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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다리는 앞으로 마구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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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다리는 앞으로 마구 질주하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9.02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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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한 순간이라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전의 그가 알고 있었을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기대감으로 눈썹 아래를 씰룩 거렸다.

억지로라도 눈물을 짜내려는 심사일까. 아들보다도 더 어린 나에게 손을 내민 그에게 호석은 동정심을 보일 마음도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리라.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을 앞으로 쭉 그러고 싶었다.

호석은 자신의 처지는 그와 견주어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길에서 동량할 이유가 없고 일해서 먹고 살 자신이 있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거지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그는 냅다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을 비킨 거리는 비교적 한적했으며 간혹 사람이 마주여 오면 슬쩍 옆으로 피하면서 피할 때 느끼는 기분까지 만끽했다. 왠만하면 달리던 다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뛰면서 그는 이것이 얼마만인가, 옆구리에 낀 가방만 없다면 그대로 탄력을 받아 날아 오를 것만 같았다. 날으리라. 하늘로 날아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리라.

호석은 마음속의 말을 밖으로 꺼내면서 얼굴에 퍼진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덩달아 가슴이 뛰고 생명의 숨결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넘쳐 흘렀다. 보리가 키처럼 크고 이삭이 패일 때 동풍이 불면 그것들은 잔물결 이는 파도처럼 일렁였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보리밭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호석은 돌아갔다. 잠시 지만 얼마나 평온했던가. 푸른 녹색의 향연에 마음껏 취해 벌렁 누워 있기라고 하면 지금처럼 하늘에는 구름들의 여기저기 떠서 제멋대로 움직였다.

행복의 의미를 몰랐으나 그것은 행복이었다고 호석은 생각했다. 그 행복이 지금 그의 온 몸에 사무처 올랐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 알고 나자 그는 몸이 가벼워 졌다.

가벼운 몸으로 그는 동구능 까지 내쳐 달려갈 생각을 했다. 한 번도 쉬지 않으리라. 거기까지 가려면 20킬로 미터 정도는 될 것이다. 그 거리가 어느 정도 인지 호석은 짐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갈 때 왕복 13킬로 였다. 산을 넘고 들을 넘었다. 어림 짐작해 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가다 못가면 쉬리라. 그러나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분별 없는 유치원 아이같은 행위였으나 그때 호석은 그렇게 달려 나가면서 앞가림은 내 앞에 있었고 그것을 해나갈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거기다 더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학교의 좋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애국이니 조국이니 헌신이니 그런 말을 새겨 주었고 그것은 이따금 중요한 순간에 깊이 숨겨 두었던 저금통처럼 요긴한 때에 불쑥 불쑥 뛰어 나왔다.

선생님들은 그런 말을 좋아했다. 그 말을 하면 자신이 선생이 아닌 애국자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는 뒤돌아서서 선생질 하는 주제에 라는 따가운 욕을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주 벌판에서 총을 들고 독립운동을 하는 투사와 진배없었다.

선생은 실제로 그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했는데 그 자세는 다름아닌 지휘봉으로 아이들을 하나 하나 가리키는 것이었다.

총구처럼 그것의 끝은 뭉뚝 했으므로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눈과 마주치면 반역하지 않고 애국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호석은 다시 학교에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애국하라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가슴속의 불씨를 피우고 싶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교문을 나왔다는 것을 잊고 학생 주임이 옷차림을 검사하기 위해 다가 서기나 한 것처럼 잔뜩 긴장했다. 그럴만도 했다.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교문을 통과해 교련 선생 앞으로 달려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여러번 있어서 경험이 알려 준 것이 아니라 처음이라 해도 그런 것 정도는 생각해 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더는 가슴을 송곳으로 찔리고 싶지 않았다.

가여눈 눈으로 그것은 아버지가 한 일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개를 숙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의 것이었고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못본지도 어머니의 생사를 모른 지도 여러해가 지났다.

지금 아버지 어디 계시니?

엄마는 선생을 그만 두고 행방불명 됐다며?

이런 질문을 듣느니 이 길로 쭉 가야한다. 마음이 시키는대로 그는 따랐고 결코 다시는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부러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수학문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해서 그가 나쁜 아니이거나 혼날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나서 퇴학 당하느니 엄마처럼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이 학교나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다. 교련 선생이 그걸 원하는 지도 몰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다 지난 일이다. 그는 학교가 아닌 세상 속에서 애국하는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부드러운 경사지를 따라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리는 몸을 떠났다. 떠난 다리는 마구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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