 스쳐간 완용에 대한 증오의 마음을 거두고 형제애를 억지로 끄집어 냈다. 역겨운 일들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이런 일로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상황은 바뀌었다.

그래. 고바야시 경부는 내 동생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우리는 피로 맺은 형제간이다. 형제를 떠올렸을 때 완용의 죄는 완벽하게 용서됐다. 권력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총독부의 보고서에 대한 질책은 따로 없었다. 완용이 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전에 내린 결론에 대해 경시정은 만족했다. 경시정은 자신이 죽기 전에는 경부가 배신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그는 이제 내 손안에 있다. 그를 살려 둔 것은 내가 사는 길이다. 경시정은 웃음으로써 자신이 내린 결정에 엄청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 사건은 딱 이틀간만 떠들썩했다. 삼 일째 되던 날 경찰서에 비상이 걸렸다. 새벽 사이렌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경찰서 내 무장병력은 일시에 경성역으로 긴급 출동했다. 트럭에 올라탄 순사들은 소총에 실탄을 장전한 채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첩보에 의하면 만주의 독립군 일당이 어제 경성역에서 일부 하차했다. 삼삼오오 노인이나 병약자 심지어 여성으로 변장한 무리는 13명 정도로 일개 분대 병력이었다. 그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다른 10여 명의 병력과 합세해 순찰 도는 경찰 세 명을 사살하고 남산을 타고 도주하면서 그곳을 경비하던 조선헌병대사령부 경계병을 죽였다. 독립군이 관공서와 일본 군경을 노린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죽은 자들은 모두 경찰이거나 군인이었다. 경찰은 그렇다고 쳐도 헌병대사령부 병력 일부도 당했다는 사실은 총독부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빠른 시간 내에 섬멸해야 한다. 그러나 산으로 도망친 그들의 흔적을 찾은 것은 그들이 하산을 하고 나서도 두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경성의 조선총독부였다. 총독부로 진격하기 전에 무리를 완전히 제압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종로서 경시정은 완용을 불러들였다.

일망타진해. 그들이 시끄럽게 굴기 전에 싹 없애 버려. 너, 지난번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온 거 알지. 경시정은 작은 눈을 번득이며 짧고 강한 어조로 지난 번 실수를 언급했다. 완용을 압박한 지시였다. 경시정은 자신의 위엄을 세우고 명령에 대한 확고한 실행을 다짐받기 위해 완용의 무모한 용기와 지략이 필요했다.경시정은 독립군을 들판의 잡초처럼 생각했다. 낫질 몇 번으로 싹둑 잘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부의 생각도 경시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라야 별 것 있겠는가.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급조된 병력이다. 더구나 보급로도 없다. 기습하고 매복하고 포위하면 한 달안에 작전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독립군을 얕잡아봤다. 낫질로 쓸어 버릴 수도 없고 쓸어버렸다고 해도 금방 자라나는 생리를 알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싸워. 희망이 없다고. 싸우는 자체가 희망이다. 흰옷 입은 사람들은 알 거야. 아직 독립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시간 없다. 동생아. 너 언제까지 가능하니. 일주일. 그거 너무 짧다고. 알았어. 보름이다. 딱 보름. 그는 묻고 혼자 대답했다. 보름이라는 말을 할 때 그 눈은 흡사 흡혈귀처럼 붉게 상기돼 있었다. 완용은 최소 한 달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달안에 작전을 끝내겠다고 보고하려던 참이었다. 보름이라고. 이를 어째. 형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안다. 그들이 별로 힘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 넉넉한 기한이다. 동생 체면을 봐서 그래. 경시정은 그 말을 하고 난 후 서랍을 열었다. 완용아, 너 이거 쓴 거 아직 피도 안말랐다. 네, 형님. 피로써 맹세한 것을 피로써 증명할 기회가 온 거야. 약속을 어기지 마라. 네, 서장님. 넌 내손안에 든 쥐야, 이 조센징 새끼야. 내가 널 마음대로 다룬다고. 네가 어떤 대답을 하든 난 너를 엿 먹일 수 있어. 그러니 일주일도 길어. 삼일 안에 끝내. 혹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있나요, 형님. 됐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기라고 한듯이 서장이 짜증을 냈다. 그러고 있을래. 그러면 독립군이 손을 들고 경찰서로 제발로 찾아 온다든. 어서 가라. 넵. 삼일 안에 마치겠습니다. 그 시간에 해결 못하면 제가 무능한 것이니 저를 벌하세요, 형님. 그만 됐고. 야, 너 경찰서 내에서는 형님 소리 빼. 알았지. 술 먹을 때 사석에서 해라. 아무 때나 하니 간지럽다. 네, 형님. 아니 서장님. 해 내겠습니다. 그래 넌 대단한 놈이야. 너한테 내가 허를 찔려도 할 말이 없다. 경시정은 조금 전과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리고 자기의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삼일이라. 곧 출동하겠습니다. 꾸물거리지 말고. 지난 번 처럼 어이없는 실수 없기. 완용은 비위가 상했으나 하이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나가는 서장은 완용을 다시 불러세웠다. 다짐에 다짐을 받기 위해서다. 

