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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훈련된 병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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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훈련된 병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을 유지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8.18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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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갔다 했다. 눈뜨고 자세히 보면 보일 것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정월 대보름날 마을 대항 불놀이 싸움 하듯이 서로에게 마지막 공격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휴의는 어린 시절 바싹 마른 집 앞 논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휴도 있었고 점례도 용희도 있었다. 동휴는 같은 편이어서 서로에게 기대는 바가 컸다. 둘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점례와 용희는 멀찍이 서서 응원을 했고 간혹 박수를 치고 환호도 질렀다. 방을 동동 구르면서도 집에 돌아가야 할 때를 자꾸 뒤로 늦춘 것은  추위를 이겨낼 만큼 재미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불놀이 싸움은 말은 싸움이지만 이긴다거나 진다는 것보다는 서로 어울리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놀이의 마지막은 늘 화려했고 다정했다. 내편 니편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마지막 불깡통을 하늘로 던져 올리는 것으로 싸움은 끝나는 것이다. 

화산 구경은 못했지만 그 광경은 그것에 못지않은 장관이었다. 불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도 공포스럽지 않았다. 놀라움과 경탄만이 입가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휴의는 동휴가 던지는 불깡통이 제일 높이 올라가고 제일 멋있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 놈은 불깡통 던지기의 일인자였어.'

동휴의 깡통은 다른 아이들이 돌리는 것보다 곱절은 컸다.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는 소나무 광솔의 양도 그만큼 많았다. 담는 그릇이 크니 마지막에 남은 붉은 재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동휴가 깡통 전체를 하늘로 높이 던져 올리면 그것이 거꾸로 떨어져  내려오는 장면은 다른 깡통과는 달랐다. 

압도적이라는 말은 이런 때 써야 한다. 

점례나 용희는 동휴가 불깡통을 던질 때까지 집으로 가지 못했다. 동휴의 것을 보지 못하면 지금까지 본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동휴는 짐짓 가장 늦게 깡통을 던져 충분히 애간장을 태운 다음 피날레를 장식하곤 했다. 

어떤 아이들은 깡통이 정확히 거꾸로 서지 못해 불꽃이 흐리게 떨어지거나 아예 잘 보이지도 않았으나 동휴는 언제나 정확했다. 한 번도 불깡통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가장 높이 올렸고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깡통은 뒤집어졌다. 자로 잰듯이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녀석은 던지고 나서 자리를 옮겼다. 늘 자신이 밟았던 땅으로 깡통은 떨어질 것을 알고 미리 피하는 것이었다. 옮길때는 미리 봐둔 점례나 용희가 있는 쪽이었다.

어머나, 둘은 작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리를 비쳐주지 않고 버텼다. 동휴는 이제 그녀들과 나란히 서서 자기가 던진 불깡통의 불이 아래로 수천개의 별똥별이 쏟아지는 것을 구경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불깡통 던지기의 일인자였던 동휴는 그것 말고도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 했다. 비석치기나 자치기도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휴의는 언제나 이등이었다. 발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짚으로 만든 축구공을 찰 때도 영락없이 아이들을 따돌렸고 골을 넣었다.

'동휴야, 네가 제일 멋있어.'

점례인지 용희인지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면 동휴는 뒤돌아 서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밤하늘의 별빛과 불깡통의 재 사이로 동휴가 세운 엄지 손가락이 빛났다.

유성처럼 짤라의 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여흥의 여운은 길었다. 

'저 놈은 저 손가락처럼 우뚝설거야.'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가. 우뚝선 것이 고작 일제 순사가 되어 독립군을 때려 잡는 일인자인가. 휴의를 고문하던 동휴의 얼굴은 불깡통을 던지면서 환호하던 그가 아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붉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는 웃음이 있었고 지금은 살기로 덮였다.

골을 넣고 손뼉을 마주쳤던 그는 어디로 갔는가. 휴의에게 그는 죽은 자였다. 친구도 동료도 아니었다. 자신을 군대 보내는 친구의 우정은 없다. 나중에 그것은 우정이 아닌 적의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과 같은 정도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휴의는 군인으로 성장했고 변절하지 않았다면 제국주의 하에서 동휴와 서로 누가 더 높은 곳에 오르는지 경쟁하고 있을 것이다.  휴의는 제국의 군인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무려 일년 삼개월 동안이다. 

지금도 그 자신이 독립군을 취조만 하지 않았다면 휴의는 일본군의 고급 장교로 다른 인생길을 걷고 있을 터이다. 

