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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바톤 핑크(1991)- 해변의 남자는 왜 상자를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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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바톤 핑크(1991)- 해변의 남자는 왜 상자를 들었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11.2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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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코엔 형제의 영화는 믿고 본다. 형 조엘 코엔이 만든 <바톤 핑크> 역시 그렇다. 관객의 호기심을 끌만 한 것은 죄다 끌어모았다.

웃기면서 무섭고 무서우면서 웃긴다. 예측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고 반전을 기대했는데 예상대로다. 언제나 감독은 관객의 허를 찌른다. 허를 찔리고도 찔린 줄도 모르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찔렸구나 하고 헛웃음을 삼킨다.

서두는 이쯤에서 끝내자. 바톤 핑크는 사람 이름이다. 핑크가 주는 우아하고 세련된 선입견 때문에 주인공을 여성으로 착각하면 오산이다. 하지만 바톤 핑크(존 터투로)의 감수성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어리숙하지만 뛰어나서 어떤 예리한 여성의 그것을 앞지른다. 그래서 살짝만 찔러도 피가 나올 것만 같다. 이런 남자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런데 찰리(존 굿맨)는 아니다.

거칠기가 황소와 같다. 거구의 몸은 그가 전직 레슬링 선수라는 것을 실감 나게 한다. 보험 외판원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지만 그는 어쩐 일인지 가방을 들고 상품을 판다.

그 바닥에서 성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다. 그럴 수 있다. 뭐가 잘못인가. 레슬링 선수는 평생 상대를 메다꽂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핑크는 브로드웨이에서 한 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극작가로 그는 명성이 솟고있다. 그런 그를 할리우드가 주목한다. 글을 쓰는 일이니 연극의 대본이든 영화의 시나리오든 큰 차이는 없을 터.

그러나 핑크는 처음에는 망설인다. 하지만 결국 엘에이에 발을 디딘다. 제작자는 찰리를 능가하는 거구를 자랑한다. 얼굴크기도 막상막하다. 하지만 떠벌이는 데는 제작자가 조금 위다.

그는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포신이 녹아 흐물거릴 때까지 입을 쉬지 않고 놀리니 핑크는 좀처럼 대꾸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그의 먹잇감으로 만족해야 한다.

제작자는 주인공으로 레슬링 선수를 원한다. 레슬링 영화도 B급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이 코너에 소개한 <더 레슬러>를 보라.)가난하거나 고아 출신이거나 범죄를 거친 자라면 호기심을 끌 만하다.

그는 입 다물새 없이 관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주문하고 핑크는 그러마, 하고 마지못해 약속한다. 자, 이제 드는 의문은 과연 핑크가 제작자가 뜻대로 원고를 제 때에 완성하느냐에 하는 것에 모아진다.

그러나 쉽게 스토리가 나온다면 코엔 형제의 작업 방식은 아니다. 그는 골머리를 싸맨다. 겨우 한두 줄 써 놓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벽지가 흘러내릴 정도로 더우니 손바닥만 한 선풍기 한 대 갖고는 어림없다.

눈앞의 반라 여성도 흐르는 땀을 식혀줄 수 없다. 신경은 곤두선다. 창작자의 고통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니 넘어가자.(역시 이 코너에 소개한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참고해 보자.)

설상가상으로 허름한 호텔이다 보니 옆방의 소리가 귀에 들린다. 그냥 무시할 수가 없다. 그는 타자기를 물리고 소리에 집중한다. 더는 참을 수 없다. 프런트는 옆방에 주의를 경고하고 경고받은 찰리는 당장 엎어 치고야 말 것 같은 화난 얼굴로 핑크의 방을 노크한다.

둘은 어쩌고저쩌고하는 사이에 친구가 된다. 유명 작가와 보험 외판원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전직 레슬링 선수인 것을 감안하면 그가 시나리오 작업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은 간다. 강물도 흘러간다. 제3 한강교 밑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혜은이 노래를 듣고 넘어가도 좋다.) 글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그러던 와중에 유명 작가를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가 이름값과는 달리 생활은 형편없는 망나니라는 것도 안다.( 그의 작품이 실제로 그가 쓴 것인지도 의문이다.) 술주정뱅이에 욕설에 폭행까지 할수 있는 것은 다한다.

▲ 바톤 핑크를 연기한 존 터투로는 '빠삐용'에서 열연한 전성기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 시킬 만큼 빼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 바톤 핑크를 연기한 존 터투로는 '빠삐용'에서 열연한 전성기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 시킬 만큼 빼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핑크는 그의 개인비서 겸 정부가 불쌍하다.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자신의 호텔 방으로 초대한다. 뭐 그럴듯한 이유를 더 하고서. 나중에 보자는 여자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여자가 홀로 호텔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둘은 이런저런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다가 눈이 맞고 하룻밤을 보낸다. 모처럼 개운한 잠을 자고 난 핑크는 기지개를 켜다말고 그만 놀라 자빠지고 만다.

그녀가, 나에게 기쁨을 준 예쁜 그녀가 피투성이로 죽어 있다. 비명은 이런 때 질러야 한다. 핑크가 온갖 형상으로 변한채 내지르는 괴성과 그에 맞는 음악을 듣는 관객은 이 대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릴수 밖에 없다.

무섭기는 한데 웃기기 때문이다. 웃기기는 한데 또 얼마나 무서운가. 형사들이 오고 마침 그때 찰리는 꾸러미 하나를 맡겨 놓은 채 뉴욕으로 떠나고 없다.

그 시각 언론은 뉴욕의 살인 사건을 보도한다.( 핑크는 브루클린의 삼촌을 찾아가라고 찰리에게 삼촌 주소를 건네준 바 있다.)

엘리베이터는 화염에 싸이고 그 불길은 객실은 물론 호텔 전체를 집어삼킨다. 찰리가 피부를 벗길 만한 불길을 뚫고 호텔로 돌아온다.

그는 괴력으로 수갑과 연결된 파이프를 뽑아내 핑크를 구출한다.

핑크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됐느냐고. 그것은 팁에서 다루기로 하자. 제작자와 핑크가 벌이는 아니 제작자의 일방적인 공격이 무시무시하고 현란해 본문에서 다루기에는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국가: 미국

감독: 조엘 코엔

출연: 존 터투로, 존 굿맨

평점:

: 핑크는 대본을 완성한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쓴 모든 작품 중 최고라고 만족한다. 제작자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까. 아닐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영화 제작은 물 건너갔다.

예술가 운운하면서 핑크의 고통에 공감하기도 했던 그는 돌연 변심하고 그 변심은 일방적인 소리치기로 끝났다.

아쉽다. 시나리오는 살아 있다. (코엔 형제 중 누구라도 핑크의 시나리오로 다음 영화를 제작했으면 한다. 레슬링 영화는 언제 봐도 후련하기 때문이다.)

한편 앞서 언급한 소포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은가. 핑크는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일품인 어느 해변을 걷고 있다. 그의 손에는 예의 그 소포가 들려 있는데, 저 멀리서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온다.

여자가 말을 붙인다. 날씨가 좋죠? 그 상자에 든 것은? 나도 몰라요. 당신 것 아닌가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당신은 아름답다.

그게 앤딩씬이다. 허무한가. 아쉽지만 영화는 핑크가 시나리오를 완성했듯이 끝났다. 눈감고 음악과 파도 소리를 들어 보자. 그런대로 괜찮지 아니한가. 상자의 주인이 누구이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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