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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황공의 최후>( 1933)- 황구 럭키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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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황공의 최후>( 1933)- 황구 럭키를 추억하며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8.28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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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태도이면서 인격이다. 공은 사람에게도 위엄이 깃든 이름이다. 미물인 개에게 그것이 붙는다면 주인의 각별한 정이 느껴진다. 그 개의 이름이 사지다. 사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지은 관명이다.

허나 필자는 죽을 위험이 큰 매우 위태롭다는 의미가 있는 사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 읽고 나면 과연 그럴 수도 있다 싶다.

극으로 치면 희극이 아닌 비극이다. 최후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 있는 그 무엇이라면 슬프기 마련이다. 맨 마지막이니 더는 삶의 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누렁이는 나의 바지 호주머니에 딸려 이웃 마을에서 왔다.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라면 어미 개는 아니다. 막 나은 개새끼일 것이고 모든 새끼들 중 귀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새끼이니 식구처럼 키웠다. 개하고 헝겊붙이가 됐다는 꾸중을 어머니에게 들을 정도로 한 이불에서 잤다.

될성부른 녀석은 떡잎부터 다르듯이 녀석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대소변을 가렸다. 붙임성도 있어 늦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마구 핥아 대니 잠버릇까지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

사지는 '호랭이'처럼 우람했고 동물원의 암사자처럼 뒹굴었다.

개들은 사람과 달라 하루가 다르게 큰다. 큰 녀석을 방안에 끼고 자기 힘들어 마루 밑에 집과 구류를 마련해 준 것은 주인공의 배신아닌 배려였다.

▲ 황구 사지의 추억과 죽음에 대한 작가 심훈의 인간미가 물신 풍긴다. 그 옛날에 동물에 대한 이런 식견을 가진 것이 놀랍기만 하다. 개만도 못한 세상에서 황구 사지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충성과 애정은 두고 두고 머리에 남는다.
▲ 황구 사지의 추억과 죽음에 대한 작가 심훈의 인간미가 물신 풍긴다. 그 옛날에 동물에 대한 이런 식견을 가진 것이 놀랍기만 하다. 개만도 못한 세상에서 황구 사지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충성과 애정은 두고 두고 머리에 남는다.

녀석은 껌딱지처럼 따랐다. 어딜 가나 붙어 있었고 잠시 떨어졌다가 보면 이산가족 50년 만의 상봉처럼 꼬리에서 바람이 일 정도로 반가워했다. 마을 사람들도 녀석과 내가 궁합이 잘 맞는 한 쌍 정도로 여길 정도였다.

녀석의 몸집이 커지자 주체못할 발정기는 필시 오입을 불러왔고 그럴 때는 이웃 마을로 가 이 삼 일씩 집을 비워 나의 애간장을 태웠다.

걱정이 극에 달할 무렵 녀석은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큰 다리로 어깨까지 엉겨 붙어 반가움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한 갓 미물이지만 이런 녀석이라면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녀석에게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숭늉만으로는 먹는 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새나 들쥐 정도로는 큰 덩치를 감당하기 어렵다.

먹을 것이 널려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도 먹기 힘든 고기를 식사로 내놓기는 어렵다. 마음껏 먹지 못하는 사지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은 있어도 하지 못하는 주인의 심사를 영리하게도 눈치챘는지 사지는 직접 닭고기 사냥에 나섰다. 어떤 날은 어린 돼지 새끼 두 마리를 꿀꺽 해치웠다.

값을 치러 주기는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린애까지 잡아 먹겠다고 어서 개백정에게 넘기라고 아우성이다.

차마 그럴 수는 없다. 녀석이 이제 겨우 한 해를 넘겼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 그 정도 살고 저세상으로 보낼 수는 없다. 아니 그보다 열 곱을 더 살았다손 치더라고 차마 팔 수는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녀석은 도둑을 지켜주고 미친개로부터 생명의 위기에 몰린 자신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닭 잡아먹은 핑계로 생전 처음 매질을 해서 서먹했던 관계도 말끔히 해소됐다.

이전보다 더 충견이 된 사지를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팔 수 없다. 다른 개에 비해 두 배로 쳐준다고 돈 욕심을 부릴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40 리나 떨어진 읍내에 볼일이 있어 집을 비우게 됐다. 사지는 그날 따라 유난히 따라 오기를 간청했으나 조약돌을 던져 기어이 집으로 쫓아 보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독자들은 간파했을 것이다.

불길한 느낌을 안고 집에 왔으나 사지는 간데 없다.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달려와 통나무 같은 몸통이 흔들릴 정도로 꼬리도 흔들지 않는다.

여기저기 수소문 하던 나는 사지가 작은 말 응천이 집의 커다란 가마솥에 안에서 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개백정과 거기 모인 사람들을 단장으로 찌르고 팬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외양간 앞의 괭이로 솥뚜껑을 반쪽 낸 들 황공은 살아 돌아 올 수 없다.

이것으로 황공의 최후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작품이 나온 시기가 1933년이니 이때는 개가 아무리 귀여워도 잡아 먹거나 팔아 먹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지금이야 개를 먹으면 쳐다 보겠지만 그때는 막걸리를 옆에 놓고 넓적다리를 뜯어 먹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어릴 적이라고, 옛날 옛적 일이라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 나오는 황공처럼 내가 키운 개도 누렁이였다.

그 누렁이 역시 황공처럼 대단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그 역시 황공처럼 만 이태를 채우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를 추억하고 추모한다. <황공...>을 읽고 나니 주인공의 심정이 내 심정이어서 읽어 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나와 거친 들판을 달렸던 황공의 이름은 럭키였다. 개로 태어나 인간에게 즐거움과 위안과 평화와 행복을 듬뿍 주고간 럭키와 사지의 영혼을 위로해 본다.

한편 프랑스의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여배우는 개식용 문제를 들어 한국인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해 큰 주목을 끌기도 했다.

2001년 손석희의 시선 집중 라디오 프로에서 브리지트는 나는 당신 같은 야만인들과 할 말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도 했다. (그 때 그 인터뷰를 필자도 생방송으로 직접 들은 기억이 있다.)

참고로 브리지트 바르도는 미국의 마릴린 먼로에 비유될 만큼 섹시 심벌로 인기를 모았는데 한창일 때는 하루라도 남자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다고 발언해 뭇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1973년 은퇴 후에는 동물 보호 운동에 뛰어들었다.

: 짐승에 대한 애정이 놀랍다. 반려견 개념이 없던 당시에 개를 인간처럼 대접하려는 작가의 자세는 시점을 일제 강점기가 아닌 지금이라고 설정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떤 경로로 심훈이 <황공의 최후>에서 이런 경지에 다다랐는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식민지 시대, 처절했던 양육강식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짐승의 본능과 이성이 있는 인간의 비교도 흥미롭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하다. 황구는 그런 인간을 뛰어넘는 동물이었다.

아이를 위한 동화일 뿐 아니라 어른을 위한 우화로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개와 인간, 짐승과 사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심훈은 장편 <상록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무수한 기라성 같은 동료 작가들이 친일파로 명성을 날릴 때 그는 독립운동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가 천황을 찬양하고 일제를 미화하는 글 대신 기껏 개 이야기를 쓴 것을 두고 친일 작가들은 한가한 사람이라고, 별 볼 일 없는 작가라고 손가락질했을지 모른다.

심훈은 그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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