'조선인이 조선 독립 운동을 하는 것이 왜 이상한가.'

질문이면서 대답을 듣는 순간 휴의는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수갑을 채운 조선인과 함께 군복을 입을 채로 도망쳤다. 그리고 이제는 상해 임정의 지령을 받고 조선총독부 습격에 나선 것이다.

휴의는 자신이 저 쪽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어도 이쪽에 있을 때만큼이나 어색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휴의는 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쪽은 갈 수 없는 길이 됐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기왕 독립군으로 싸우는 만큼 일공수조선특공대장을 하고 싶었다. 자신처럼 경험이 많고 실전에 능한 사람이 선두에 섰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그는 그럴려고 했다.

뒤로 빠지거나 안전을 위해 후방을 자원한 것은 아니었다. 임정 요인에게 자신이 선발이 되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을 세 명의 독립군 대장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파견한 임정의 수상은 도주하는 병력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겼다. 총독 저격은 다른 대장에게 몫이 돌아갔다. 휴의는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고집을 부렸으나 임정의 생각은 달랐다. 

그를 살려 두어야 한다. 더 큰 일에 써먹을 인재라고 여긴 탓이다. 그런 속마음을 휴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수성동 계곡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조금은 낯설었다. 그리고 불편했다.

이런 저런 잡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움직이고 뛰고 달리고 전진하고 후퇴하는 과정에서는 딱히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올 틈이 없다. 어쩌다 좁은 틈으로 들어오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고작 살아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 이후의 생각은 할 수 없다. 그런데 휴의는 그 이후에 매달려있다.  휴의는 병력을 더 아래로 이동시켰다. 족히 100미는 더 진격했다. 거기서는 전투의 현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조준 사격이 가능한 거리까지 온 것이다. 

무전기는 철수를 외치는 관저 침투조의 목소리를 요란하게 전달했다. 철수하는구나. 작전은 성공했을까. 총독은 총을 맞고 죽었을까, 아니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삼일 정도 치료하다가 죽을까.

휴의는 병력을 넓게 펼쳤다. 후퇴하는 동료들이 빠져 나갈 구멍을 열어 주고 추격하는 일본군을 제대로 타격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창의문 쪽에서 강한 폭발음이 울렸다. 

수류탄인가. 아니다. 그 보다 더 큰 무기다.  그 소리를 신호로 상황이 터진 후에 처음으로 제국의 군대는 창의문과 북악산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선이공수특공대와 교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립군 쪽이 우세했다. 적들이 집결하고 있을 때 선제 공격을 했다. 더구나 그 오른쪽에서 삼공수가 가세했다. 초반 전투는 조선특공대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적들은 일개 사단 병력이었다. 수십 명이 한 순간에 죽었어도 전체 병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곧 숨었고 숨은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저격하기가 어려웠다. 완전히 드러낸 것이 아니라 엄폐물을 삼고 몸의 일부만 슬쩍 보였기 때문이다.

적들은 그러면서 상황파악을 했다. 총독이 습격을 받았고 안에 있는 괴한의 무리가 퇴각했으며 그들을 엄호하는 병력이 철수하기 위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후퇴를 위한 일보전진.

적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차단선은 인왕산과 북악산 일대에서 경성 전역으로 퍼졌다. 조선 주둔 일본군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독립군에게 불길한 징조였다. 치고 빠지는 작전의 일부는 성공했으나 이제부터 독립군의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단 병력과 2개 소대 병력의 대결은 시간 문제였다. 휴의는 특공대가 자신들 쪽으로 급하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어두워 지고 있는 산그림자를 따라 서너명이 빠르게 자신들 쪽으로 합류했다.

특공대장과 부관 그리고 날 센 병사가 휴의 앞에서 숨을 헐떡 거렸다.

'동지들 수고했오.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산으로 숨어 들으시오. 그리고 가능하면 북한산 까지 단숨에 달려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는 각자 알아서 도피로를 확보하세요.'

휴의는 빠르게 이 말을 하고 나서 총독은 죽었느냐고 물었다. 특공대장은 삼층까지 잡입에 성공했으나 총독이 죽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요리사들, 양복입은 관리들을 포함해 8, 9명을 사살했으나 그 안에 총독이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을 남기고 선발대는 빠르게 뒤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비상 사이렌에 묻혔으나 분명히 적들의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과 함성. 이제 올 것이 왔다. 휴의는 자신들의 소대가 해야 할 일이 닥치자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면서 연발이 아닌 단발로 적을 조준했다. 아직 적은 떨어져 있어 연발을 할 만큼 다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적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시간은 적어도 20분 이상은 돼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도 빠져 나갈 수 있다. 일단 창의문과 북악산 부대는 그들 스스로 작전에 따라 행동했다. 이것은 애초의 계획이었고 그 계획은 변경되지 않았다. 휴의는 시계를 보았다.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시계가 오후 다섯 시 삼 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래 잘 됐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좌우에 있는 부관에게 수류탄을 던지라고 명령했다.

