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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레디 메이드 인생>(1934)- 배운 자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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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레디 메이드 인생>(1934)- 배운 자의 슬픈 자화상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8.07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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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 L이 건설 현장 근처를 지나면서 일하는 젊은 사람의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 말의 행간은 일자리 없다고 푸념하는 대신 노가다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좋은 일자리 타령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을 읽다가 그 공직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학벌 좋고 인맥이 좋아서 은퇴할 나이가 지나도 이십 년 이상을 노른자위에서 활동한 그가 보기에 요즘 대학 졸업하고 노는 청춘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사방에 일자리는 널려있지 않은가. 공장도 있고 시간제 알바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다. 급여나 노동 시간 등 조건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다면 당장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인식까지 더해지면 일자리 없다고 구직 간판을 목에 걸고 행길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야기가 취직에 관한 것, 그리고 좋은 직업에 대한 내용일 거라고 짐작할 만 하다.

▲ 내용이 어둡다. 풍자가 있다고는 하나 밝은 기운이 없다. 배우고도 걸맞는 일자리가 없어 허둥대는 한 인간이 애닮다. 우리 주변에 P나 K나 노동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고위 공직자 L은 없는지 살펴보자.
▲ 내용이 어둡다. 풍자가 있다고는 하나 밝은 기운이 없다. 배우고도 걸맞는 일자리가 없어 허둥대는 한 인간이 애닮다. 우리 주변에 P나 K나 노동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고위 공직자 L은 없는지 살펴보자.

그런 짐작은 틀리지 않고 맞다.

여기 P가 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왔다. 식민지 시대 유학가서 대학까지 마쳤다. 번쩍거리는 직업이 그 앞에 떡 하니 대기하고 있어야 맞다. 그에게 공사판의 노가다가 적당하다고 추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그런 일자리는 없다.

일하지 않는 그는 궁핍하다. 하고 싶지 않은 자발적 실업이 아니어서 그의 가난이 더욱 애처롭다. 구직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다른 사람을 통해 알선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가 신문사 사장인 K를 찾아갈 때 그 절박한 심정은 당해보지 않고도 알만하다. 사장이 흔쾌히 오케이 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정 일자리가 없다면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이나 하라고 등 떠민다.

배운 젊은 놈이 놀아서야 쓰겠느냐는 투다.

P가 생각하기에 참 어이없다. 봉사활동은 돈 없이 할 수 있나. 또 시간도 내야 한다. 주기 싫으면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자존심 상하게 하다니 그의 기분은 엉망이다.

안하니만 못할 꼴을 당한 P는 발길에 걸리기만 하면 돌부리라도 걷어찰 심사다.

종로의 기념비 앞에서 그는 삼청동길을 타고 오른다. 또 다른 부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꼭대기 어디쯤인가에 그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집은 집이되 그의 것은 아니고 사글세다.

때는 봄이라 옷차림이 가벼운데 자신은 아직도 월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량한 신세를 꼬질꼬질한 셋방에 뉘니 이렇게 사는 것도 사는 것인지 비애감에 울화통이 터진다.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방 한 칸에 의지한 삶이 무척이나 한심할 뿐인데 배포는 커서 수 백만 원이 일시에 생기면 신문사를 턱 하니 차려 그 선배 사장의 코를 확 죽여 놓고 싶다는 망상을 한다.

망상이 실천되는 경우는 식민지 시대이니 더 어렵다.

싫어도 그 생각에서 깨어날 즈음 서너 달 밀린 월세에 다시 처량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시골 사는 형은 아들 창선이를 데려가라고 전보까지 쳤다.

저 혼자도 벅찬 삶인데 혹까지 하나 달게 생겼으니 걱정은 배가 된다. 비록 아들이기는 해도 혼자 사는 것을 뻔히 아는데 데려가라는 형님이 아니꼽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담배 하나를 산다. 싼 마코를 사고 싶으나 담배 가게 점원은 미리 행색을 보고 ( 비싼 해태가 아닌) 마코죠 하고 묻으니 홧김에 해태를 사고 만다.

