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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그는 하던 일을 방해받자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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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던 일을 방해받자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3.08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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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눈물이 찔끔 흘렀다. 눈물이라는 것은 끝이 없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군인들처럼 없어졌다 생겼났다를 무한 반복했다. 날카로운 바늘로 꾹 찔러 버리고 싶었다.

흘릴 눈물도 앞을 볼 일도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점례는 죽을 수는 있어도 그럴 용기는 없었다. 늘어진 보따리 줄이 흔드렸다.

그것은 담을 타고 오르는 커다란 한 마리의 검은 구렁이였다. 그것은 초소 안에 걸린 사나운 눈초리였다. 장교는 권총을 분해하다 말고 점례를 보았다.

초병이 점례를 뒤에서 앞으로 밀었다. 순간 탄피 묻은 군복에서 침략자의 음산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방해받았다는 듯이 시큰둥했다.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분해된 총을 다시 결합하기 시작했다. 못마땅하다는 그림자가 얼굴에 가득했다.

철꺽하는 노리쇠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조립의 마지막 작업이 끝나자 장교는총을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순간 점례는 자신도 저 총처럼 분해됐다가 다시 조립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소망이 이뤄지면 다음은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점례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위로 들었다.

장교는 입가를 실룩거렸으나 사병과는 달리 행동에서 어떤 위엄을 느끼고 싶어했다. 상처 입은 새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복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편안하다고 위협하는 행동이었으나 점례는 그런 사소한 태도에도 위안을 받았다.

네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회를 준다는 여유가 그에게 있었다. 그에게는 퇴각하며 쫓기는 자의 초조함은 없었다. 제발로 찾아왔으니 시혜를 베푸는 것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가진자의 태도였다.

그가 일어서더니 점례에게 다가왔다. 점례가 멈칫하자 그는 장교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사병에게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했다. 그는 더 중요한 일 때문에 바빠 죽겠지만 너를 위한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손을 입에 갖다 댔다.

그러면서 손을 떼고는 친근해 지려는 듯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인자함은 드러내고 욕망은 감추려는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장교는 마지막에 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허겁지겁 서둘렀다. 뒷발에 힘을 주고 수사슴처럼 솟은 뿔을 들이밀었다. 초소 벽이 흔들렸다.

그 순간 액자 속의 인물이 너는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점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초병이 들어왔다. 이미 원했던 것을 끝낸 장교는 가지고 가라는 듯이 나가 있으라고 할 때처럼 말 대신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 사병은 점례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추위에 떠는 그녀에게 따뜻한 손을 내주었다. 그가 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을 점례는 알았다. 그것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 점례는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사병은 떠나갔고 점례는 다시 홀로 남았다. 구렁이처럼 기둥에 매달려 흔들리는 줄이 다시 점례의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순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마무리 짓고 싶었다.

지금의 점례가 석 달 전의 점례를 떠올리는 것은 매우 낯설었다. 운 좋게 이곳을 떠난다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까. 현실 세계로 들어선 점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례는 그러면서 이제는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고향 땅을 그렸다.

안정감, 명랑함, 어떤 기대 같은 것에 둘러싸여 남이 모르던 행복했던 순간들.

돈을 벌어 오겠다는 우쭐함으로 한때 들떴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 성숙해 져서, 어른이 돼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은 없었다. 모든 것이 하찮았고 부질없었다. 열여섯 점례는 엮은 줄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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