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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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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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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휴의는 종로통을 걷고 있었다. 천천히 걷다가 빠르게 걷다가 가게를 구경하기도 하고 정거장에서는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 흉내를 내기도 했다.

차림새는 완전히 노인 복장이었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머리는 희게 센지 오래였다.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어깨에는 작은 보따리를 맸다. 언뜻 보면 평범한 노인이 소일 삼아 거리로 나온 행색이었다.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만한 것이 못됐다. 조선에 잠입한 후 보름간 휴의는 낮에는 주로 이렇게 활동했다. 걷는 것은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

일상의 관찰은 무심한 듯 보여도 큰 흐름을 보는데 요긴하게 작용했다. 경성에서 용산까지 갔다가 방향을 틀어 마포에서 신촌으로 다시 아현동까지 와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 후는 경희궁을 거쳐 종로통과 광교 사이를 오고 갔으며 인사동이나 안국동 심지어 청량리까지 걸었다. 종일 걷다 보면 생각이라는 것이 정리가 됐고 보이지 않던 시류를 읽어 낼 수 있었다.

디데이는 철저히 휴의 자신이 판단해야 했다. 같이 온 동지 두 명은 멀찍이서 휴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르거나 아니면 둘이 혹은 셋이 동행하기도 했다.

'동지, 휴의 동지 잘 선택했소. 만약 미군부대 소속으로 동남아로 끌려갔다면 우리의 작전은 큰 손실을 불러 왔을 거요. 탈출해서 무사히 여기 있다니 동지는 참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이오.'

휴의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준비는 됐소. 자금은 넉넉하고 다이너마이트는... 조선에 가면 접선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거요. 광산에서 빼내온 것인데 양은 충분하오.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조선독립에 큰 전환이 될 겁니다. 가능한한 총독 포함 고위 인사들을 처리하기 바라오.'

'독립군 투입은 언제 이뤄지나요?'

'그것은 아직 미정이오. 분명한 것은 휴 동지의 폭파에 달려 있오. 내각의 허락은 이미 받았소. 이것은 임정의 공식 명령이오. 휴 동지..'

주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는 휴의와 눈을 마주쳤다. 안경 너머로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작전의 성공을 바라는 간절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이번 작전은 지난번 침투보다 더 위험하다. 폭약을 설치하는 과정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주석은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그런 눈으로 한동안 휴의를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성공하고 오겠습니다. 저 때문에 한숨 짓는 일은 없을 겁니다.'

되레 휴의가 주석을 안심시켰다.

그런 대화를 나눈지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다. 해가 가기 전에 처치한다는 결심을 굳힌 휴의는 디데이를 언제로 할지 여전히 망설였다. 단 한번으로 작전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점례의 귀국소식을 들었고 그것이 자신은 물론 조선독립에 기여를 한다는 좋은 징조로 여겼다. 점례라면 총독의 일정을 알것이다. 잠깐이면 된다. 분 단위도 필요없다. 접촉만 한다면 일은 절반의 성공이다.

휴의는 같이 온 동료에게도 자신이 점례를 만나려는 사실을 함구했다. 알던 사이는 물론 그 어떤 관계를 암시할 수 있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해서 도움이 될 것도 아니었다.

종로 삼가 파고다 공원 앞에서 그는 노인들 틈에 끼어 있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경운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궁궐의 담을끼고 그는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숱하게 다녔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감 두세 개가 걸려 있었다. 까치밥이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국밥집에 들었다.

사이를 두고 한 명의 동지도 따로 앉았다. 다른 동지는 맞은편 집에서 홀로 식사를 했다. 휴의의 눈은 맞은편의 화랑을 계속 힐끔거렸다. 혹시 점례가 드나드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안은 실내등이 켜졌으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일거리가 없는 다른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점례가 일하던 화랑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삼촌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잠깐 그림자처럼 안쪽에 나왔다가 다시 내실로 들어가는 여자가 보였다. 느낌상으로 그는 점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휴의는 뒷모습이나 옆모습 혹은 앉은 모습만 봐도 점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점례는 아니다. 그래, 그녀는 지금 시청쪽에 있을 것이다. 

어제 조선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에 오지 않는다. 내일 기자 회견이 예정돼 있으니 그런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휴의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좀 먼거리였지만 이른 저녁이라 걸어서 거기로 가볼 참이었다.

휴의가 다시 종로 쪽으로 걸어갈 무렵 유지와 점례는 무교동의 한 국밥집에 들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와 반갑게 맞았다.

'여기 국밥 두 그릇 주세요.'

유지가 다가오는 아주머니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는 손님인 것처럼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이면서 반갑게 웃었다. 점례가 대신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당신은 양복을 입으세요. 그래요. 회견장에서 그런 꼿꼿한 자세가 어울려요.'

유지가 의자를 끌어당기면서 몸을 붙이자 점례가 말했다.

'이렇게?'

지적받은 아이처럼 등을 뒤로 더 기댔다.

'아니, 아니요. 그러다 넘어지겠어요. 당신은 당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간혹 잊을 때가 있어요.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두세요.'

점례가 꾸짖듯이 말했다.

'가져온 곤색 양복이 기자회견장에 어울릴 겁니다. 바지는 일층 로비에 다림질을 부탁했어요.'

'아니, 언제 했단 말이오?'

'당신이 삼촌을 만나고 있을 때 문득 생각했어요. 겉옷은 괜찮은데 바지가 많이 구겨져 있더라고요.'

'대단해.'

유지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당신은?'

'내 옷차림요?' 이 상태는 어때요?'