P라는 작자는 이런 수준의 인간이다.

월세방으로 M과 H가 놀러 온다.

그들 역시 취직을 못한 인텔리 룸펜이다. 꼴에 배웠다고 세상이니 인생이니 뭐, 지껄이지만 주머니가 텅 비었으니 그 꼴이 거지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서로 신세 한탄을 늘어놓다 책 판 돈으로 술을 먹으러 가는 세 삶의 꼬락서니는 보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간다.

이들은 선술집에서 거나하게 걸쳤다. 웃고 떠들 때는 가난이 잠시 물러간다. 기분도 난다. 까짓 껏 셋은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2차를 때린다.

비싼 술은 여자가 다 먹었다. 배 부른 여자와 어린 여자를 가지고 노닥거리던 M과 H는 P를 남겨 두고 밖으로 나온다. 이혼하고 혼자 사니 정분을 쌓으라는 우정이 이런 때 발휘된다.

만삭의 여자 대신 열여덟 살의 여자애가 P에게 달려든다. 정 돈이 없으면 이십 전이라도 좋으니 자고 가라고.

이십 전이라니, P는 허탈하다. 아무리 닿았어도 너무 헐하다 싶다.( 이 부분에서 당시 여성의 정조관에 대한 사회 분위기와 작가의 주장이 여러 문장에 걸쳐 장황하게 언급된다. 지금이라면 큰일 날 소리도 난무 한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있는 돈을 다 팽개치고 쫓기듯 친구들이 있는 밖으로 나온다.

밤새 숙취에 시달린 P는 다음날 경성역으로 아들을 마중 나간다. 수년 만에 보는 창선이는 겨우 아홉 살이다. 너도 나도 학교 보내고 가르치려고 ‘난리 부르스’ 인데 배운 인텔리 P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배운들 자신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입 달린 사람은 모두 가르치라고 성화지만 정작 배운 자신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P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식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더러운 식민지 시대의 한심한 조국이다. ( 당시 검열이 심했을 것이니 이런 표현 당연히 없다, 그러니 독자들은 오해하지 마시길)

창선이는 인쇄소 노동자가 된다. 알고 지냈던 이는 떠맡듯이 그를 받으면서도 이런 애가 노동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남의 자식이 아니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 창선이가 P의 아들인 것을 알고는 허탈해 한다.

: 주인공 P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문장도 빼어나다. 인텔리이나 일거리가 없어 가난뱅이 신세인 그의 행적이 하루 이틀의 일과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과연 채만식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하다.

중간중간 원본이 사라졌으나 내용이나 줄거리 파악에는 문제가 없다.

무슨 이유인지 아내와 헤어지고 자존심 때문에 아들을 떠안고는 제대로 아버지 역할을 하지 않는 P는 비난의 대상이 맞다.

겨우 아홉인 아들을 학교 대신 일터에 보내는 못난 아빠다. 월급은 없어도 좋으니 기술이나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하는 그를 누가 한 대 때려 줬으면 싶다. 그러다가도 오죽하면 저럴까 싶은 안타까움도 인다.

자신처럼 배워 봤자 실직자 신세이니 미리 감치 기술자가 되는게 좋다는 판단 아닌 판단에 시비 걸기에는 그가 처한 상황이, 그가 부딪치는 사회가 너무 고약하다.

이는 부정의 배려일까, 어린 자식의 학대일까. 이것이 그가 말하는 준비된 인생일까. 기성품처럼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생은 이런 것일까.

여기서 다시 앞서 이야기 꺼낸 고위 공직자 L과 한 대화 내용을 마무리하자. 학력이 높다고 꼭 그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하고 박사 학위 있는데 직업을 찾지 못한다. 실업자 신세 삼 년 만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든 현장의 노동이라면 그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 현장 노동을 얕잡아 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중인격의 P나 농촌으로 가라는 K 사장이나 대답을 회피하는 고위 공직자 L이나 모두 한통속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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