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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22 16:08 (수)
누가 자신의 계급을 불러도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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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신의 계급을 불러도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1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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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소대장은 알지 못했다. 알고 있었던 사람인 것 같기도 했으며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시 눈이 감겼다. 저절로 스르르 뱀이 미끄러지듯이 그렇게 됐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꺼풀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무슨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도 소대장은 이런 합리적인 생각을 했다.

그는 다시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누가 흔드는지, 누가 자신의 계급을 부르면서 다그쳐도 어떤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모든 것은 어둠 속에 있었다.

아주 깊은 곳이었고 그곳은 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너무 깜깜해 되레 덜 어둡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곳도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둡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만 한다면 어둠에 적응되는 대로 그런 대로 생활이 가능했다.

소대장은 다시 눈을 떠 보았다. 감은 상태나 뜬 상태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변은 어둠 그 자체였다. 필름을 현상하기 위한 암실에 들어온 카메라맨처럼 그는 어둠에 익숙해 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그러나 지옥치고는 너무 편했다.

누가 꼬챙이로 쑤시지도 않고 인두로 발바닥을 지지지도 않았다. 끊는 물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무거운 짐에 깔려 있지도 않았다. 아프거나 힘든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이곳은 지옥이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아프기는커녕 되레 편안했다. 몸이 그러니 자연히 마음도 편안한 상태가 됐다. 무엇을 먹고 싶거나 목이 마르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았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이런 것인가, 소대장은 그런 생각을 또 하면서 이번에는 눈꺼풀이 아닌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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