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162. 영아 유기(1987)-해바라기와 메뚜기와 인류
상태바
162. 영아 유기(1987)-해바라기와 메뚜기와 인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7.18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약뉴스]

시대에 따라 달리 읽어야 하는 책이 있듯이 나이가 들면서 달리 보이는 꽃도 있다. 내게는 해바라기가 그런데 유독 해바라기만 보면 아니 떠올리기만 해도 이런저런 상념이 고개를 든다.

소싯적에는 배고픔보다는 과자나 사탕 대신 간식거리로 해바라기를 기다렸다. 노란 꽃이 지면 까만 씨앗이 수십 개의 눈알이 되어 ‘나를 먹어 주시오’ 하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기름기 가득한 것을 발라 손에 한 주먹씩 쥐고 보부도 당당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잘 익은 씨앗을 보면 호박씨처럼 얼른 달려가 까먹으려는 충동이 일어날까 두렵다.

좀 더 커서는 고흐의 해바라기가 눈에 밟혔다. 스스로 귀를 자를 만큼 좀먹은 그의 영혼을 파고들었던 해바라기는 예술가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강력한 통과의례로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나 홀로 일행과 떨어져 무더기로 피어난 해바라기를 보고 감탄했을 때의 기억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이 하필 4,3 사건의 현장과 아주 가까웠다. 감탄하면서 해바라기밭을 벗어났을 때 나는 제주의 깊은 상처와 다시 마주쳤다.

이제 해바라기 씨앗을 빼먹고 싶은 충동은 거의 사라졌다. 또 어떤 해바라기가 마음 깊은 곳을 찔러 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는 지금 해바라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른다.

집 베란다에도 해바라기가 방긋 웃고 있다. 크기는 작지만 줄기의 견고함과 둥그런 꽃과 만개한 노랑은 볕이 부족한 곳에서도 ‘나 해바라기요’ 하고 외치는 듯하다.

도심 속 공원에도 해바라기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것은 해를 정통으로 받아서인지 베란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마치 해와 경쟁이라고 하는 듯이 날개를 쫙 펼치면 과연 누구라도 예술가의 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념에 잠길 때 문득 모옌의 단편 <영아 유기>를 단숨에 읽어 버리고 말았다. 하필 그곳에 등장하는 꽃이 해바라기다. 첫 문장부터 해바라기는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인공이 앞으로 겪게 될 어떤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해바라기 가득한 들판에서 여자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내 심장에 끈끈한 검붉은 피가 가득 차올랐다.”

주인공 나는 집으로 가고 있다. 부모님과 처자식이 좋아할 설탕 한 포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술 한 상자를 손에 들고서. 그런 모습으로 시오리 시골길을 걸어가는 데 그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것이다.

세 그루의 버드나무 가지에 비뚤비뚤하게 쓴 ‘빨리 해바라기 들판으로 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나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모른 척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갈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나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로 선한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보답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태양이 작열하는 해바라기 꽃이 만발한 벌판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붉은 보자기에 쌓인 갓 태어난 여자아이가 거기서 울고 있었다.

모른 척하고 돌아 나온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 없었다. 그러나 그는 메고 있던 것과 들고 있던 것을 팽개치고 여자아이를 안고 집으로 왔다.

그는 환영받았을까. 애초 그런 기대가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보자기를 들어 올릴 때 처음 느꼈던 그런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는 물론 아내까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불같이 화를 내고 있다. 입만 열면 남동생을 달라고 외치던 딸애도 보자기를 확인하고 여자아이인 것을 알고 나서는 관심이 무뎌졌다.

저 살기도 팍팍한데 여자아이는 주인공 나에게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아이만 주워 오지 않았다면 배내똥을 치우는 대신 피곤한 몸을 누이고 낮잠 한숨 잘 수 있고 사내아이를 낳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아내와 재미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아들 타령을 하면서 성화를 부리는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주워온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돈을 들여 우유를 사다 먹이는 짓은 차마 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아이를 계속 키울 것인가. 아니면 어디 줄 것인가. 그도 아니면 주워온 그 자리에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로 갔다 놓을 것인가.

인간에 대해 인간종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고 있는 작가 모옌은 그러나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의 분투는 아직 남아 있다.

그는 향의 지도자 동지를 찾아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설명한다. ‘정부에서 어떻게든 해주시오.’ 향이, 정부가 이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독자들의 예상처럼 향은 찾아온 그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겨우 내놓는 대답은 ‘당신이 주웠으니 당신 거다’ 라는 것.