휴의는 가능하면 생포하고 여차하면 사살해라. 이번에도 놓치면 넌 끝장이다. 너의 끝장은 내 끝장이기도 하다. 알지. 네, 서장님. 지난번 실수를 반면교사로 생각해. 경시정은 말끝마다 지난번 실수를 꺼내 들었다. 실수라니. 성공해서 상을 받았잖아. 완용은 더럽다를 속마음으로 간직하고는 나오자 마자 복도에 침을 탁하고 뱉었다. 너나 실수하지마. 난 내 밥값은 한다. 그러고도 넌 던 목구멍으로 국밥이 넘어가니. 한 거 있으니 내놔봐. 종로 접선도 내가 알아냈잖아. 아여튼, 왜놈들이란. 쯧쯧. 완용은 실수가 경부보의 참수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독립군을 사살했으나 휴의를 놓친 작전의 실수를 말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둘 다 인지 파악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이든 서장이 실수라면 성공도 실수인 것이다. 실수는 만회하라고 있는 것이다. 경시정의 말은 틀리지 않고 맞다. 완용은 빈 복도를 군홧발 소리를 내면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군홧발 소리. 구두 뒤축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 기분이 좋아. 난 천상 경찰이야. 이런 조직이 마음에 들어. 완용의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나 군홧발이 착 부딪치는 소리와 손이 번쩍 올라가면서 내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잘했어. 마지막에 난 공손했지. 그래야지. 대들땐 대들더라고도 끝은 항상 그래야지. 발음도 새지 않고 좋았어. 앞의 것은 잊어도 마지막에 내가 한 말 반드시 잡아 바치겠습니다는 기억할 거야. 그러고도 난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 만약 휴의를 잡으면 공은 온전히 서장님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총독부나 다른 기관에 먼저 보고하지 마. 모든 보고는 내가 한다. 넌 이미 받았잖아. 이번엔 내가 상을 좀 받자. 오래됐어. 상부는 날 잊을지도 몰라. 서장은 자신이 공을 가로채고 승진하는 모습을 완용의 뒷모습에서 찾았다. 저 놈을 이용해야 해. 저 놈의 충성심을 이용하자. 조센징은 떡고물을 미끼로 던져 주면 덥썩 물거든. 욕심많은 자식. 감히 내 자리를 넘보려고 해. 아니다. 아내. 그 자가 내 자리를 차지해야 내가 더 높은 곳으로 가지. 서장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끝없이 상상했다. 그 놈은 참 맹세를 좋아해. 피로 결의를 맺자. 의형제. 삼국지를 읽기나 했을까. 어디서 주워 들었겠지. 맹세가 그렇게 좋으냐, 응 맹세. 그렇다면 하자. 그까짓 것 못할 이유없다. 따지고 보면 경시정이 자신이 완용에게 당한 것이 없었다. 관할 구역에 들어온 자를 비록 우리측 사망자가 나고 부상자가 있지만 마무리를 잘 했다. 추가 피해를 막은 것은 그 자가 마리 배치해 놓은 병력 때문에 가능했어. 현장에 있던 요원만으로는 특수훈련을 받은 여성독립군을 막기 어려웠을 거야. 무리 중에는 반드시 그녀를 후방 지원하는 인력이 있었을 것이고. 십 여 명의 병력을 대기 시켰고 그들이 적시에 나타난 거야. 만약 놓쳤어봐. 난 이미 모가지가 날아갔어. 경시정이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사 잡았다. 목 둘레가 굵어 다 잡히지 않았으나 살아서 쿰틀거리는 목을 잡고 그는 안도의 마음을 길게 가졌다. 
 

그 시각 만주에서 이동 중인 일본군 병력 가운데 3개 중대가 두만강을 넘기 전에 작은 기차역에서 내렸다. 이들은 먼저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경찰과 합세해 남하하는 독립군을 양쪽에서 협공하기 위한 관동군 소속 독립군 일진 토벌대였다. 만주 토벌대 출신들로 구성된 그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조선은 그들에게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조선 땅에서 나고 자란 그들이었기에 낯선 만주를 떠나 강을 건너 조선땅에 도착하자 마치 자기 안방에 드러누운 것 처럼 편안했다. 이런 상태라면 백전백승이다. 더구나 진지를 구축한 첫날 그들의 아침상에 흰쌀밥과 소고기 국이 올라왔다. 토벌대병사들은 배불리 먹었다. 자신들을 대접해 주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번 더 새겼다. 이빨사이에 낀 소고기를 떼내며 토벌대는 반드시 독립군을 토벌해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이때만큼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인지 있을까 싶은 만큼 토벌대 3개 중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조국을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자. 독립군은 숫자가 적다. 우리보다 무기 수준도 낮다. 무엇보다 그들은 테러리스트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는 정당하고 그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죄를 지은 자들, 더큰 죄를 지으려고 하는 자들을 잡는 것은 옳은 일이었고 그래서 토벌대는 독립군과의 전투를 손꼽아 기다렸다. 거기 있는 병사들은 그 누구의 손이 아닌 자신들의 손으로 독립군 잔당들을 무찌르고 싶었다. 기어오르는 싹을 잘라 더는 목을 내밀지 못하게 싹둑 베야 한다.

토벌대의 대장은 삼중의 그물망을 치고 독립군을 기다렸다. 내가 여기 온 거야. 자발적으로 중대를 지휘하는 대장으로 온 것은 그만큼 적들에 대한 원한인 크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그가 나의 충성심을 이번기회에 한 번 더 일제에 보여주고 싶어 안달했다. 우리들은 숨어 있고 매복해 있다. 저들은 그물을 향해 달려 들고 있다. 황포군관학교 같은 어슬픈 교육시설에서 배운 자들을 대일본 육사출신이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전술이면 전술, 체력이면 체력 어디 하나 꿀릴 게 없다. 더구나 우리는 대의명분이 있잖은가. 대동아평화. 평화를 위해 우리는 전쟁을 한다. 그런데 저들은 뭐냐. 기껏 한다는 것이 숨어 있다 수류탄을 던지고 게릴라처럼 기습했다고 쥐새끼 처럼 숨어든다. 깡패,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무어냐 말이다. 조선인 토벌대장은 어두워지는 들판을 지휘봉을 들고 가리키면서 저 쪽에서 저들이 기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적들이 저 검은 들판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다 신의주 경찰서를 습격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늘 밤에는 인육 냄새가 진동할 거야. 토벌대장은 벌써 불타 죽은 독립군의 냄새가 퍼져 오기라도 하는 듯 코를 벌름거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다 작전이 끝나고 난 후 요릿집에서 질펀하게 벌일 술판을 생각하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승리의 건배를 해야지. 이번 작전은 특별히 조선인으로 구성했어. 조센징은 조센징이 맡아라. 만주국 지휘부에서 내려온 전갈은 이렇게 간략했다. 너희들 일이니 너희가 끝을 내야지. 당연한 지령이었다. 조선인 문제를 해결하자. 그리고 나서 더 큰 대업으로 나아가자. 다행이야. 내 휘하에 이런 충직한 조선인이 있다는 것이. 오합지졸을 하나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어. 만들고 나니 잘했다 싶은 거지. 지원자들도 늘고 있고. 선배들이 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울 거야. 멋진 제복을 입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데 이보다 더 보람찬 일이 어디 있느냐고. 있다면 가져와 봐. 내 존재는 저들로 인해 빛나. 항복해 오면 좋으련만. 그러면 세뇌 교육을 단단히 시켜서 우리편으로 만들어야지. 간혹 그런 자들이 있는데 요즘은 드물어. 휴의가 이번에 올까. 내려오면 사로잡아서 물어봐야지. 나를 배신하고도 살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이건 너무 신파적이야. 여자 때문이냐. 이건 근거가 떨어지고. 그렇다면 사적인 원한이 나 모르는게 있었느냐. 딱 부러지는 질문이 없군. 일단 잡고 보자. 잡아서 닥치는대로 물어보면 심마리를 찾겠지. 토벌대장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했다. 

