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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10-26 06:02 (화)
흠칫 놀랐으나 정태는 갈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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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칫 놀랐으나 정태는 갈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14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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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그가 늘 거슬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그의 거드름과 위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치켜뜨는 눈을 대하면 그만 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눈은 빛났으나 총기라기보다는 살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나는 저런 눈을 알지.’

정태는 이웃 마을 성골에 사는 피갈수에게서 반장과 똑같은 눈을 보았다. 그는 월남전 용사였다. 그가 어느 날 사라졌을 때 동네에서는 부산에서 배를 탔다는 소문이 돌았다.

십 삼 개월이 지나서 그 집은 경사가 났다. 아들이 돈을 부쳐왔는데 논 한 다랑이나 살 만큼 큰돈이었다. 갈수네가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제대 무렵 피씨 집은 논 7곱 마지기를 갈수 이름으로 등기를 냈다.

갈수는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 영웅은 온전한 몸이 아니었다.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지팡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그것을 끼고는 힘겹게 황토배기를 넘을 때 얘들은 그 모습을 흉내 내면서 놀았다.

한 번은 거리를 두지 못하고 까불던 아이 하나가 갈수가 던진 목발에 맞아 머리가 깨진 일도 있었다. 그때 갈수는 깨진 아이를 잡고서는 주먹질을 했다.

‘한 번 만 병신이라고 놀리면 죽일 거야.’

그는 한 손으로 아이의 멱을 잡고 들어 올렸다. 발버둥 치는 것을 한 참 동안 들고 있었다. 갈수가 땅에 던졌을 때 아이는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갈수가 다가가 목발로 가슴팍을 위에서 아래로 몇 번 꾹꾹 찍어 누르자 그때서야 아이는 호흡이 돌아왔는데 캑깩 거렸다. 그리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면서 집으로 갔다.

아이가 죽다 살아왔으나 그 집에서 갈수에게 항의하지 못했다. 깨진 이마의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비 얘기는 말로 붙이지 못했다.

갈수의 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갈수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갈수는 말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80명 이상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읍내서 정태는 갈수와 딱 마주쳤다.

‘자네 고생했다며, 수고했어.’

그때 정태는 갈수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서 불이 났다. 인광은 짐승의 것이었다. 벌건 대낮이었는데도 정태는 갈수의 눈이 섬광처럼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흠칫 놀랐으나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다. 마주친 곳이 하필 호떡 가게 앞이어서 정태는 가게 한쪽에 앉았다. 호떡을 먹으며 갈수는 말했다.

‘내 눈을 똑바로 본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요.’

그는 입에 묻은 검은 설탕물을 손으로 쓱 훔쳤다.

‘다들 시선을 피하지, 내 눈이 무섭지요.’

질문인지 맺음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갈수는 정태에게 호떡을 사줘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네가 내 시선을 정면에서 받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듯이 정태와 눈을 마주쳤다.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는 시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빛은 아까보다 더 셋고 금방이라도 얼굴에서 눈알이 튀어나와 정태의 뺨을 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싶어 약속이 있다고 일어섰다.

‘아저씨, 다음에 내 월남 이야기해 주지요.’

더 이야기 하고 싶어 잡는 듯한 목소리가 등뒤로 들렸다. 그 소리는 가는 발길을 새끼줄로 감아채는 듯해 정태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몸을 똑바로 했다.

갈수의 눈과 반장의 눈은 닮았다. 아니 똑같았다. 정태는 갈수와 헤어지면서 반장에서 보았던 그 살기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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