▲ 해바라기밭에 버려진 여자아이는 붉은 보자기에 쌓여 있었다. 모옌을 알기 전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 영화를 봤는데 원작이 모옌의 '붉은 수수'였다.
▲ 해바라기밭에 버려진 여자아이는 붉은 보자기에 쌓여 있었다. 모옌을 알기 전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 영화를 봤는데 원작이 모옌의 '붉은 수수'였다.

산부인과를 하는 고모를 떠올린 것은 순전히 아내의 닦달 때문이었다. 막 아기를 받아 지친 고모에게 조카는 주워온 아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아이가 필요해서 찾는 사람이 있으면 주시오.' 이 부탁을 흔쾌히 들어줄 수 있는 고모라면 이 정도에서 나의 고민은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고모는 한술 더 떠 ‘셋째야, 네가 여자아이 셋을 낳고 네 번째도 여자아이를 낳아서 아버지가 야반도주하고 부인도 아이 다 필요 없다고 울면서 도망간 저 아이를 데려가겠니? 보아하니 참한 규수가 될 것 같은데.

나 역시 그들의 부모처럼 그 즉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기력을 잃은 나는 우연히 길에서 동창을 만났다. 올해 32살로 혼자 사는 그는 아이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내가 데려다가 아이가 18살이 되는 50살에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듣고는 절망에 빠진다.

이제 내가 할수 있는 방법은 애를 키우는 것뿐인가. 물음으로 끝낸 것은 그게 가능할까라는 또다른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를 호적에 올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강력한 산아 정책을 펴는 중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사내아이라면 벌금이 천만 냥인들 기꺼이 낼 것이다. 집을 팔고 논밭을 저당 잡혀서라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계집애는 아무 쓸모 짝이 없다.

여자아이는 버리라고 주장하는 아내도 우리 아들 하나 낳자, 그것도 쌍둥이로 라는 말에는 흥에 겨워 얼굴이 활짝 펴진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 그곳에서는 그랬다.

: 모옌은 영아유기를 네 가지 유형으로 봤다. 첫 번째는 부양할 능력이 없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다.

이때는 오줌통에 익사시키거나 길거리에 내다 버린다. 이는 중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 모옌의 판단이다. 해방 이전이나 산아제한 조치 이전의 시기다.

일본에서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아이를 눈밭에 버린다. 그런가 하면 첫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뜨거운 물에 익사시켰다. 울음을 울기 전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선천적인 기형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는 아버지에 의해 산 너머에서 해가 뜨기 전에 생매장 당했다. 그런 다음 아이의 배에 벽돌을 얹어 다음 생에 환생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세 번째는 사생아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키워 줄 만한 집을 찾아 야밤에 몰래 아이를 그 집 대문 앞에 갖다준다. 약간의 돈과 함께. 사생아들은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의 아이이기 때문에 살아날 확률이 높다. 드물지만 아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

경제생활이 좋아지면서 해방 이후에는 영아 유기도 줄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생육 정책이 일부 부모를 야수로 만들었다. 남존여비 사상은 이를 부채질했다. 작품 속의 나도 내가 농민이었다면 이처럼 친딸을 버리는 아버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민공화국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1980년대라는 말에 경악할 것이다.

해방 이전도 아니고 설마 몇십 년 전에 영아유기라니 하면서 미개한 국가의 미개한 국민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나온 영화 <브로커>에 보면 우리들은 무려 21세기에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 해바라기밭이 ’베이비 박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작품을 읽고 나는 얼굴을 가릴 어떤 조치도 없이 뜨거운 거리로 나섰다. 쪽지의 계시와 해바라기를 다시 느끼기 위해서였다. 노벨상 작가 모옌이 말한 인성이란 얇은 종이 한 장만도 못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모옌식 표현을 빌리면 해바리기 밭에서 교배하는 메뚜기보다 인류 역시 그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고개를 숙인 무수한 해바라기 꽃판이 무수히 많은 아기들의 얼굴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거친 해바라기 잎이 사포처럼 내 팔을 긁었고 나는 조금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인류는 지금까지 진화해 왔지만 사실 짐승의 세계와 겨우 백지 한 장의 차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천 년 전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과연 다른가, 공원의 해바라기밭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철학자가 다 된 듯 이런 자문에 빠져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