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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2-05 16:34 (월)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성일은 몸을 흠칫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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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성일은 몸을 흠칫 떨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6.10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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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선산까지 가는데 거의 세 시간 가량 걸렸다. 쉬엄 쉬엄 걸어도 30분이면 될 거리였다. 그러나 상주들은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먼 친척들이 이 사람들아 이 정도면 되지 않나, 하고 핀잔을 주었다. 점심 전까지는 가야 하는데 너무 충그리고 있었다.

그러면 꾼들은 마지못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가기는 가지만 조금 가다 멈추겠다는 심보였다. 참으로 느린 걸음이었다.

상여가 무겁기도 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돈때문이라기보다는 그래야만 망자의 영혼이 편안한 안식을 한다고 믿었다.

천천히 평생을 살았던 마을을 기억하라는 의미였다. 정들었던 것들과의 영원한 작별을 하는데 서둘러서는 저승길이 편할리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상여꾼들은 그런 심정이었다.

미련을 떨쳐내야 했다. 미진한 것을 다 버리라고 그러해야 한다고 그들은 말이 아닌 느린 걸음으로 풀어주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마감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촉하는 것이나 빨리 일처리 하고 쉬고 싶다는 마음에 걸음을 서두르는 것 역시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을 때로는 애달프게 때로는 흥에 겨운 듯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어찌보면 그네 타는 놀이 같기도 했다. 10여개의 만장은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닮아 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이 정오를 향해 가까이 왔다.

그런데도 상여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갔다가 다시 멈추고 멈췄다가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상여가 뒤로 밀릴수록 곡을 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길고도 애잔하면서 가슴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소리였다. 간장이 조각 조각 잘리는 느낌이었다. 성일도 뒤를 따라가면서 그런 곡을 흉내 내려고 했으나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죽음을 손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한겨울에도 홍시가 주렁주렁 열리게 했던 할머니의 말솜씨는 더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함에도 성일은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담배피는 이야기는 엄마가 대신해 줄 것이다. 자신의 이런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성일은 몸을 흠칫 떨었다.

누군가 버릇없는 놈이라는 욕을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였으나 여전히 눈가는 메말라 있었다.

원래 성일에게 눈물이 귀한 것은 아니었다. 되레 그 반대였다. 그는 툭하면 울었고 울면 만사가 해결됐다. 용순은 성일을 끔찍이 챙겼다.

막내아들이기도 했지만 생김새나 성격이 자신을 꼭 빼닮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것이긴 하지만 크면 무언가 집안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용순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앞서 있었다. 딸이 아니고 아들인 것도 용순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것을 아는 성일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짰고 그때마다 어린 아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별명이 울보인 것은 너무 당연했다.

울보 자식, 정태는 그런 성일을 못마땅했으나 크면 자연히 없어지리라 여겨 내버려 두었다. 그런 울보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다.

누가 너는 왜 안 우니? 하고 묻지 않았지만 성일은 누가 묻는다해도 울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죽음은 성일에게 어떤 위협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옛날이야기를 더 해 줄 수 없고 눈이 멀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할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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