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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4-23 16:32 (금)
129. 대하 (1939)-미완의 대작, 아쉬움 진하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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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대하 (1939)-미완의 대작, 아쉬움 진하게 남아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2.1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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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의 장편소설 <대하>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박성권, 박참봉이다. 시종일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다음은 박성권의 첩 소생인 박형걸이다. 위로 형준과 한 달 차이로 형인 형선 그 아래 형식이 있으나 그들에 비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모두 본처 소생이고 나 홀로 후처의 소실이나 주눅 들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두칠이 아내 쌍네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어떤 드라마틱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그렇다. 사건은 이들을 얼개로 결혼, 단발, 단옷날 운동회, 교회 전도 등을 양념으로 무친다.

박성권은 밀양 박가를 내세우나 이렇다 할 학식이나 족보가 없다. 청일 전쟁 와중에 토지나 일수놀이로 돈을 모았다. (참봉도 돈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돈 많은 졸부가 문제가 되듯이 성권도 그런 부류에 해당한다.

돈이 많으니 자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본부인 외에 첩을 두고 있다. 그는 저녁은 주로 작은집에서 아침 후에는 본가에서 이중 살림을 하는데 돈이 째는 경우가 없다.

돈놀이는 통상 대여섯 배 이자 장사로 늘 남아돌기 때문이다. 그는 이 돈으로 마을에서 행세를 하는 또 다른 밀양 박가인 박리균 형제를 기세 좋게 제압한다.

리륜, 성균 형제는 조상의 효부비가 있는 것을 자랑삼으며 돈만 많고 내세울게 없는 박참봉을 틈만 나면 깔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돈 앞에 장사가 없다고 리균 형제는 사업 확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박참봉 앞에 무릎을 꿇는다. 돈 빌릴 곳이 그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효부비를 은근히 놀려대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부하는 리균 형제 앞에서 참봉은 자신이 이 마을의 대장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단옷날 행사에는 군수 다음가는 직책인 부회장을 꿰차는 등 승승장구한다. 돈의 힘은 이런 것이다.

그러나 성격이 괴팍하거나 종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첩만 애지중지하면서 본부인을 홀대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당시 그 정도 위세로 그만한 행동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언행을 보이지 않는 것은 나중에 더 큰 갈등을 가져오기 위한 작가의 치밀한 계산인지 모른다.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그가 어떤 짓을 꾸며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자식으로 넘어가자. (부인이나 며느리는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다. 그저 시중이나 들고 아들 걱정이나 하고 숨어서 경치나 구경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니 주인공으로 언급한 쌍네의 활약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미완성이라서 더 궁금하다. 주인공들이 어떤 결말을 맺었을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 미완성이라서 더 궁금하다. 주인공들이 어떤 결말을 맺었을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본부인의 자식은 앞서 언급한 형준과 형선과 어린 형식과 딸이 있고 ( 1남 4녀다.) 첩 윤씨의 아들이 형걸이 되겠다. 막내 형식과 어린 딸을 제외한 자식들은 장성했다. 형준은 결혼을 했고 형선은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 얌전하고 얼굴이 좋은 보부가 그 대상이 된다.

그런데 보부는 언젠가 한 번 먼 발치서 본 적이 있는 키 큰 남자, 다시 말해 형선이 아닌 형걸을 남몰래 사모한다. 형걸도 보부에 대한 은근한 정을 품고 있으며 생모 윤씨 역시 형걸의 배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죽 쒀서 개 준다고 형걸 대신 형준이 보부와 결혼한다. 형걸은 닭 쫓던 개 신세다. 형걸은 홧김에 초야를 치르는 형 부부 방앞에 큰 돌을 던지고 도망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한다. ( 이 부분은 슬쩍 지나가나 어떤 불길한 예감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뿐이다. 시동생이 된 형걸은 형수인 보부에 대해 그 어떤 내심을 비치지 않는다. 작가는 형걸과 형수인 보부를 엮을 마음이 전혀 없다.

그래서 둘은 결혼 후에 한집에 살면서도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살갑게 대한다거나 서로 눈짓을 주고 받는 등의 어떤 말이나 그것을 연상할 만한 행동이 없다. (긴장 모드로 가다가 평상으로 돌아오니 맥이 풀리는 기분을 독자들은 느낄 것이다.)

형걸은 그때까지 길게 기르던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리고 마침 들어와 세를 불리기 시작하는 교회에 관심을 가진다. 집안은 형이 결혼했으니 아우인 형걸의 결혼을 서두른다. 열아홉 살이 됐으니 결혼이 늦어도 너무 늦다고 성화가 대단하다.( 당시는 조혼 풍습이 있어 열 서너 살에 대개 결혼했다.)

부모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형걸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넘치는 힘은 어쩌지 못해 하녀 쌍네를 범한다. 앞서 언급한 바로 쌍네가 형걸의 상대가 되겠다. 남편 두칠이 어느 날 멀리 출장( 박참봉이 돈 받아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을 갔고 형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무렵 도박에 빠져 있던 형준 역시 쌍네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마침 쌍네 방에서 나오는 형걸을 확인하고는 분통을 터트린다. 한발 늦은 것이다. 그는 욕심을 채우지 못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친다.