완전 소탕보다는 조금 살려 두는 건 어때. 다 잡아 들이면 난 할 일이 없잖아. 내 존재가치도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박멸대신 퇴로를 터줄까. 그걸 사령부에서느 알 수는 없지. 그들이 가상하기는 해. 내건 목표가 가소롭기는 하지만. 뭐 독립을 한다고. 좋다. 독립했다고 치자. 그러면 다시 왕의 지배를 받을래. 아니면 똑같이 나눠 먹는다는 그 잘난 사회주의자들의 세상이 될래. 그도 아니면 오로지 무장투쟁을 내세우는 무정부로 대충 대충 살래. 이래도 답이 없고 저래도 답이 없어. 왜 싸우는 거야. 도대체. 그러다가 토벌대장은 그들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직업 군인이 됐듯이 그들도 직업으로 독립군을 택한 거야. 독립군아니면 뭐해 먹고 살래. 그러나 독립군은 누가 월급을 누가 밥먹여 주나. 너무 나갔나. 직업 독립군은 아닌 거 같고. 무모한 용기. 대들고 보는 억하심정. 무조건 일본이 싫어서. 조선도 싫지만 일본이 더 나빠서. 하여간 그들은 이유모를 행동을 하고 있어. 나라를 찾아서 무엇 하겠다는 것인지. 겪어 봤잖아. 수백년 동안. 왕과 고관대작과 양반들에게 수탈밖에 더 당했어. 그 꼴이 설마 그리운 거야. 난 그런 마음이 하나도 안들어. 아버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 까지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 조선땅에서 우리 조상이 살았어도 난 조선의 독립을 원하지 않아. 그들과는 달라. 내게 왜 그런 마음이 없느냐고 따지지 마. 난 조선이 싫거든. 일본이 없다고 쳐봐. 여전히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에 머물고 있을 거야. 기차가 어디 있어. 전등불은 또 어떻고. 이 옷을 좀 봐. 이 질긴 옷. 흰옷이 뭐가 좋다고 주구장창 입고 그래. 빨기도 힘들지. 그렇다고 구하기는 어디 쉬워. 내 참 기가 막힌 거지. 말고 안되면 잡는 거지. 총질을 하자고. 토벌대장은 참호에 앉았다. 병사들 사이에 끼어서 상화을 좀 살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앉은 것은 담배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적에게 담뱃불을 보일수는 없었다. 연기를 한 모금 깊이 빨면서 토벌대장은 다시 생각의 끈을 이어갔다. 그래, 맞아.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그걸 주입시켜야지. 일본인이라면 굳이 일본인과 싸우려 들지 않을 거야. 나도 일본이고 너도 일본인이다. 뭐가 문제지. 대동아의 평화를 위해 우리 일본인이 힘을 합치자. 나는 뼛속까지 일본인이야. 내 아들도 그럴거고. 

모자란 놈들. 못 배웠으면 배운 사람 말을 들어야지. 받아드여야지. 이미 기운지 오래잖아. 벌써 몇 년 째니. 기미년 당시는 그렇다고 쳐. 금방 일본이 물러날 것처럼 보였지. 그런데 봐. 지금 조선의 모습을 보라고. 삼십년 훌쩍 넘었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지. 그 말까지 부정하지는 못할 거야. 세번 변했어. 이 바보들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이 없다면 그런 사람의 말을 들어야지. 못난 놈들. 토벌대장은 진지의 흙바닥에 담배불을 비벼껐다. 안타까워. 내가 군복을 벗으면 정치를 해야겠어. 어리석은 백성들은 일깨워줘야지. 그게 내 임무야. 기왕이면 조선총독부에서 일했으면 좋겠어. 총독이 되고 싶군. 최초의 조선인 총독. 그러면 내가 다 교육시켜 놓을텐데. 토벌대장은 군복을 벗고 마이크 앞에서 대중 연설을 하는 정치인이 된 자신을 떠올렸다. 근사하군. 난 연설을 잘해. 내 연설을 들으면 그들은 운이 좋은 거지. 어디가서 그 좋은 말씀을 듣겠어. 어리석은 자들. 이곳 경험은 나를 한 단계 더 큰 사람으로 만들었어. 사람의 의리를 확실히 배웠거든. 어떤 자들은 배신을 하고 다른 어떤 자들은 충성을 하는지. 낭만적인 자들은 아니야. 글을 쓰거나 남을 돕거나 동정을 보이는 자들은 뒤통수를 쳐. 그런 자들은 한 번 써먹고 버리는 것이 상책이지. 책을 잘 안 읽고 편지 같은 거나 시나 소설과 멀리 하는 자들. 한마디로 감정이 없는 자들이 내 부하로 적합해.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휴의라는 자 말이야. 엎드려 책을 읽고 시를 외우고 부칠 사람도 없는데 편지질을 하더니. 난 알아. 마음이 따뜻한 자는 반드시 배신한다. 물어 볼 거야. 책을 읽는지. 편지를 쓰는지. 소설가 이름을 대봐.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이런 자를 나는 오케이 이리와. 하고 끌어 안을 거야. 하지만 난 읽어야지. 그래서 그런 자들을 속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나 저나 놈들은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첩보가 맞다면 전방에서 소식이 와야 하는데. 한 번 호출해봐. 토벌대장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는 그것을 대장에게 건네주던 부하가 대기하고 있던 무전병을 발로 툭 찼다. 어서. 무전병이 움직였다. 토벌대장은 다시 참호에 앉았다. 별 다른 움직임은 전방에서 감지되지 않았다. 오전과 오후가 다르지 않고 비슷했다. 이상무라는데요. 알았다. 토벌대장은 다시 잡념에 빠졌다. 아까 하지 못한 것을 마저 하고 싶었다. 미국놈들. 이 놈들만 없었으면. 그 놈들 상대하기도 벅찬데 무지렁이들까지 설쳐. 이거야 원.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입밖으로 나왔나 보다. 같잖은 것들이 날 피곤하게 한다. 어떤 놈들 말입니까. 어, 너 같은 놈들. 저말입니까. 그래 너 같은 놈. 부관이 당황했다. 이런 소갈머리 없는 자에게는 농담도 과하면 안 된다. 이리 와라. 농담이다. 그는 부관을 잡아 어깨를 다독였다. 위기에 빠지면 도와줄 놈인데. 주변머리 없고 고지식한 자에게는. 더 생각하려다 토벌대장은 그반 두었다. 그 버러지 같은 놈들이지요. 독립군인가 하는. 부관은 상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버러지 같은 것들, 이번 기회에 확 쓸러 버리겠습니다 하고 거들었다. 그래, 좋은 표현이다. 토벌대장은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빗자루 줄까. 하하하. 이것도 농담이다. 하하하. 일이 잘 풀릴 때 흔히 그렇듯이 토벌대장은 몸이 위로 붕떠올랐다. 확 쓸어 버리겠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는 적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올 것이다. 비에 젖은 쥐새끼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올 것이다. 우린 기다리면 되는 거야. 만주의 작전 사령부는 전적으로 믿는 토벌대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잘 알아서 해라. 너도 조선 사람 아니냐. 이번 일로 공을 세우면 넌 자타공인 일본사람이 되는 거야. 반도인이 아니고 본토인이 되는 거라고. 작전사령부는 토벌대장을 불러 놓고 출정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일제는 필요할 때면 조선과 조선 사람을 꺼내 들었다. 항상 내선일체를 주장하다가도 골치 아픈 일을 만나면 조센징을 들먹였다. 하지만 토벌대장앞에서는 조심했다. 대 놓고 하대하기보다는 대장의 체면을 살려 주어야 할 때는 그런 말을 삼가했다. 그만큼 만주국 대장은 토벌대장의 심기를 살폈고 그를 우대했으며 그런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상황파악이 능한 토벌대장은 일제가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잠잠하던 독립군이 출몰하는 것은 못마땅한 일임에 틀림 없었다. 더구나 전선도 좋은 형편이 아니다. 이런 때 독립군의 사기를 꺾고 보란듯이 풍악을 울리며 귀대하면 반갑게 맞을 것이다. 작전을 펼치기도 전에 토벌대장은 성공 확률을 팔 할 이상으로 봤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도 간혹 판단이 틀릴 경우가 있었다. 이번 작전이 그랬다. 독립군은 과거의 독립군이 아니었다.

