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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늘 주변에 있다고 호석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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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늘 주변에 있다고 호석은 생각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9.07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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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그는 능 주위를 돌았다. 고요한 바람이 소리 없이 불었다. 밤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그 전의 것들과 달라졌는지 어떤지 모른다. 설사 달라졌어도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능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다시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진 자의 형상에서 살아남은 자가 위로를 받고 있다. 그의 죽음은 그것만으로도 헛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없는 것이 좋을 인간이 천지인 세상에서 죽은자는 산 자에게 그런 것을 주고 있다. 그래서 백성들의 왕인가.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옆구리를 살짝 찌르듯이 불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떠오르는 해가 몸 여기 저기를 가볍게 눌러 댔다.

밤새 구부리고 자 뻐근한 몸이 안마를 받고 풀어지듯이 사지가 나른하게 제자리를 잡아 갔다. 숲이, 대지가, 불어오는 공기가 그를 감싸고 있다.

우리가 곁에 있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뭐 이런 용기를 주고 감상에 젖어 들 수 있을 분위기 였다. 나쁘지 않았다.

간밤에 보았던 검은 소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호석은 작은 바위에 걸터 앉았다.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 커다란 무덤 사이로 빛이 비춰 들었다. 숲은 늑장부리지 않고 빠르게 깨어 났다.

호석은 직감적으로 이런 알찬 사치는 당분간 오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풍경이 주는 경이로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을 간직하듯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두었다, 문신처럼 몸에 새겼다. 그러면 어려울 때 끄집어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진정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만약 행복 같은 것이 오면 설탕과 크림 두 스푼을 넣고 완벽한 맛을 음미하고 싶었다. 그때까지 혀는 미각을 잃지 않아야 하고 보는 눈은 멀리 볼 수 있도록 나빠지지 않아야 했다.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다,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 바로 일어나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도 기회는 있다. 건강하기만 하면. 이것은 호석이 그 나이에 터득한 지혜였다.

삶의 철학이었고 이념이었다.

건강하기만 하면 기회는 온다.

뛰면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이 하도 오래고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엄마라는 말처럼 너무나 포근하게 다가왔다.

건강하기만 하면.

그는 한 번 더 중얼거렸고 떠들었고 주변 나무의 새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외쳤다.

나는 건강하다.

그 날 오후 그는 어느 허름한 교회 앞에서 서성였다. 몇 번을 들어갈까 망설였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으뜸일번지교회의 간판 앞에서 그는 사랑을 앞세우는 교회라면 자신 하나쯤은 맡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랑과 믿음이 더해진 이 교회는 동정심 많은 목사님이 주인일 거라는 확신이 섰다.

그는 교회와 경계인 인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교회쪽으로 발을 디뎠을 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발이 경계를 넘어 인도로 접어들면 세상에 홀로여서 몹시 외로웠다. 그는 이쪽 저쪽을 넘나 들면서 행복과 외로움을 초 단위로 느꼈다.

그런 감정이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어느 한 쪽이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을 잠깐 가져봤다. 심심하고 무료해서 그냥 왔다 갔다 하려던 것이 마음만 심란하게 하고 있다.

경계의 문턱이 높았으면 어땠을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렵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행복이니 외로움이니 하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담이 높은면 더 좋을 것이다. 담 위에는 굵고 날카로운 철조망이 둘러 쳐저 있어 좋은 것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호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이러저리 옮겨 다녀도 누구하나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려고 시도 조차 하지 않고 각자 제갈길로만 갔다.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은 여유롭지 않고 바빳다. 가서 할 일이 많이 있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할 일 없이 이렇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몸을 돌리고 돌린 몸을 다시 돌리고 하는 사람은 호석 혼자 뿐이었다. 이래도 혼자, 저래도 혼자라면 나쁠 것이 없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명령이라도 내렸으면 싶었다.

복종할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뭐든지 할 각오가 되었기 때문에 목소리로 보아 명령에 더 익숙한 사람이 그러기를 바랐다. 그래야 그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었다.

결코 마지 못해 한다는 인상은 주지 않으리라. 힘없는 목소리, 느린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아직 어린애라고 봐달라는 듯이 가여운 처신도 하지 않겠다.

무슨 말을 하든지, 눈을 아무리 무섭게 치켜 뜨더라고 결코 두려워 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무가치한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 줬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요인이 있었지만 전적으로 자신이 한 결정이다. 그러니 누구 책임이 아닌 바로 자신이 모든 것을 져야한다. 이런 결론에 다가왔어도 갑자기 자신이 미워지지 않았다. 복수를 하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교련 선생 조차도 그는 그리워 했다. 마치 심삽 년 후에 그를 떠올리며 그가 사납게 굴었기 때문에 비뚤어지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 있다고 되레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날마다 그가 불행지기를 바랐으나, 교통사고로 어느 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학수고대 했으나 이제는 그러지 않기를 정말로 빌었다. 단단히 잡고 놓아 주지 않던 생각이 이렇게 쉽게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겨우 의자를 뺏다고 주먹을 날리고 대들었던 성일에게는 더없이 그리운 친구가 그라는 듯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한 바로 그날 주먹이 날로 올 줄 알았다면 그 전에 뺀 것을 마지막으로 삼았을 텐데 하는 후회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녀석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 언젠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 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배부를 때까지 사주고 싶었다.

촌놈이 무슨 돈이 있느냐고 의심하고 따지듯이 물으면 나 돈번다고 자신있게 말하리라. 교문 앞에서 하루 이틀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어설프게 웃으면서 걸어 나오는 녀석을 보면 소리 지르며 달려가지 않고 조용히 뒤로 가서 어깨를 치리라. 그가 놀라면 안되니까.

이렇게 세심하게 마음을 쓴 것을 녀석이 모르게 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말로 성일아, 나야 호석이 하면서 손을 잡으리라.

만두 사줄게, 그리고 놀라는 녀석에게 틈을 주지 않고 이렇게 말하리라. 그러면 녀석은 올 줄을 미리 알고 있기나 한 듯이 그러자, 나 배고파 하고 호응할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이처럼 온통 환했다.어둠을 뚫고 나오는 빛처럼. 불안이 떠나고 안도감이 자리를 잡자 그는 어느 순간에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었다.

어떤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더 커졌다.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그를 따르면서 그가 하는 것을 배우리라. 이런 생각은 자리를 잡았다.

더구나 목사님은 결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보는 사람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되고자 손에 있는 작은 성격책을 만지작 거렸다. 두려울게 하나도 없었다. 교회앞에서는 굶어 죽거나 얼어서 그렇게 되는 사람이 없다.

천사는 늘 우리 주변에 있지 않더냐.

호석은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운명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 들이는 것이다.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듯이 호석은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처한 일은 결코 끔찍하거나 갑자기 닥친 재난이 아니었다.

살다 보면 별 일도 다 일어나는 법이다. 있던 곳으로 결코 가지 않으리라, 호석은 다짐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중에서 하나를 정하는 것이었으므로 호석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

물에 빠지지도 않았다. 필사적으로 무엇인가 잡고 허우적 거릴 필요가 없었다. 지푸라기를 찾으면서 두려움을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 분명하게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잡고 스스로 빠져 나오면 된다.

그러니 허공에 대고 발버둥 치면서 살려 달라고 외치지 않으리라. 내 두 손, 두 발로 일어나리라. 거기에 교회가 있었다. 십자가를 올려다 보며 호석은 이런 생각으로 뛰는 가슴을 누그러 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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