'당신은 어떤 옷을 입어도 어울리지만 혹시 기자 중에 우리 모습을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르잖아. 어제와 같은 옷을 입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왜 그 있잖아. 가슴에 사쿠라 장식을 한 그 옷 말이요.'

'레이스가 달리고 단추가 금색인 브라우스 말인가요?'

'그래 바로 그거요. 거기다 겉에 하나 걸치면 될 거요. 현장에서 외투를 벗으면 당신은 공주처럼 환하게 빛나겠지.'

'이 모자는요?'

'당신 마음대로 해.'

'쓰고 갈게요. 혹시 질문할지 모르잖아요. 당신 칭찬좀 대놓고 할게요.'

'그럽시다.'

그때 서너 명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노무자들은 아니었다. 차림새로 보아 한 가닥 하는 사람들 같았다. 일본어를 주로 쓰면서 간혹 조선말이 튀어 나왔다.

조선사람이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는지 일본 사람이 조선말을 조금 배워서 써먹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서는 술부터 시켰다.

'여기 술 가져오시오.'

명령조였다. 의자를 거칠게 빼고 자리를 잡았다.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의 자신감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문제없다는 태도였다. 유지는 불쾌했다. 점례는 조금 두려웠다. 그래서 빨리 이 자리를 파하고 호텔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유지는 그런 마음도 모르고 주모를 불렀다.

'여기 조선술 하나 부탁해요.'

구석에 앉은 세 사나이 중 하나가 이쪽을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지는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하는 시선을 했으나 실은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누군가. 세력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 반칙 정도는 상관 않겠지.'

술이 오자 유지는 감탄하는 기색으로 술을 따랐다. 좀 전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도 한잔해.'

'아니 전 됐어요. 아직 어질어질해요.'

'그러니 조금만 먹어요.'

점례가 잔을 받았다.

'간바이, 간바이.'

둘이 잔을 부딪쳤다. 저쪽에서도 간바이 간바이 간바이 하는 소리와 함께 천황만세하는 합창이 울렸다. 무리 가운데 한 명이 종로경찰서 서장 동휴였다.

그는 호텔 체크인 당시부터 유지와 점례를 미행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변 보호 차원에서 경호임무를 하는 일이었으므로 숨기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그는 드러내기보다는 먼 거리 경호를 택했다. 경호 받는 대상이 알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동휴는 다른 속셈도 있었다. 점례를 확실히 관찰하면서 점례와 접선을 시도하는 휴의를 잡기 위해서였다.

휴의도 점례의 귀국 소식을 알고 있다. 분명히 접근한다. 시기와 장소가 문제일 뿐이다. 동휴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먼거리 경호를 택했다.

점례는 동휴를 알아채지 못했다. 지난번 인사동 술자리에서처럼 점례는 동휴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지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보장교의 촉감은 언제나 정확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자가 혹시 휴의는 아니겠지. 저렇게 일부러 자신의 신분을 노출할 리가 없어. 건방 떨 필요가 없지. 그러면 나와는 무관한 그런 자들이거나 경찰서 정보요원들 일거야.'

유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두어잔 술이 들어가자 뱃속이 따뜻해졌다. 피곤이 몰려 왔다. 장시간의 여행이 가져오는 기분좋은 노곤함이었다.

이대로 잠이 들면 내일 아침까지 푹 잘 것이다. 유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데 만족했다. 그는 일어섰다. 점례가 따라 일어섰다.

그때 구석에 있던 세 남자 가운데 유독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던 남자가 저 신사분 식사는 자신이 내게 해달라고 청했다. 유지나 점례는 그 말을 생생히 들었다.

동휴가 다가왔다.

신사 숙녀분이 일본 제국을 위해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 같으니 밥값은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 신분은 묻지 말고 자신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코앞까지 와서 유지에게 악수를 청했다.

'대일본 제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시오. 그리고 사모님도요.'

깍듯했으나 일부러 위엄을 담은 말이었다. 유지의 손을 떠난 동휴의 손이 점례의 손을 잡았다. 짧게 깎은 머리와 얼굴의 깊은 상처 그리고 굵은 목소리까지 그는 젊은 시절의 동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납작한 코는 어쩌지 못했다. 작은 귀와 짐승처럼 뾰족하게 솟은 귀도 점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점례는 그가 동휴라는 것을, 그가 틀림없다고 순간 확신했다.

그러나 동휴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듯이 예의를 갖추면서 고개를 숙였다.

'동휴는 말이야, 눈은 좋은데 코가 못쓰게 생겼어. 그리고 귀도 사람 귀처럼 너그럽지 못하고 짐승처럼 뾰족해. 그래서 눈에서 얻은 점수를 다 까먹었어.'

언제가 엄마는 휴의에 대해 잔뜩 칭찬을 늘어놓은 다음 동휴의 관상을 평한 적이 있었다.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그 말이 지금 갑자기 떠올라 점례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예의 침착함을 잊지 않았다.

유지는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꾹 참고는 다음에 만나면 오늘 신세를 갚겠다면서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당신이 내부대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을까요?'

'그럴 리야. 알았다면 신분을 밝혔겠지.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조선에서 많지 않아요. 총독이나 그 아래 경무총감 그리고 헌병대사령관 정도일거요.'

'종로서장도 알지 않을까요? 당신 신변은 종로서 책임이잖아요.'

점례가 일부러 종로서를 꺼냈다.

'정식으로 대면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종로서라면 사진 정도는 가지고 있을거야. 그런데 그 작은 사진 하나로 나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

'그러게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호텔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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