숨죽였다가 나타난 독립군은 토벌대장이 생각하는 그렇게 형편없는 존재에서 벗어나 있었다. 싸우기도 전에 전멸당하는 허접한 장정 상태를 졸업한 지 오래였다. 전투에서 대장의 판단이 틀렸을 경우 승패는 이미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대의 힘을 너무 얕잡아 본 결과가 어떤 것인지 토벌대장은 뒤늦게 알고 땅을 쳤다. 정말로 손바닥으로 땅을 치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나중에 작전 참보의 뺨을 세게 치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 그의 손바닥은 피로 얼룩졌다. 상대의 힘은 과소평가하고 자신들의 힘은 크게 키운 결과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작전참모에게 있다는 듯이 그는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참모의 뺨을 여러 대 후려갈겼다. 참모의 입에서 피가 튀어 나왔다. 손바닥에 묻은 피인지 아니면 참모의 새로운 피인지 부하들은 알기 어려웠다. 그는 참모를 박살 내면서 실패한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그러나 작전의 실패는 참모의 책임이 아니었다. 굳이 묻는다면 오랜 기간 훈련한 결과 훈련병들을 교육할만한 숙달된 조교의 경지에 오른 독립군 개별 병사들의 힘이었다. 아무나 찍어 훈련 조교를 시켜도 될 만큼 두만강 일대 습격 독립군 일진은 일당백을 하는 살인 무기 그 자체였다. 토벌대가 세운 삼중의 포위망은 쉽게 뚫렸다. 그들은 두만강을 돌파한 후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신의주역을 통과한 수상한 무리의 신고를 받은 토벌대장은 그들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앞당겨 만주국 13사단의 정예 중대를 그곳에 배치하도록 명령했다. 자신이 끌고 온 3개 중대 중 가장 날렌 1중대를 급파했다. 니들이 더 빨리가 가서 매복해라. 너, 네가 현장 지휘관이다. 움직이는자들은 바로 사살해라. 그 명령을 1중대장은 보기좋게 수행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달릴 수 있는 최대치를 계산한 결과였다. 무장을 하고 인파를 피해 산악 지형으로 내달 릴 경우 도저히 그 시간 전에 당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토벌대의 1중재는 그것을 해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토벌대장의 예측은 빗나갔다. 독립군은 그 시간에 이미 그곳을 통과했다. 불가능한 것을 독립군이 해냈다. 포위망을 치기 전에 그곳을 빠져 나간 독립군 부대는 신의주 경찰서가 마주 보이는 산의 등성이에 도달했다.

