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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큰 아들 집에서 밥한끼 드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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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큰 아들 집에서 밥한끼 드시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5.12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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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을 산 날 정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기뻐서 자다 깨면 오밤중에라도 논으로 가서 한 바퀴 돌아보고 왔다. 용순도 잠을 자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3살에 바닷길로 20리 나 떨어진 소황에서 시집을 왔다.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판단을 내린 용순 오빠가 선을 보고 나서 가도 된다고 해서 왔다.

선택권은 용순에게 없었다. 친정아버지가 일찍 사망해 오빠가 아빠 노릇을 했다.

선을 보는 날 오빠는 정태네 살림살이보다는 정태의 생김새를 관찰했다. 없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생긴 골격이나 성격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오빠는 알고 있었다.

첫 눈에 정태는 근사한 신랑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선한 눈과 모나지 않은 얼굴에는 기품이 서려 있었다.

무엇보다 몸에서 나쁜 기운이 풍기지 않았다. 오빠는 직감적으로 이 정도 인물이면 동생을 시집보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고 판단했다.

말을 시켜보니 허파에 바람이 든 허풍선이도 아니었고 소학교를 다 마치지 않았으나 체면이라는 것도 알 만큼 사람 됨됨이가 중간 이상이었다.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던 용순은 오빠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는 정태가 싫지는 않았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사치품으로 돈을 모으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용순은 알았다.

술 먹고 주정 피우는 사람은 질색이었고 담배 연기 역시 싫어했으므로 용순은 시간이 갈수록 정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했다.

혼삿날이 정해지자 용순은 가서 무엇을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밥하고 빨래하는 것은 알았지만 농사일은 서툴렀다.

배우면 될 것이다. 가마 속에서 용순은 물 빠진 모래사장을 건널때 이런 생각을 했다.

시아버지는 정태가 13살 때 죽었다. 시어머니의 고생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어린 나이에 5남 1녀를 키웠다.

둘째가 정태였다. 큰아들은 용순이 시집오기 직전에 따로 집을 지어 나갔다. 어머니는 둘째 정태 차지였다. 용순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큰아들이라고 비록 네 마지기였으나 논도 주고 자투리 밭도 가져갔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코앞에 큰아들 집을 두고도 그곳에서 밥 한 끼 드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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