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0-08-08 11:59 (토)
권총에 눈을 돌리면서 가죽지갑을 만지작 거렸다
상태바
권총에 눈을 돌리면서 가죽지갑을 만지작 거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31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자 대장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으나 그래도 좋은 기억이 많은 그때 그 시절이었다.

붙들려 가면서도 상처 때문에 호탕하게 웃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입이 벌어지자 그 언저리와 턱 부분이 당겨오고 그래서 대장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꼬마 시절로 돌아가면서 피하려고 했던 밀려오는 통증을 참아내는 것은 힘겨웠다. 그만큼 온 몸의 상처가 깊고 컸다.

그 무렵 반신반인은 꼬마 대장보다는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첩 식별 요령을 만들어 전국민을 교육 시키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아침, 저녁은 물론 점심을 먹을 때도 각기 다른 아이템으로 잘 모르는 국민을 깨우치는데 온힘을 쏟았다. 그런 모습을 남녀노소는 모두 애처롭게 바라봤다.

저분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쓰셔.

입 달린 사람들은 한마디씩 씨부렸다.

교육의 효과는 커서 이제 모든 사람이 간첩이 어떤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심한 시절이었다.

알고만 있고 신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상 교육도 동시에 받았기에 꼬마 대장은 간첩을 잡을 수는 없으나 식별하고 신고하려는 마음으로 마냥 설레었다.

아이들과 자치기하면서도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멈추고 노려봤고 아는 사람이라도 평소보다 이상하면 집에 가서 꼭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뻥튀기 기계를 싣고 다니는 고물장수나 보따리 옷 장수도 그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대상이었다. 한 번은 하도 유심히 지켜보자 고물장수가 너 왜 그러니? 하고 물어본 적이 있어 놀라 자빠질 뻔했다. 진짜 간첩과 맞닥뜨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어린놈이 눈을 부라리며 술 취한 사람 같은 행동이 그가 보기에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갑작스런 질문에는 미리 준비하지 않아 떡이 목에 걸리는 것처럼 말문이 턱 막혔다.

아저씨가 간첩 아닌가요.

묻는 것은 그 나이에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무 대답 못하고 저쪽으로 달아났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꼭 자기 손으로 간첩을 신고하겠다는 열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자다가 벌떡 일어나 저기 수상한 사람이 지나간다고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네가 또 간첩 꿈을 꿨구나 하고 다독였다.

국민학교 졸업식이 다가올 때까지 꼬마 대장은 간첩을 잡지 못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잡지 못한 것은 간첩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더 노력하지 않은 까닭이었고 그는 그런 사실을 어느 날 담임선생을 통해 듣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한 아이가 꾸중 들을 때 흔히 그렇듯이 그렇게 하면서 반성하는 모양을 보였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담임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반에서 간첩 하나 잡아야지, 지금 난리야, 간첩 13명을 잡았다고. 노력 부족이야, 노력.

담임은 한심하다는 듯이 아이들을 쳐다봤다. 하필 그때 담임의 눈과 대장의 눈이 마주쳤고 대장은 자신 때문에 간첩을 잡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다음번에는 꼭 잡고야 말겠다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다.

반성을 한 꼬마 대장은 그날 집으로 오면서는 이 사람이 간첩이다, 라는 확신이 들만한 사람을 발견하고 온몸을 발발 떨었다.

길가에서 오줌을 누다 아이들 소리에 황급히 바지춤을 올렸던 아저씨를 간첩으로 신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꼬마 대장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독침이 사방으로 몸을 찔러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으로 옷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간첩이 들고 다닌다는 그것은 볼펜 같은 모양으로 찌르기만 하면 누구나 그 자리서 죽는 무서운 무기였다.

죽음 앞에서도 오줌을 싼것은 창피한 것이었고 누구에게 알려서는 안 됐다. 다른 것은 다 말해도 꼬마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나서도 바지의 젖은 부분에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 창피한 것과 신고하느냐, 마느냐로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 해가 다 가고 졸업식이 열리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간첩 신고로 상을 받는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많은 간첩이 하필 대장의 마을에 나타나지 않은 까닭이다. 대장이 다니는 길목에서는 무언가 간첩활동을 할 만한 것이 없었고 그래서 대장은 간첩이 자주 출몰한다는 바닷가로 가고 싶었다.

그곳으로 이사 가면 새벽에 어부도 아니면서 배에서 내리는 간첩을 신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을 엄마에게 망설이지 않고 말한 적도 있다.

