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약뉴스] 붕괴되고 있는 분만 인프라를 지켜내기 위해 산부인과 분만사고 국가책임법이 발의되자 의료계가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최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신 의원은 ‘21일, 제20회 서울시의사의날 기념 심포지엄’에서 “의사가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불가항력적인 산부인과 사고에 대한 배상책임을 국가가 100% 책임지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법은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에 대하여 보상하도록 하여 분만사고의 경우에는 무과실보상제도를 두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의료사고 보상사업은 분만 과정에서 생긴 뇌성마비, 분만 과정에서의 산모 또는 신생아의 사망을 대상으로 실시되며, 여기에 드는 비용은 국가와 의료기관이 각각 7대 3 비율로 분담하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보건의료기관 개설자에 대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30%) 약 9억 3000만원 중 8억 8000만원을 징수했다.
이와 관련해 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해 과실이 없거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는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일방인 의료인에게 보상재원 중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민법’ 상 과실책임원칙에 반하고 의료기관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의료계에서는 ‘직전 연도에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의 개설자’에 한해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는 것은 분만의료기관의 분만 포기 현상과 산부인과 전공의 기피 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참고로, 분만을 중단한 산부인과 의원은 지난해 1097개소로 2016년 1061개소 대비 36개소가 증가했으며, 산부인과 전공의 확보율은 지난해 88.7%로 전체 평균 92.4% 대비 3.7%p 낮았으며, 중도포기율은 3.5%로 기초과목을 제외하고는 3.6%인 소아청소년과 다음으로 높았다.
이처럼 분만을 중단한 산부인과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자, 개원가에선 크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선 이대로면 10년 뒤 분만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우려가 이어졌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를 이끌 김재유 신임 회장과 박혜성 신임 수석부회장 모두 지난해 분만 진료를 포기했는데, 경기도 안성시에서 마지막까지 분만실을 지킨 김 신임 회장도, 25년간 분만실을 이끈 박 부회장도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처럼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 해당 법안을 발의한 신현영 의원은 “최근 고위험 산모 증가에 따른 의료사고 발생이 확대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분만 의료기관 감소 및 산부인과 전공의 감소는 분만의료기관 인프라 확충과 안정적인 분만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 정책에 역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재원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게 하되 하게 함으로써 분만 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임신 및 출산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보상재원을 100% 정부가 부담 ▲환자 등이 다른 법률에 따라 손해 배상 또는 보상을 받은 경우에는 해당 금액의 범위 안에서 보상책임을 면제 등이 포함됐다.
신현영 의원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에선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해당 법안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일본의 경우, 뇌성마비의 경우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지고, 대만은 신생아, 산모 모두 책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조속히 추진해야 하는 법안”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분만 인프라가 전부 파괴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사고에 대한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본인 잘못이 없다는 말임에도, 이를 의사가 부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난 국회에서 윤일규 전 의원이 발의했었고, 이번 국회에선 이정문 의원에 이어 신현영 의원도 발의했다”며 “늦었지만 하루 빨리 개정돼야 분만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다. 꼭 필요한 법이고, 이후 의료사고 특례법까지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유 회장도 “숙원 사업이기 때문에 취지에는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아쉬운 점이 배상액수에 대해선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이 법의 취지가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서 의사와 환자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함인데, 국가에서 배상하는 금액보다 소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금액이 더 많으면 소송을 선택할 것이고, 법안의 실효성은 상실할 것”이라며 “의사와 환자 간의 소송을 피하고,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법안인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든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홍보이사겸대변인도 “굉장히 필요한 법안이다. 의사가 고의로 과실을 저지르거나 목적성을 가졌다면 당연히 처벌해야겠지만, 대부분의 의료에선 100%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는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사고까지도 의사에게 책임을 지게 하면, 필수의료는 전부 무너져 내릴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보호하고, 의사와 환자에게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