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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2 15:58 (일)
면장 정도는 시시해서 줘도 거절했다는 일화가 파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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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정도는 시시해서 줘도 거절했다는 일화가 파다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8.13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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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가 늘 술에 절어 술타령만 하는 것은 돈 때문이었다.

대개는 돈이 없어 문제였으나 병태는 돈이 많아 문제였다. 그는 돈 많은 부친을 둔 까닭에 왜정 때 경성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았다.

대단한 인물이었다. 면에서 한 명 날까 말까 할 정도의 혜택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혜택을 다른 데 썼다. 배운 것은 학문이 아니라 술이었다.

물론 다른 나쁜 것도 있을 것인데 그것은 잘 드러나지 않았으니 어린 성일은 알 길이 없었다. 술은 소문이 파다해 술꾼하면 병태였다.

그는 일 대신 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면장 정도는 시시해서 줘도 거절했다는 일화는 이웃동네까지 파다하게 퍼졌다. 가만 있어도 되는데 굳이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병태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돈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한 달 두 달이 아니고 일 년을 십 년 이상 되풀이 하자 병태의 세간은 기울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젖어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흠뻑 젖어 물이 줄줄 옷 새로 떨어져 내렸다. 언젠가부터 그는 외상술을 먹기 시작했다.

현금을 내놓고 으레 주막을 호령하던 그였으나 이제는 외상을 달고 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술잔이 들어가면 이제는 고릿적 이야기가 된 전답을 팔아서 내일 당장 갚아 준다는 말을 여전히 떠벌였다. 눈치를 보면서 주문하던 것과는 딴판의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주모는 물론 인심마저 그를 등졌고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술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이 됐다. 그런 병태를 사람들은 무서워서 피하기보다는 더러워서 멀리하는 개똥 취급을 했다.

겉에서는 웃는 낯이나 돌아서면 사람 구실 못하는 자라로 혀를 찼다. 정태는 그런 병태가 안쓰러웠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조금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지켜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사라졌다. 그가 얼마 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술병에 걸려 삼 일 만에 깨어났을 때였다.

그는 기다시피 마을을 돌아다니다 정태를 만나자 대부님 대부님, 하고 소리질렀다. 웃는 얼굴은 잿빛이었고 혀는 꼬부라져 있었다.

대부님은 착해, 효자야, 효자.

그가 처음으로 대면 칭찬을 했다. 이 사람 무슨 소리야. 자네야 말로 마음씨가 곱지, 나야 먹고살려니 그러지 못해.

그렇게 받고 나서 병태를 보자 정태는 그가 곧 세상을 뜰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그러나 병태는 그런 예상을 깨고 두 어 달 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자의 명줄이 길다고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살아난 그는 정신을 차리기보다는 예전의 버릇으로 다시 돌아갔다. 제버릇 개주지 못한 것이다.

과거처럼 큰소리치면서 술독에 빠져 지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그에게 술 한잔 사주는 것이 잘못될 게 뭐 있나, 싶은 생각을 정태는 그 무렵부터 하기 시작했다. 

한마을에 살면서 남도 아니고 조카뻘인 그에게 죽기 전에 좋아하는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빨리 먹고 죽으라고 악담의 마음을 품는 것과는 다른 것이 정태의 마음을 아프게 지나갔다.

오늘 술자리는 이런 가운데서 나온 것이고 그래서 정태는 마음의 빚을 갚았다는 생각으로 말고개를 걸어 올라갔다.

고개는 길었으나 이거만 넘으면 림송에 도착하고 거기서 3킬로만 더 가면 된다. 넉넉잡아 40분 후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외양간의 소가 더 간절하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면서 쇠죽을 끓여주고 나서 닷 마지기 논으로 달려 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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