작은 망원경으로 아래를 살피던 독립군 대장은 어디선가 본 낯익은 인물이었다. 맞다. 휴의와 헤어졌던 조선 청년이었다. 동지들, 때가 왔소. 저 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시다. 우선 경찰서를 동서로 포위하고 수류탄 공격으로 안에 있는 일경을 처치 합시다. 여기 손을 모으시오. 조선 청년은 분대장 4명을 모아 놓고 손을 포갰다. 그리고 작전 지시를 내렸다. 명령은 받은 분대장은 분대원들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와 경찰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때까지 경찰서의 움직음은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조선 청년. 점례가 도와줬던 바로 그 조선 청년. 그리고 경성에서 종로서 완용과 시가전 끝에 사살된 여성독립군 아내의 남편. 그는 아내의 죽음 소식을 듣고도 슬퍼할 겨늘이 없었다. 명목을 빌 시간은 있다. 아내의 죽음과 상관없이 미리 세운 계획을 포기할 수 없어. 그는 능성이를 타고 내려간 부하들이 각자 위치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을 살폈다. 그래 잘 하고 있다. 어서 치고 빠져라. 최종 목적지가 거기가 아니지 않는가. 그는 수신호를 보냈다. 실행하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내달렸다. 그리고 조선청년 역시 5명의 부하들과 함께 그들의 뒤를 돌아 다른 쪽 방향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영화를 찍는다면 촬영 감독이 꾀나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눈 쌓인 산을 스키로 타고 내려오듯이 빠르고 정확했다. 도저히 카메라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아직 어둠은 오지 않았고 개들은 짖지 않았다. 짖으려고 준비하는 순간 그들은 개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독립군은 개들을 속일 만큼 민첩했으며 심지어 발자국 소리 조차 통제했다. 독립군이 압록강에 이어 두 번째 포위망을 뚫고 나서야 포위망이 뚫린 것을 안 토벌대장은 안색이 하애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거친 손으로 쓰다듬다가 세게 꼬집었다.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꿈은 아니었다. 두껍게 잡힌 뺨이 짐승의 발톱에 할퀸 듯이 너무 아팠다. 이번에도 허탕을 친 것이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군홧발로 서 있는 소나무를 이단 옆차기로 찼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쓰러 뜨릴 만한 나무를 골랐고 어른 주먹만한 소나무는 그와 함께 써러졌다. 그가 옷을 털고 일어났을 때 총소리가 우당탕탕, 하고 심하게 나고 있었다. 토벌대장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 연병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총소리를 듣고 안에서 순사 4~5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오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럴줄 알고 대기하고 있던 독립군 기관총 부대가 일시에 낙엽 쓸듯이 쓸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등성이에서 보고 있던 토벌대장은 급하게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적들의 배후를 쳐라. 그러나 그것은 조선인 토벌대장의 세 번째 실수였다. 그 실수는 아주 뼈아팠다. 매목하고 있던 일개 분대의 독립군은 명령을 받고 죽기 살기로 달려 내려오던 토벌대를 정확히 조준 사격했다. 일개 소대가 전멸당하는 데는 2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토벌대장은 부관이 등에 메고 있던 무전기를 거칠게 뺏어 들고 추가 병력을 요구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무전을 쳤다. 적들이 포위하고 있으니 섣불리 밖으로 나오지 말고 안에서 숨어서 반격하라는 지시였다. 전화를 받고 있는 자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순사는 그래도 하이,를 외쳤다. 두번째 하이를 외치기 전에 토벌대장은 악하는 순사의 목소리를 하이 대신 전화기 너머로 들어야 했다. 독립군의 총알이 유리창을 깨고 사무실로 날아들어 하이를 외치려고 입을 벌린 그 입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뚜뚜뚜뚜, 신호음을 총소리와 함께 듣던 토벌대장은 그 자신이 직접 매복조와 전투를 벌이기 위해 부관을 포함한 선발된 요원 8명과 함께 우회로를 찾아 경찰서 방향으로 진입했다. 그 무렵 토벌대와 합류하기로 한 일경 30여 명도 경찰서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마치 물살을 거르는 연어처럼 거칠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그 발걸음을 오래 뛰지는 못했다. 연어가 뛰어 넘기에 벽은 너무 높았고 물살은 거셌다. 그곳에도 매목을 서고 있던 일개 분대 규모의 독립군은 사냥을 하듯이 조준경이 달린 소총으로 정확히 조준 사격을 해 달리는 그들을 하나씩 쓰러트렸다. 사선에서 표적의 심장을 뚫듯이 정확히 적의 심장으로 독립군의 총알은 날아갔다. 달려들 줄 만 알았지 방어할 줄은 몰랐던 합류 일경 역시 전멸하는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독립군 선발대 5명은 그 시각 경찰서 문을 박차고 한쪽 벽에 기대섰다. 동시에 열개의 눈은 적을 찾았으나 적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무턱대고 서장실로 들어가려는 부하를 조선 청년은 제지하고 그곳에 수류탄 세 발을 투척하기로 하고 자신이 직접 던졌다. 또르르르, 선명한 수류탄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 번째, 세번 째 검은 공이 서장실 앞으로 날아갔다. 조선 청년의 신호와 동시에 특공조 5명은 문을 박차고 나와 난간 뒤로 숨었다. 쾅 쾅, 쾅 잇따라 터지는 세 발의 수류탄 폭발음은 천지를 흔들었다. 그들은 그 소리를 신호로 받고 신속하게 뒤로 빠졌다. 매복조와 합류한 조선 청년은 작전이 성공한 것을 알았다. 이제 후퇴하느냐 아니면 밖으로 나오는 부상병과 잔당을 마저 처지하고 떠나느냐 하는 양 결단만 남았다. 조선 청년은 오른 손바닥을 들고 엄지를 아래쪽으로 향하면서 부하들에게 남하를 지시했다.

다음 목표를 세우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한 두명을 더 해치운다고 해서 결정적 승기를 잡는 것도 아니다. 우선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그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독립군들은 신의주경찰서를 벗어나 건너편 산의 언덕으로 내달렸다. 내려올때 만큼이나 빠른 발걸음이었다. 언덕에 올라 그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불에 타고 있는 경찰서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만족감과 함께 승리했다는 기쁨이 넘쳤다. 그러면서 이 기분을 그대로 이어서 어서 경성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조선총독부도 불바다를 만들자. 이곳처럼 하면 승산이 있다. 승전부를 울리자. 조선 청년이 주먹쥔 손을 풀며  잠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종로에서 시가전을 벌이다 사망한 아내를 떠올렸다. 네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독립군 대장의 이름으로 너에게 독립훈장 일등장을 준다. 장하다, 조선 여성 독립군이여. 내 아내여. 조선청년은 이로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렸다. 널 사랑했어. 내 사랑은 네가 있으나 없으나 변치 않아. 나를 위해 용기를 줘. 하지 못한 네 복수를 내가 해줄게. 부하 몰래 조선청년은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경찰서가 뚫리고 불에 타자 일경은 발칵 뒤집혔다. 조선총독부는 물론 본토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독립군의 위세가 생각보다 강해 이를 깔보고 대한 것에 대한 자책에 그들은 심한 괴로움을 겼었다. 얕잡아 보고 아래로 내려다본 결과는 참혹했다.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패하고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일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하지 않도록 군기를 다잡았으나 충격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일경은 전투 뿐만 아니라 정보 수집에서도 졌다. 겨우 명맥만 있고 설사 규모가 있다해도 어중이 떠중이 정도로 독립군의 세를 오판한 것이다. 사실 미군과 영국군의 지원 이전에는 그런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 중국 국민당의 자금 지원 이전에는 그 정보가 맞았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된 교육과 첨단 무기는 독립군의 사기를 올렸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타 올랐다. 조국을 위해 이 한목숨 바치겠다는 충성심을 임정은 자극했고 그것이 먹혀들어갔다. 그와함께 민족에 대한 열기는 끝없이 고조됐다.

