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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전쟁과 사랑과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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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전쟁과 사랑과 신념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1.2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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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개혁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혁명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낭만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불의에 저항하고 신념에 목숨을 거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로버트 조던이 활약했던 스페인 내전 당시는 한 예가 되겠다.

작품 속에서 영국사람으로 불리나 실제로는 미국인인 조던은 자신의 확신에 따라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젊음의 특권을 행사하고 있다.

자기 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에 와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그가 스페인어 강사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절대 설명 불가다.

어떤 대의가 편안한 생활을 마다하고 산속 게릴라로 이끌었는지는 직접 독서를 통해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선을 앞세운 주인공이 게릴라이니만큼 그 반대편은 악으로 묘사되는 것이 맞다. ( 실제 역사에서 그런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다이너마이트 전문가인 조던은 국제 여단의 파견 병사로 적의 요충지인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띠고 산속으로 잠입했다.

그곳에는 대장 파블로를 비롯해 파미르, 안셀모, 마리아 등이 미리 진을 치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

다리를 폭파하기까지 72의 시간 동안 동굴을 중심으로 조던과 그 일당 그리고 파시스트로 대변되는 상대의 움직임이 그야말로 영화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피가 튀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도 꽃은 피고 잎은 지고 사랑은 움튼다. 조던과 마리아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 다이너마이트 전문가 로버트 조던은 다리 폭파의 특명을 받고 게릴라들이 숨어 있는 산 속 깊은 곳에 은신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 다이너마이트 전문가 로버트 조던은 다리 폭파의 특명을 받고 게릴라들이 숨어 있는 산 속 깊은 곳에 은신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동굴 속에는 굶주린 사내들이 득실득실 넘쳐나나 그녀는 온전히 자신을 지켜냈다. 마치 조던의 출현을 기대했던 것처럼 그녀는 지켜낸 그것은 몽땅 조던에게 던지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조던도 그것이 싫기는 커녕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급성, 동굴이라는 좁은 공간은 두 사람이 그러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전쟁통의 사랑은 흔한 신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거기다 시한부 인생처럼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고 두 사람은 두서너 번의 짧은 정사를 통해 신파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절박하고 절실하고 과감한 사랑도 있겠지만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에 견줄 수 없다.

사랑은 죽음처럼, 죽음은 사랑처럼 두 사람은 그렇게 춥고 눈 내리는 산속 침낭에서 사랑을 나눈다.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서 잠깐 혁명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혁명은 낭만 아닌가. 낭만과 사랑 없는 혁명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72년을 같이 살아도 72시간의 사랑보다 형편 없는 경우도 있을 터.)

그 와중에도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대원들은 죽고 파블로는 변심했다 돌아오고 조던의 손목시계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 흐르고 그만큼 죽음의 시간도 째깍째깍 다가오는데.

상하로 나눠진 묵직한 두 권은 다른 이야기도( 내전의 참상은 어느 전쟁보다도 잔인하다. 어제까지 알고 지내던 이웃을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하는 장면은 참혹하다.) 등장하나 전쟁과 사랑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시종일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달려간다.

조던은 다리 폭파에 성공한다. 임무를 마친 것이다. 그러나 큰 부상으로 죽을 운명이다. 마리아는 살아남은 일당과 함께 조던을 남겨 두고 떠난다.

부상의 고통으로 어차피 죽을 목숨,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조던은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틴다. 추격하는 적을 공격해 마리아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 쯤되면 두 사람의 사랑은 전쟁이나 동굴이 아닌 평화 시 마드리드나 세고비아, 혹은 톨레도에서 그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생각해 본다.

연인의 헤어짐과 죽음처럼 고통에 찬 것은 없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조던의 최후는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 먼 이국땅 깊은 산속에서 조던은 총을 손에 쥔 채 생의 마침표를 찍고 있다.

그는 젊고 그의 피는 정의와 신념에 충실했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앞서 정의나 신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고도 했고 그럴 필요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라고 내뱉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강철같은 신념이 잘 보이지 않고 보인다고 해도 조던이 목숨을 바칠만한 동기로는 부족하지 않느냐, 하는 의구심이 인다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정말로 그렇다고 백번 수긍한다.

게릴라가 갖춰야 할 뚜렷한 정치의식이나 확고한 철학, 변할 수 없는 시대의 사명감 같은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왜? 라는 질문을 해보면 그에 대한 답으로 파시스트는 나쁘고 공화국이 좋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말로 정의될까. 그 정의에 젊음은 마땅히 희생될만한 가치가 있을까. 지금 급격한 보수화로 흐르는 젊은 세대에게 이 질문은 질문으로 가치가 있을까.)

어쨌든 주인공이 이런 상태이니 그녀의 상대역인 마리아 역시 혁명의 전선에 뛰어든 전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가련한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껏 한다는 것이 밥 짓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정도다.( 물론 그것이 아주 하찮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산속 생활을 하는 데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하다. 물론 파시스트에게 가족이 죽고 자신이 윤간당한 개인적 아픔이 있다 해도.)

어쨌든 헤밍웨이는 이 작품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노인과 바다>로 미국 문학은 물론 세계 문학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사족: 헤밍웨이는 네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을 했다. 다섯 번 결혼과 이혼도 가능했으나 마지막 부인이 순종적이고 참을성 있기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마리아라는 인물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으로 나왔다. 남자 주연은 몰라도 여주인공은 상상 속의 마리아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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