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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변신 이야기(서기 2년)-신과 영웅과 역사적 인물의 변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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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변신 이야기(서기 2년)-신과 영웅과 역사적 인물의 변신술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2.22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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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드물다는 것을 알게된다. 미술작품을 봐도 마찬가지다.

어떤 위대한 사상가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다.

숱한 신화들이 명멸했지만 지금까지 살아 남아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것이 오늘 소개할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되겠다.

오비디우스는 기원전 43년에 태어나 서기 17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크게 활약했다. 처음에는 관직에 나갔으나 문학에 빠져들었다.

이후 <사랑의 기술> 등 숱한 고전을 써냈으며 그 중 <변신 이야기>는 그의 대표작이면서 모든 고전의 가장 앞자리에 설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을 펴는 순간 놀라움의 연속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궁금증을 가질 만한 바다도 없고 땅도 없던 시절 최초의 인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흙인지 물인지부터 시작하는데 한 번 빠져 들면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전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대서사시를 단숨에 읽어낼 수밖에 없다.

신들의 시기와 질투에 혀를 내두르다가 신에 버금가거나 겨우 조금 부족한 영웅의 이야기에 접어들면 온몸에 돋는 소름으로 과연 결과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 지 사건을 푸는 탐정의 심정이 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한 번쯤 접했을 법한 역사적 인물들을 만난다. 그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따라가다 보면 한숨을 쉬다가 만세를 부르다가 호흡을 멈추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울고 웃기고 한마디로 사람의 감정을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크게 패대기친다. 넘어졌는데도 아프지 않은 것은 비수가 들어와도 막아낼 아이아스의 일곱 겹의 소가죽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도하고 있으면 큰 코 다친다. 어느 틈에 바다의 신이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신들의 제왕이 번개를 내려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질투에 눈이 먼 여신은 다른 사람의 사랑에 끼어들어 초를 치는데 그렇게 밉상일수가 없다. 생각 같아서는 고약한 심보의 그녀에게 불화살을 날리고 싶지만 인간은 그럴 힘이 없어 참을 수밖에 없다.

낙심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 불쑥불쑥 나타나 새로운 용기를 준다. 그래서 반갑게 다가가면 거대한 늪이 기다리고 있다.

나오려고 하면 더 깊이 들어가서는 몸의 절반이 잠기고야 만다. 사방에서 일진광풍이 불어 진흙을 모두 걷어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기독교가 서양을 장악하기 전, 그러니까 성경이 그곳을 물들이기 전에 이미 이 책은 서양인들의 정신과 육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서는 세계로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오비디우스의 정신세계에 갇히고 만다.

▲ 이 책을 읽고 무인도 가져갈 단 하나의 책을 바꿔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짐승을 먹지 말라는 대목을 확인하고 나서다.
▲ 이 책을 읽고 무인도 가져갈 단 하나의 책을 바꿔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짐승을 먹지 말라는 대목을 확인하고 나서다.

베르길리우스나 호라티우스 같은 선배 시인이 죽고 없던 자리는 완전히 그의 세상이 됐고 그의 세상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그가 죽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를 거쳐 이천 년간 후세 문학의 지배자 역할을 놓지 않고 있다.

내용도 그렇지만 특히 주목하는 것은 문장의 완결성이다. 앞선 이야기들은 뒤따라오는 이야기와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그 흐름이 아주 천연덕스럽다.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탁월한 문장력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인간과 다르지 않는 신들의 허접함에 이르면 신을 다루는 그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고 신을 상대하는 영웅을 단 몇 줄로 묘사할 때는 그의 위대함이 극치에 다다른다.

그가 배운 수사학이나 변론술, 웅변, 법학 등 잡다한 학문의 결과가 하나로 뭉쳐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서 방대한 내용을 적어 나가거나 문장의 완성도를 계속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 아는 것을 또 적는 것도 그렇다.

그런 가운데 내가 눈여겨본 대목은 인간의 육식에 관한 후반부다. 한 마디로 짐승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짐승의 몸에 부모 형제나 친척 혹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잖은 이유를 댄다.

나지막이 우는 송아지의 목을 도리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어린양을 죽이고 제 손으로 기르던 새를 잡아먹는 인간들의 못된 버릇을 질타한다.

소에게는 쟁기나 끌게 하고 나이 먹어 죽으면 그 죽음을 슬퍼하고 양으로부터는 북풍에서 지켜줄 양털이나 얻고 염소에게는 젖을 짜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한다.

심지어 꼬부라진 낚시로 물고기를 속이지 말라고까지 한다. 그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보라. 그의 귀하고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는 사람은 없다.  그때도 없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짐승의 고기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게 하지 말고 거친 음식으로 만족하라는 경고를 지키지 않는 인간의 최후는어떻게 될까.

코로나 19와 같은 대유행병은 약과일지 모른다. 짐승을 죽이고 먹는 이런 인간에게 살인은 짓기 어려운 죄가 아니다.

이제 오비디우스가 할 일은 끝났다. 그는 일을 끝내면서 예언 하나를 내놓는다.

'단언하건데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신통력이 대단했던 테이레시아스를 능가하는 예언이다.

: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 목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변신 이야기>는 바꿀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않는다.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럴수록 쌓여만 간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는 끊이지 않으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낸다고 해도 심심하지 않겠다.

이 책의 원제는 <메타모르포세스>로 변형 변신 변모를 의미한다. 2천 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도 변형과 변신과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다 읽어내기가 벅찬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천지창조에 관한 앞부분과 카이사르의 승천을 다룬 뒷부분만 읽어도 본전은 찾고도 남는다.

여기에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오스의 유품을 놓고 벌이는 살기 등등한 변론과 반박을 읽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한편 오비디우스는 로마에 의한 평화를 의미하던 팍스로마나 시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귀양을 가게 되는데 그 이유가 황제의 외동딸 율리와의 방탕한 생활 때문으로 알려져 또한 번 놀라게 된다.

이미 <사랑의 기술>로 여성을 꾀고 남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적었던 저자에게 황제의 손녀딸이라면 자신과 방탕한 삶을 사는데 적합했을 것이다.

그래서 귀양을 가면서 어떤 시구와 어떤 과실 때문에 자신이 쫓겨나게 됐다고 변명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윤기는 시구는 율리아를 찬양하는 것이고 과실은 율리아의 애인 노릇을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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