독립군은 하루가 다르게 진짜 군인으로 자랐고 한 달 후 훈련소 퇴교 무렵에는 일당백의 전사로 거듭났다. 만주 미군 소속 조선인 군사학교 1기생이 주축이 된 신의주 경찰서 습격 사건의 성공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들의 무기는 연발이 가능한 미제 기관단총이었다. 사거리와 정확도에서 일본군 소총을 압도했다. 탄창은 잔 고장이 없어 갈아 끼울 때마다 사수들이 애를 먹지 않았다. 장전하는 즉시 발사되니 적들은 쓰러졌고 독립군의 자신감은 거친 파도와 같았다. 감히 미국에 맞서 진주만을 공격했던 일본은 독립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처음 몇 번은 잘 막아냈으나 계속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키지 않은 자책의 시간은 길지 않고 짧았다. 처참하게 패한 일본 정부는 만주 13사단의 정예 부대를 다시 꾸려 독립군의 뒤를 쫓았다. 이번에도 대장은 조선인 토벌대장이 맡았다. 사령부는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기회를 더 줄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가서 잡아. 그들보다 더 빨리 달려. 우린 차가 있어.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평양을 거쳐 경성일 겁니다. 거기가 최종 목적지 이니 평양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고 경성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경성에서 대기한다. 주력 부대는 경성 외곽에서 매복을 하고 일부는 뒤쫒고 나머지는 그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작전을 할 계획입니다. 경성까지 그들이 오지 않으면 좋지만 온다면 내 손에 걸려 들겠지요. 알았다. 네게 다시 임무를 주마. 그러나 사령부는 또한 번 오판했다. 토벌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독립군이 두만강만 넘은 것이 아니었다. 독립군은 두 부대로 나눠 하나는 압록강쪽으로 진격했다. 그들은 거침없이 남하해 대동강 은근에서 매복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도강 방법을 연구했다. 그런 낌새를 일본군도 알았다. 무전의 일부를 해독한 것이다. 그들이 도강하지 못했어. 그렇다면 이들은  평양 시내에 있거나 야산에 매복하고 있을 공산이 커. 이런 정보를 공유한 왜경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평양 시내를 순찰했다. 더러는 순찰 대신 시야에 트인 건물 옥상에 대기하면서 추가 명령을 기다렸다. 독립군 추격이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갔다. 허상이 아닌 하나의 실체였다. 

독립군도 높은 곳을 선호했다. 그들은 건물 위로 올라가기보다는 산으로 숨어들어 능선을 타고 이동했다. 산이 험하고 많은 조선땅의 지형을 적절히 이용했다. 한쪽은 이용하고 한쪽은 추격을 어렵게 만들었다. 간혹 만나는 산간 마을의 흰옷입은 백성들은 산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러나 일제보다는 독립군에 호의적이었다. 그들은 도망자들을 때로는 숨겨 주었고 추격자들에게는 혼선을 주는 정보를 퍼트리기도 했다. 남하하면서 독립군은 도피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도주는 새로운 공격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평양까지 독립군은 진격했다. 그러나 거기서 부터가 문제였다. 평양은 삼엄했고 주변은 통제됐다. 도시 인근의 산들은 얕았다. 그래서 추격이 시작되면 꼬리가 밟힐 수 있다. 독립군들이 한 곳에서 두 세시간을 머물지 않는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큰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평양에서 지체되다 보니 이곳을 타격하고 남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작전이 일부 변경됐다. 조선 청년은 어렵겠지만 다음 타킷으로 평양 경찰서를 노렸다. 거기라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시민들의 입소문도 빠르게 퍼진다. 이왕 느리게 남하하게 된 이상 한 번 해보자고 나늠대로 작전을 구상했다. 그러자 지체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은 사라지고 작전의 디 데이를 손꼽고 기다렸다. 용골산이나 청운산 국사봉 등 비교적 낮은 산은 주로 야간에 잠입했다. 그리고 날이 샐 무렵 추봉산이나 오봉산 등 높은 산에서 기회를 엿봤다. 간혹 수색대들이 거리낌 없이 산에 오르기도 했다. 그들은 아래쪽에서 가졌던 호기롭고 조심성 있는 자세를 꼭대기로 오면서 많이 상실했다. 그것이 독립군에게는 기회가 됐다. 치고 빠지는 작전은 먹혀들었다. 혼비백산한 그들은 줄행랑을 쳤고 그들이 흘리고 간 무기나 사살한 적에게서 전투 식량과 의복등을 수거했다. 운 좋은 날은 소총은 물론 실탄이나 수류탄 등 필요한 무기 등을 확보했다. 

일제는 적이 산에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당하고 있어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것을 독립군은 역이용했다. 밤시간에 은밀히 이동하고 낮에 움직일 때는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하니 독립군 색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민들에게 인심을 산 독립군은 어느 날 대규모 일경이 산으로 향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끝이 안 보였어요. 그들은 계속 산으로 올라갔어요. 수백명 아니 수천명이 올라 갔으니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눈물겹게 고마운 정보였다. 내려오기를 잘 했어. 퇴로가 차단됐다면 우리 소대는 어려웠을 거야. 평양 시내서 지게꾼 행세를 하면서 정탐을 하던 조선 청년은 하루만 늦었어도 힘든 상황이 왔을 거라며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의주 경찰서가 뚫리고 평양까지 독립군이 진격했다는 소문은 경성의 총독부에 까지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은 설마 했다가 사실로 드러나자 연인 대책회의를 했다. 처음에는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작전에 실패한 책임자에 대한 문책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첩보를 미리 입수하고 매복했음에도 남하를 막지 못한 토벌대장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그 자의 옷을 벗깁시다. 이런 주장까지 나왔다. 본때를 보여서 경계합시다. 그동안 우린 조선에서 너무 느슨했어요. 태평양 전쟁에 신경쓰러나고 그랬지요. 책임자의 옷을 벗기고 감방에 처넣지요. 심지어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러지 말라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참모들을 말렸다. 지금은 숙련된 지휘관이 필요한 때지 그들을 내칠 때가 아니라고 흥분된 그들을 다독였다.