포구로 이사 가. 간첩이 거기 있대.

그 포구는 간첩 13명이 접선하다 잡힌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 번 드나들었던 곳은 익숙해져 다시 올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대장은 그 포구를 딱 집어서 그곳으로 집을 옮기자고 졸랐다.

왜 간첩들은 은신했던 장소는 살인범처럼 꼭 한 번은 더 들른다고 하지 않던가. 놀랐다가 조용해 졌다가 나중에는 망설이던 엄마는 진지한 나의 표정에 일언 지하에 거절하지 못하고는,

돈이 없잖니.

엄마의 한 마디에 나는 이사를 포기했다. 이 정도로 어린 시절 간첩을 찾기 위한 노력은 지금 생각해도 가상했고 그것이 착한 아이라는 증거였고 그래서 희미한 웃음이 죽음 앞에서 은근하게 터져 나왔던 것이다.

대신 삐라를 가장 많이 주운 학생에게 주는 이달의 삐라 상을 받기는 했다. 그것만으로도 장하다고 엄마는 칭찬했다.

삐라를 주으러 산으로 들로 다닐 때는 정말 신이 났다. 만화책을 보거나 짚으로 엮은 공으로 축구할 때보다도 더 기분이 좋았다.

누구도 무서워서 가지 않는 낭떠러지 근처에서 무더기로 발견했을 때는 산삼을 발견한 것처럼 오금이 저리기도 했다. 그것은 간첩 신고와는 달리 열심히 만 하면 틀림없이 발견됐다.

삐라는 산에도 있었고 어떤 날은 마당으로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그런 다음 날은 이른 아침에 산에서 젖은 차림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새벽에 깨서는 날이 밝을 동안 문틈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을 지켜보기도 했다.

오일장이 서는 장날에는 더 심하게 눈을 치켜떴다. 사투리를 쓰거나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간첩이기 때문에 국밥을 먹으면서도 주변을 힐끗거렸다. 너한테 잡힐 간첩이면 그게 어디 간첩이냐고 어머니는 핀잔을 했으나 그러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았다.

없는 살림에 간첩 신고로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런 행운이 우리 집에 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대장의 양쪽 눈에 웃음 대신 이번에는 눈물이 흘렀다.

굳은 피는 흘리는 눈물로 씻겨질 듯했으나 얼굴에 칼자국 같은 형태만 남기고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죽은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는 사변 때 극적으로 남한으로 내려왔다.

전선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혼란한 시기였다. 평양의 지주였던 아버지는 국군이 진격할 때 사망했다. 간신히 남은 형과 대장은 엄마를 따라 서울보다는 파주에 머물렀다. 언제라도 이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였다.

장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아버지 시신도 수습하고 남은 재산도 챙겨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무리 쪼개도 나오지 않았다. 대장보다 10살이나 많아 삼촌뻘인 형은 정권 수립의 와중에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엄마와 머물고 있는 적성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렀다. 서울에서 올 때는 이것 저것 먹을 것은 물론 적잖은 돈도 내놓았다. 돈이 생겨 좋아했으나 엄마는 그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지 못해서 불안했고 안 다음에는 더 불안했다.

어느 날 형은 자기가 그곳의 단장이고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고 말하면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보였다. 기겁을 한 엄마는 돈도 다 필요 없으니 여기서 농사지으면서 살자고 애원했다.

죽은 남편이 순간 엄마의 눈에 다가왔고 엄마는 아들마저 잃고 싶지 않아 눈물을 흘리면서 가는 아들의 뒷다리를 잡았다.

형은 중요한 일인데 자기가 빠지면 안 된다면서 엄마가 이러면 집에 못 온다고 버럭 화를 냈다. 옆에 있던 꼬마 대장은 허리춤의 권총에 눈을 돌리면서 가죽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형은 묻지 않고 딸깍 소리를 내면서 지갑을 열고 권총을 꺼내 동생에게 들이밀었다. 검은 그것은 어린 애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웠다.

그러나 대장은 내색 없이 그것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문밖으로 겨냥하는 시늉을 냈다.

어쭈, 제법인데.

형은 그 말을 하고 도로 권총을 뺏듯이 잡아채서 다시 총집에 집어넣었다.

까부는 놈 있으면 말해.

그 말을 남기고 형은 사라졌다. 대장은 죽은 엄마와 그렇게 된 형의 흐릿한 형상을 기억해 냈다. 그 자리에 아빠는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