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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소낙비(1935)- 식민 시대의 가련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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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소낙비(1935)- 식민 시대의 가련한 풍경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1.11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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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화목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좀 공평하지 않은가.

그러나 춘호는 그럴 마음이 없다. 아내에게 막말을 하고 주먹질을 예사로 한다.

이제 겨우 19살인 춘호 처는 그저 타고난 팔자려니 하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얻어터지면서 살고 있다.

딱히 무슨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놀고 먹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산으로 올라가 가시에 찔리면서 약초를 종일 캔다. 그것으로 보리쌀을 바꿔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대도 칭찬은 커녕 맞고 사니 춘호 처의 신세가 딱하기 그지 없다.

이제는 돈까지 구해오라고 난리다. 생각해 보라. 돈은 아내가 아닌 남편인 춘호가 줘야 옳지 않은가.

닦달한다고 처에게서 나올 것이 아니다. 이제보니 못난 사내 많고 많지만 춘호는 내가 제일 못난 가짜 사나이라고 인증을 하고 있다.

딱하다. 아무리 소설 속이라고 해도 이런 춘호를 보면 가던 발 길 돌려서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정신차려, 이 놈아 어린 색시 고생시키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러나 춘호라고 할 말이 없겠는가.

춘호는 돈 이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원만 있으면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날 수 있다. 고향도 아니고 살기 위해 굴러들어온 촌구석이니 미련 같은 것도 없다.

그런데 그 큰돈 이원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장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나올 구멍이 없는데 춘호는 막무가내로 돈을 해내라고 오늘도 발길질이다. 눈을 흡 뜨고 지게막대기를 잡아 들고 달려든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 이년아, 기집 좋다는 게 뭐여. 남편의 근심도 덜어 주아야지, 끼고 자자는 기집이여?”

참 해도 해도 춘호는 너무 한다. 읽는 독자가 다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그런데 다음 장을 읽고 나면 춘호가 그렇게 처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어떤 꿍꿍이속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춘호는 이 주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

▲ 김유정은 가난 때문에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식민 사회의 서글픈 현실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 김유정은 가난 때문에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식민 사회의 서글픈 현실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아무리 가난한 동네라도 지주는 있기 마련이다. 김유정의 <소낙비>에서 지주는 바로 그 이주사가 되겠다. 그는 돈 많은 사내가 그렇듯이 쇠돌엄마를 첩으로 두고 두 집 살림을 넉넉하게 꾸려간다.

좁은 마을에 소문은 퍼져 춘호 처도 그 내막을 알고 있다.

쇠돌 엄마는 이 주사의 첩이 된 후 그야말로 치맛바람에 팔자가 펴졌다. 밥걱정 안 하고 얼굴에 분도 바르고 좋은 옷도 입었다.

내심 춘호 처는 그것이 부러웠다. 어쩌다 하늘이 도와 동리의 부자 양반 이 주사와 은근히 배가 맞았는지 부럽기 그지없다.

쇠돌 아버지 역시 그 짓거리를 알고 있으나 모른 척 하면서 주는 떡이나 받아먹고 으스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춘호 처는 남편이 내치지 않아도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남편이 등 떠미니 이때다 싶어 이 주사에게 몸줄 기회만 노린다.

더구나 춘호가 없는 날, 달이 뚫어지게 밝은 어느 밤에 난데없이 황소 같은 놈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으나 자신을 덮친 적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이 주사라면 그렇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1935년이라고 해도 벌건 대낮에 무턱대고 날 잡아가세요, 하고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춘호 처는 쇠돌네를 염탐하고 있다.

어느 날 쇠돌네가 출타하고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집 근처를 배회한다.

“새댁, 나는 속옷이 세 개구, 버섯이 네 벌이구 행.” 하고 자랑하는 쇠돌엄마처럼 춘호 처는 그런 복이 자신에게도 돌아오지 못할 법이 없다고 입술을 굳게 깨문다.

그때 마침 소낙비가 온다.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쏟아질 듯하다.( 이것은 첫 문장에 나오는 것으로 제목에 어울리는 묘사다.)

몸은 흠뻑 젖었다. 하필 피한 곳이 밤나무 아래다. (밤꽃은 흐드러지게 피었을까, 졌을까.)

춘호 처는 몸이 달았다. 동리에서는 얼굴이 반반하다고 소문이 났고 몸도 호리호리하니 쇠돌 엄마에 비해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 누구는 호강을 하는데 자신은 거지꼴을 하고 있다.

좀만 잘했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오자 춘호 처는 용기를 내서 뻔히 없는 것을 알면서도 쇠돌 엄마를 부른다. 무슨 긴한 용모가 있는 것처럼. (춘호 처는 이 주사가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밤나무 아래서 보았다. 쇠돌네는 없고 이 주사만 있는 상황이다.)

이 주사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쇠돌 엄마는 없지만 곧 온댔으니 안방에 들어가서 기다려라. 춘호 처는 내심 기다리던 솔깃한 제의인지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춘호 처는 한 시간 후 생긋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기리라 다짐하면서.

남편에게 부쳐 먹은 농토도 주고 돈 이원도 줄테니 첩 노릇 하라는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흠뻑 젖어 온 아내를 보고 춘호는 대뜸 매질을 하려고 손을 높이 들었다.

그때 춘호 처는 이렇게 한마디 한다.

“낼 돼유, 돈 낼 돼유.”

그날 밤 부부는 모처럼 살갑게 살을 맞대고 돈 이원이 가져올 서울의 화려한 거리와 미래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

다음날 춘호는 일찍 일어났다. 혹시 일이 틀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 처의 머리를 곱게 빗질하고 밥사발 물로 기름처럼 번지르하게 발라 놓는다.

그리고 맵시 있게 쪽을 딱 찔러 준다.

거기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은 짚신을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까지 내준다.

“인제 가봐.” 춘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은근하다.

: 그 놈의 가난이 원수다. 강원도 인제에서 빚쟁이에 쫓겨 야밤 도주한 춘호에게 돈 이원은 지긋지긋한 산골을 벗어나 서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이원을 ‘씨드 머니’ 삼아 놀음판을 싹쓸이하면 안 될 것도 없다. 춘호를 미워하고 원망해야 싸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놈의 가난을 들먹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춘호 처가 자발적으로 그러겠는가. 그에게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잣대를 들이밀려는 사람이 있다면 먹고 나서야 도덕이라고 동서고금에서 떠들어 댔던 말을 상기하기 바란다.

적극적으로 몸을 팔면서도 내적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춘호 처는 물론이거니와 춘호 역시 사내의 불타는 질투심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오늘 날의 잣대를 들이밀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시절의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요즘 세상과 비교해 보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일제 식민 시대의 가련한 풍경이려니 하고 혀를 차면 그뿐이다. 이것은 결코 해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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