적절한 선에서 구두 경고를 하고 토벌대장에게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생략했다. 한마디로 지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줄 테니 앞으로 잘 해 나가자고 분위기를 추어 올렸다. 사기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지 문책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련한 일본 정치인의 주장이 정부를 움직였다. 그만큼 그들은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마침 조선 방문을 위해 서두르던 기무라 참의원은 신의주 경찰서 보고를 받고 작전 실패의 책임을 묻는 일본 언론과 여론을 이 한마디로 잠재웠다. 전시에 장수를 욕하는 자는 매국노다. 그는 일본인은 한 번 실수할 수는 있으나 두 번은 하지 않는다고 호소하면서 다음에 더 큰 승전보를 올려 그 전의 실패를 만회하자고 역설했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며 자랑이다. 신의주 경찰서 사건은 더는 언급하지 말라. 이것으로 조선 총독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더는 자책이나 문책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기무라는 방문 일정을 취소하기보다는 서둘렀다. 직접 조선의 상황을 보고 사태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베이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고 있는 아들 유마 호사카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해져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보디 가드와 수행원 등 대규모 일행단과 함께 시모노세키호에 몸을 실었다. 그는 객실에 머물지 않았다. 선실에서 그는 선장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현해탄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군인으로 성장한 아들의 얼굴이 물결따라 눈에 어른거렸다. 외아들을 삼 년 만에 보는 것이다. 말려도 듣지 않고 되레 위험지역으로 전출해 간 아들의 심경 변화도 궁금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원한 태평양 전쟁을 뒤로 두고 안전한 후방을 택했는지 알고 싶었다. 부상은 그저 핑계라고 여겼으나 아버지의 마음은 아팠다. 그래서 전쟁이고 나발이고 간에 어서 군복을 벗고 제대할 수 있도록 태평양총사령부에 압력을 넣었다. 남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에 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령부는 일본 정계의 유력한 참의원의 말을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후송하기보다는 그대로 전역 절차를 밟았다. 

이는 당연히 잘한 결정이고 나무랄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변한 생각의 원인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잡념으로 기무나 참의원은 배가 인천항에 정박할 때까지 선실과 갑판을 오가면서 조선땅에 발을 디딜 준비로 마음이 약산 설레기 까지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본국의 거물급 의원 행차는 왕의 행렬에 견줘 뒤질 게 없었다. 그는 점령자의 위세에 자신이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며 가까워 오는 육지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 시각 완용은 건달을 화장실 옆의 음침한 구석으로 불렀다.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건달은 완용의 눈이 평소와는 다르게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 제 책임입니다. 선수를 쳐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받겠다는 그의 판단은 틀렸다. 완용은 다짜고짜 폭력을 썼다. 그래, 그럼 책임을 져야지. 컥, 완용의 워커 발에 정강이를 걷어 채인 건달이 뒷걸음질 쳤다. 무방비 상태에서 일격을 받고 그는 매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기습 공격에 당황한 건달이 완용 앞으로 한 발 더 나갔다. 죽여 주십시오. 그래, 그러려고 했다. 퍽퍽. 이번에는 워커 발이 명치를 조준했다. 태권도로 단련된 완용의 옆차기는 발끝에 힘이 실렸다. 완용의 옆차기에 건달은 서 있던 자리에서 정확히 3 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따질 게재가 아니다.  완용은 그런 그에게 앞으로 다가서면서 재차 내려찍기 자세를 취했다. 건달은 일이 그른 것을 알아차렸다. 책임을 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다. 그래서 엉거주춤 일어난 상태에서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길게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죽겠다는 각오였다. 죽어서 영혼을 찾아 떠나는 구원자의 심정이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명예롭게 죽고 싶을 뿐입니다. 건달은 자신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구 나오는대로 지껄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 정도 했으면 끝내 달라는 애원의 신호가 담겨있었다. 완용이 그걸 모를 리 없었으나 그는 이 정도에서 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 만큼 화가 났던 것이다. 부하의 목을 날린 그 일본도를 꺼내지는 않았으나 그는 쥔 주먹을 거두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고개 들고 턱 내밀어. 건달은 일어나서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입 다물었지. 하이, 완용이 하이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내민 턱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감정이 실린 한 방이었다. 그가 무릎을 꺾더니 뒤로 벌렁 자빠졌다. 살찐 돼지 한 마리가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형국이었다. 똥개 새끼. 그는 조선말로 이렇게 내뱉고는 자빠진 부하 건달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대단히 모욕적인 언행이었다. 이거 경부보 체면이 말이 아닌 걸. 그도 똥개니 개새끼 정도의 조선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순간 영혼을 버리고 이를 갈았다. 조센징 놈을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겠다. 죽이고 싶지, 이 개새끼야. 퍽, 아닙니다. 아닙니다가 아니잖아. 퍽, 정말로 아닙니다. 그래, 개새끼 이거나 먹어라 퍽 퍽 퍽. 경부보가 쓰러지면서 입에서 나오는 피를 뱉어냈다. 완용은 분풀이를 끝냈다. 끝냈으나 자기 책상으로 가지 않고 서장실로 노크도 없이 바로 들어갔다. 그는 부하가 그랬던 것처럼 서장을 보자마자 총 맞은 사람처럼 순식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허리춤의 권총을 풀었다. 그리고 푼 것을 조심스럽게 서장의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무능한 자신은 대일본 제국의 경부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여기서 목을 베어 달라고 부하가 했던 것처럼 길게 앞으로 목을 내밀었다.

경시정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끊어올랐다. 경찰 인생 가운데 최악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삭일 수 없는 울분이 치밀었다. 귀찮은 일에 더 귀찮은 일이 더해졌다. 내친김에 이 조센징의 목을 긴 장대에 달아 서의 앞마당에 내걸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처벌은 뒤로 미루겠다. 잔당들을 추격해 모조리 사살해라. 한 달 내로 사건을 마무리하라. 그때 네 죄를 묻겠다. 삼일만에 휴의를 잡겠다는 완용의 무모한 약속이 물거품이 된 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완용은 임금 앞에 선 신하처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고 조선말로 말했다.너 방금 뭐라고 했니.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내가 알아 들을 수 있게 국어로 해야지. 그리고 너, 앞으론 내 앞에서 조선말 쓰지마. 무의식중에 나온 조선말이었다. 완용은 자신의 방정맞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세게 꼬집었다. 피멍이 들정도 였으니 아팠다. 경시정은 경부를 일으켜 세워 마주 앉았다. 경부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부하들은 따뜻하게 대해 달라고 경시정에게 거듭 당부했다. 부하들은 책임없습니다. 다 경계를 소홀히한 제 잘못입니다. 특히 제 직속 건달 경부보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에게는 작전이 끝난 후 특별한 배려를 부탁합니다.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앞서 싸웠으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도 부하를 살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어요. 완용은 그의 용맹을 치하했다. 이것이 완용이 상관과 부하를 대하는 태도였다. 

