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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일- 어제와 같은 오늘, 어제와 다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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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일- 어제와 같은 오늘, 어제와 다른 오늘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4.08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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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가방을 든 학생들이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입은 옷이나 걷는 모습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다.

출근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평상시와 같았다. 검정색 옷에 흰 와이셔츠. 단정한 차림의 그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오늘은 분명 달라져야 했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니. 검은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가만히 있지 않고 제 할 일을 찾아 움직이는 어른들.

천성일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침 라디오 뉴스를 듣고 나서였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아나운서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울먹이는 듯한 소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집중이 됐다. 그가 죽었다. 갑자기 그의 삶이 멈췄다. 정지된 삶은 어제 저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작은 트렌지스터 라디오가 들썩거렸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나중에는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같은 말을 계속했고 번복하지 않았다. 학교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비상 통신망을 통해 오늘은 등교 없음이라는 통지가 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낌새는 없었다.

거리에 선 성일은 어떤 움직임을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가 다가와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

생전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그가 죽었어, 그러니 학교 가지 않아도 돼, 하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골목을 몇 개 돌아 대로변까지 올 동안 허사였다.

성일은 버스를 기다리며 자기처럼 버스를 향해 목을 늘어뜨린 많은 어른과 학생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이른 아침 운구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했다.

성일이 등교하는 길목에는 제법 큰 병원이 있었다. 사이렌 소리는 죽은 자의 장송곡이었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번 죽음은 허다한 그런 죽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듯이 죽음의 순간에도 그랬다.

그의 죽음은 사이렌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 하루 정도는 모든 일상을 멈추고 그를 위해 조의를 해야 마땅했다. 아니 삼일, 적어도 열흘은 그래야 했다.

비통한 음성으로 아나운서는 했던 소리를 또 하고 또 하면서 그러라고 깃발을 들었다. 다른 방송국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는 울다 못해 흐느꼈다. 자연히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떨렸다. 보지 않아도 슬픈 몰골을 하고 죽음을 말하는 뉴스에 사람들은 귀를 갖다 댔다.

다르지 않다고 한 것은 오산이었다. 분명히 어제와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분위기는 더욱 심해졌다. 거리는 음산했고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이라도 된 듯한 몸을 사렸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는 금세 세상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아니 두렵고 공포스러웠다. 옆구리를 날카로운 창에 찔린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행여 그런 인상을 다른 사람이 볼까 봐 구석으로 걷는 사람이 늘었다. 그러다가 무엇에 걸려 넘어지고는 이마에 피를 흘리기도 했다. 흘리는 피를 손으로 닦는 사람들은 급하게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정상이라고 했다. 아직 그런 상태가 아닌 사람이 있다면 그러라고 자꾸 성화를 부렸다. 윽박지르고 등을 떠밀었다.

시월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나 거리는 죽은 자를 애통해하는 공기로 우울했다. 누가 뉴스의 말을 거역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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