이쪽의 화력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면 급하게 달려오던 적들도 주춤할 것이고 후퇴조는 더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좌측에서 수류탄이 먼저 날았다. 던지기 선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멀리 던지는 왼쪽의 부관이 이번에도 제대로 던졌다.

날아가는 수류탄은 채공 시간이 길어 적들의 머리 위에서 터질 것이다. 삼초 간 날아간 수류탄의 거리는 무려 수십 미터에 달했다. 빠르고 낮고 정확한 솜씨는 이번에도 여지 없이 실행됐다.

펑 소리와 함께 수류탄의 잔해가  아래로 먼지처럼 떨어져 내렸고 파편을 맞은 적들이 쓰러졌다. 뒤따르는 적들은 앞선 동류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전진하던 발걸음을 멈춘채 그 자리에서 납작 엎드렸다.

오른쪽에 있던 부관이 가슴의 수류탄을 뽑아 던진 것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번의 수류탄도 낮고 빠르게 날아 엎드린 자들의 옆에 정확히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면서 터진 것이 아니고 한 번 튀긴후 폭발해 효과는 더 컸다.

휴의는 조준경 안에서 비틀거리는 적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지휘관인 듯 한 자가 수초 후에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손을 들어 공격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엎드려 있던 자들이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돌격하라는 외침이 들리고 총알이 빗발치듯 앞으로 쏟아졌다. 그들은 지향사격을 하면서 앞의 동료가 쓰러지면 뒤의 동료가 달리기 릴레이 선수들처럼 바톤을 이어받아 다시 앞으로 이동했다. 적들은 숫자가 많았다.

그러나 휴의의 군대는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당황하는 대신 침착을 유지하면서 하나씩 표적을 조준했다. 일발일발에 적들은 하나씩 쓰러졌다. 수류탄도 쉬지 않고 날았다.

일개 중대 병력의 적들은 거의 전멸했다. 그러자 뒤이어 오던 적의 대장은 무모한 공격이라고 생각했는지 잠깐 멈춘 다음 무전기로 중화기 지원을 요청했다. 무턱 대고 쫒기보다는 엄폐물을 제거한 후 진격하기로 작전을 바꿨다.

휴의는 10분을 마음속으로 세었다. 23분 후에는 기관총의 불꽃이 무자비하게 쏟아지고 박격포 등 먼거리에서 날아오는 폭탄 세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전에 전열을 정비하고 여기를 떠야 한다. 속으로 세던 숫자는 시계의 분침을 기억하고는 두 어칸 뒤에서 멈췄다.

왔던 길을 가로 질러 순식간에 인왕산을 넘어야 한다. 이것은 애초 계획이었다. 휴의와 부대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휴의는 순식간에 그 계획을 변경했다.

인왕산을 넘어 북한산 쪽으로 이동해 앞서 철수한 부대와 합류하지 않고 남산으로 이동해 산자락을 타고 신촌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해서 섞여 들어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휴의는 부하들에게 남산으로 집결할 것을 명령했다. 좌우의 부관은 빠르게 이동해 소대 전원이 바뀐 명령을 하달 받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 30초에 불과했다. 휴의는 바로 명령을 행동에 옮겼다.

적의 직사포가 등뒤에서 터지기 전에 날렵하게 방향을 바꿔 내려왔던 산으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산은 가파르고 길은 험해 병사들은 간혹 헛다리를 짚었으나 진군하는 속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소낙비보다 더 많은 땀이 흘러 내렸다. 온 몸은 젖었다. 젖은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산으로 타고 올랐다. 수성동 계곡에서 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 시간이면 적들이 포사격을 할 것이다. 그러나 휴의의 부대는 운이 좋았다.  그들은 꾸물댔다. 신속하지 못하고 느렸다. 포를 끌고 오고 기관총을 거치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 먹었다. 

휴의는 인왕상 정상 도착하는 병사들을 확인한 후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들이 막 하산을 시작했을 때 적의 포대는 산의 중턱을 향해 요란한 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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