완용은 내친김에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렇게 열심인 경부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대일본 제국의 자랑스런 경찰이 틀림없어요. 경부가 말했다. 경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번 경부는 경부보의 전투력을 칭찬했다. 부상병이 한 명 발생한 것도 부하의 정확한 사격 덕분이라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완용의 이런 태도를 피죽이 된 경부보가 봤다면 어떤 심정일까. 완용과 경부보와 경부가 잇따라 대화한 내용은 아래와 같은 일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 사복입은 괴한 서너 명이 순찰 중인 종로서 형사 세 명을 사살하고 달아났다. 순찰중인 경찰이 죽은 것도 그렇지만 그 사건은 백주대낮에 여성 독립군에 의해 일경 두 명이 피살된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컸다. 이제 경성에서 독립군과 일경과의 전투는 일상이 되다 시피했다. 문제는 백성들의 동요였다. 독립 의지가 꺾일 때쯤 일어난 일련의 총격전은 그들에게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다. 죽지 않고 살아 있구나.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어. 이제 흰옷 입은 사람들 가운데 조선독립군의 경성 총격전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 점을 총독부는 종로서 형사들 사망보다 매우 심각하게 들여다 봤다. 독립군은 사망자는 없이 한 명의 부상자를 남겼는데 그는 도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자결했다. 그도 여성 독립군처럼 적의 손에 죽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으면서 조선 독립 후에 만났시다, 시유 어게인 하고 마지막을 영어로 말했다. 시유 어게인은 매일신보의 제목이었다. 아윌 비 백. 다른 독립군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보자는 말은 또다른 전투를 의미했다. 돌아온 다는 말은 일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것이 완용은 물론 총독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자, 이제 어쩔거야. 경부가 담배를 권하면서 깊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저나 아까 복도가 시끄럽더니 무슨 일이야. 제가 좀 소란을 피웠습니다. 사실을 부하를 칭찬한다는 것이 반대로 주먹질을 했어요. 그래서 참 미안한 마음이고요. 그래서 경부보에 대한 그의 헌신을 본대로 조금 더 말하겠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가감 없는 진실입니다. 아직 저는 오른 다리 부상이 완치 되지 않아 왼손으로 권총을 쥐고 발사했는데 정확도가 매우 떨어졌어요. 제 책임이 크지요. 그 때 제가 바로 맞췄다면 우리 부하  세 명이 당하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저는 되는 대로 총을 쐈고 적들은 조준해서 쐈어요. 그러니 상대가 안 될 수 밖에요. 그 와중에 부상자가 나왔어요. 그때 경부보가 득달같이 달려갔어요. 물론 엄호 사격도 없는데도요. 그는 총알을 피하면서 부상병을 위험을 감수하고 안전지대로 데려왔죠. 자기 부하가 당하기 전에 얼른 적지에서 빼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칭찬해야 마땅합니다. 정말로 그는 앞서가던 동료가 쓰러지자 겁없이 달려갔다. 총에 맞았는지, 맞았다면 어디에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경부보는 확인이 끝나기도 전에 동료의 허벅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들쳐 없었다. 경부보는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한 자입니다. 건달의 의지가 전투 현장에서 발휘된 겁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경부보가 그 말을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 등 뒤에 있는 경부보를 경부는 알지 못했으나 경시정은 눈짓을 하면서 기다리라는 시늉을 했다. 이 일로 경부보가 좌천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것은 제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우리 지서에서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경시정이 이번에는 경부가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큰 손짓을 하면서 경부보에게 경부 옆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경부 완용은 놀랐다. 그러나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무표정하게 말했다. 너 언제 왔니. 방금 전입니다. 왔으면 인기척을 내야지. 경부는 부하를 옆눈길로 보았다. 얼굴에 피멍이 들고 턱은 빠졌는지 비뚤어져 있었다. 가서 씻어라. 경부보는 경시정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으나 아무 말이 없자 경부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경부보는 경시정 앞에서 대놓고 자기를 칭찬하는 경부를 다시봤다. 섬길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다. 얻어터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진실을 알아 버린 경부보는 자기 자신보다도 더 경부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자신을 얼마나 끔찍이 여기면 그런 말이 술술 나올 수 있을까.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고자질하는 앞뒤가 다른 인간과 그는 얼마나 다른가. 부하는 그 순간 자신이 단 한 사람 완용에게 매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상대할 유일한 상관이었으므로 다른 상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시정 조차 경부보다 인격이나 실력이나 모든 것이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조선인만 아니었다면 그는 총독부의 최고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인물로 우러러봤다.

한 번 이런 마음이 들자 그가 경시정 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자신을 험담한다고 생각해 뒤쫓아가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박살을 내려고 했던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한없이 후회했다. 틀림없이 자신은 빠져나가고 책임을 온전히 자신에게 뒤집어씌울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달랐기 때문이다. 경부보는 경시정이 상부의 지시를 받고 어떤식으로든 작전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부하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알지 못했다. 경부도 마찬가지였다. 경시정은 무전으로 다음 작전의 성공을 위해 잠시뒤로 질책을 미루라는 명령을 하달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그 결과 경부는 경부보를 죽사발로 만들었고 죽사발이 된 경부보는 경부에게 원한을 품는 대신 존경의 마음을 한 가득 품게 됐다. 미리 알려주지 않고 독단적으로 판단한 경시정 때문에 완용은 뜻하지 않게 부하의 신임을 한 몸에 받게 됐다. 그러나 휴의에 대한 분노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이번 작전의 배후도 휴의다. 배후가 아니라 책임자. 현장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던 자의 뒷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자가 휴의다. 그는 나를 비웃겠지. 그 비웃음이 비명으로 바뀔날이 온다. 기다려라. 아니 그럴 것 없다. 내가 간다. 완용이 분노의 침을 탁하고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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