아버지는 뭐 그게 대단하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종년’을 어찌한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돈을 주고 어릴 적에 사온 몸종이니 주인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형걸의 친모 윤씨 역시 그 사실을 알지만 그럭저럭 넘어가면서 얼른 장가들일 생각만 한다. 형걸이 두어 번 다녀간 후 쌍네는 남편 두칠보다는 도련님 형걸을 마음에 둔다.

여러 날 출타에서 돌아온 두칠은 형준의 고자질로 형걸과 쌍네가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역시 모른 체한다. (형준은 지질한 인간이다. 아무리 하인이라고 해도 어떻게 두칠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이는 그가 재차 쌍네를 범하기 위해 시도했으나 쌍네가 형걸처럼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런 식으로 보복한 것이다.)

여기서 두칠의 성격을 잠깐 언급해 보자. 그가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과정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비겁하고 겁 많은 놈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쪼다 형준과 비교해 보면 그의 현실 파악 능력이 얼마나 우월한가. 꿈 풀이 삼십육계 도박( 꿈을 꾸기 위해 일부러 낮잠자는 장면은 기괴하다.)에 빠져 할 일이 없이 시간만 보내는 보잘 것 없는 인물과 비교된다.

두칠이 그렇다고 해서 진짜 속마음까지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말이 없어서 그렇지 독자들이 한 눈 파는 새에 쌍네에게 주먹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실에 강한 두칠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대신 달걀을 조심스럽게 포장하는데 공들인다.

쌍네에게 도망가서 살자고 애원한다. 어디선 못 살겠느냐, 신작로 내는 노가다 판이라도 따라다니자고 손을 잡는다. 쌍네는 두칠이 불쌍해 연민의 정이 든다. 하지만 그와 평생을 살 생각이 없다.

형걸도 쌍네처럼 인생이 꼬인다. 좋아서 쌍네를 만난 것이 아니어서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쌍네가 대시한다. 감히 ‘종년’이 도련님을 사모한 것이다. 사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같이 갈 것을 꿈꾸고 있다. 쌍네는 그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그 시각 형걸은 쌍네 말고 기생 부용에 빠져 있다. 부용은 비록 기생이나 학식이 있고 글자를 주고받는 수준이다. 둘이 글 수작을 할 때는 마치 서경덕과 황진이가 농을 피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이 가까워진 둘은 서로 문신을 새기면서 무슨 언약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형걸 앞에 뜻밖의 복병이 나타난다. 관심 밖으로 빠져 있던 바로 아버지 박참봉의 등장이다.

부용을 찾아 나선 어느 날 아버지가 부용과 어울린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미련 없는 형걸은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처량하게 기생집에서 발길을 돌린 그는 떠난다. 그러기 전에 신식으로 무장한 선생을 만나 상담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그는 아마도 평양으로 갈 것이다.

그가 가고 쌍네 역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형걸이 떠나는 것보다 쌍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섬뜩하다. 그 시기 다른 작품들은 쌍네 정도의 우여곡절을 겪은 여자는 보통 자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미리 말해 두지만 쌍네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언급은 없다.

형걸이 떠나기 전 쌍네는 과감하게 그에게 매달리면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나 형걸은 재미 삼아 한두 번 같이 있었던 것이지 평생 배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 쌍네를 받아들일 마음이 추호도 없다.

여기서 쌍네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쌍네는 두칠을 버리는 것으로 새 출발을 다짐한다. 그녀는 아마도 원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어린 자녀를 팔고 떠난 아버지가 그곳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이 작품은 여기서 끝난다.

장편이라고는 하나 미완성이다. 그러니 작가가 어떤 결말을 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 형걸과 부용, 형걸과 형준 형제와 쌍네 등이 얽히면서 치정극에 의한 비극적 결말을 상상해 봤다.

주인이 종을 농락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마침내 내쫓을 때 종은 간혹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욕하는 주인에게 그 낫으로 목을 베거나 야심한 밤에 불을 질러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완성본이 있다면 두칠이 그런 짓을 했을까, 궁금하다.

박참봉의 최후는 또 어떤가. 재기한 박리균 형제에게 된통 당했는지, 아니면 이자를 감당못해 파산한 리균 형제의 재산까지 차지 했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평양으로 간 형걸의 행적보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쌍네의 미래다. (부디 쌍네에게 행복이 있기를. 그녀는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해피앤딩을 상정한 것은 비극을 너무 많이 봐서 되레 식상하기 때문이다.

<대하>의 배경은 평남 성천이다. 말할 것도 없이 성천은 김남천의 고향이다. 잘 아는 고향을 배경으로 했으니 주변을 세밀하고 잔잔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세태 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 주인공들의 그 당시 생활을 통해 개화기를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김남천은 임화 등과 함께 북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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