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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도 시체를 세고 있구나, 대장은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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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도 시체를 세고 있구나, 대장은 허탈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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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임진강을 헤엄쳐 넘었던 대원 13명의 운명은 결정됐다. 대장은 대원들이 모두 숨진 것을 확인했다.  다만 자기 다음가는 계급을 가졌던 준장이 어디있는지를 모를 뿐이었다.

그 역시 죽었을 것이다. 그는 부대장 준장이 죽었다는 확신이 들자 모두가 죽었구나 하고 한 번 더 마음 속으로 되내었다.

그는 살아남아서 대원들의 무덤에 술 한 잔 따라 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무덤에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부모, 자식과도 연을 끊은 지 20년이 넘었다.

혹 작전이 성공해 살아 돌아갔다면 그래서 원하는 것을 상부에서 물으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고 짧게 말하고 싶다는 소망을 되살리고 싶지도 않았다.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죽음의 순간에도 대장은 품위를 지키고 싶었다.

소장 계급장의 지위와 위엄을 유지하면서 그것이 가지는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오로지 대장의 몫이었다.

대장은 남은 총알 한 방으로 자신의 숨을 스스로 끊기 위해 총신을 목에 댔다. 평소에는 싸늘했던 총구가 이미 발사된 총알의 열기를 다 식기지 못해 순간 목이 타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숨은 끊기지 않고 연장됐다. 화들짝 놀란 그는 총신이 목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른 체 얼른 손으로 뜨거운 부분을 만졌다.

뎃구나.

그는 손으로 덴 목을 만지면서 화상연고를 챙겨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동무들, 날래 오라우, 하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소리들 사이로 저쪽으로 가기 위해 나는 비둘기 떼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허리춤에 찬 대검을 꺼내 들었다. 뜨거움에 놀라 떨어진 총을 집을 새가 없어 총대신 칼을 잡았다.

잘 벼린 대검은 그 순간 떠오른 해와 부딪쳐 반짝 빛났는데 절박한 상황에서 구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오래가지 않고 짧게 끊어졌다.

대장은 잡은 그것에 힘을 주면서 앞으로 내밀고는 다가오면 누구든 찔러 버리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뱀이 허리는 땅에 받치고 고개만 들고 위협하는 바로 그 자세였다. 그런 자세는 땅꾼과 마찬가지로 적들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먼저 찔리기 위해 다가오는 대신 적들은 달려오다가 멈칫거렸다. 그렇다고 적들이 용감하기보다는 비겁한 것은 아니었다.

몸을 뒤로하면서 적들이 잠시 혼란한 사이 대장은 번쩍이는 비수를 앞세우고 숙였던 몸을 바짝 세웠다. 대들면 공격하겠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남쪽으로 내려온 적들 가운데 한 명처럼 그도 조선 시대 병사 흉내를 냈다. 최후의 순간에는 누구나 그런 무모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퍽퍽, 둔중한 무엇인가가 연속해서 그의 몸을 내리쳤다. 앞이 아닌 뒤로 왔던 적의 기습공격이었다. 그것은 등이며 어깨며 머리를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눈앞으로 그것이 날아올 때는 막기 위해 들었던 손이 이번에는 몸 대신 그런 신세를 졌고 그것 때문에 몸통에서 제대로 붙어 있던 팔은 이상한 상황이 됐다.

대검을 떨어트리면서 대장은 맞은 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고는 이것이 마지막 손짓이라도 되는 양 팔을 뻗기 위해 앞으로 손을 내저었다.

팔을 뻗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그런데 그 동작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무언가가 다친 팔에 강하게 떨어졌다. 아픈 데를 다시 맞자 대장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됐다.

이제 죽었다고 대장은 생각했다. 죽는 것은 별거 아니었다. 사는 것만큼 고되지도 않았다. 잘 됐다. 그 순간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수령의 목을 따러 왔다고 고함을 지르기보다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았다. 미리 써 논 유언장 같은게 있다면 엿이나 먹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죽음 대신에 내던지고 싶었다.

쓰러진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숱한 얼굴 사이에 박힌 눈동자들을 보았다. 그 눈동자들이 한 말이 있으면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다물었던 입을 열고 그는 동무들, 수고 많았소, 라고 적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마른 수건을 쥐어 짜듯이 한 마디 했다. 같잖은 소리를 지껄인 것은 실제로 그들이 지금 순간, 수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대장은 그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제일 먼저 달려 들던 가장 용감했던 적의 수비대장은 그가 지르는 소리에 엉뚱한 놈이라는 듯이 힐끗 쳐다보고는 목을 오른 발로 밟았다.

그것을 신호로 적들은 대장의 손과 발을 같은 방법으로 밟았다.

그는 숨쉴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도 하지 않았다. 흑인의 목을 누르는 백인 경찰 흉내를 내고 있는 그들에게 그런 말은 되레 적의 사기만 올려 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일 수 없던 대장은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 상태를 확인한 수비대장은 말 대신 눈짓으로 어디론가 끌고 가라는 시늉을 했다.

다음 지시를 기다리던 역할 분담을 끝낸 3명의 적은 머리와 몸통과 다리를 들고 광장을 가로지르기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

드는데 걸리적거리는 소총을 가로로 맨 그들은 처음에는 대장을 세웠고 그 스스로 걸을 수 있는지 확인했으나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설 수 없어 흐느적거리자 끌고 가는 대신 들고 가기로 작전을 바꿨다.

들려진 대장은 창피했다. 대장이 계급의 체면도 잊고 몸을 가누지 못한 것은 정신력 부족이 아니었다. 누구나 정신을 잃기 전에 흔히 드러내는 것과 같은 몸짓을 대장도 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정신 줄을 놓기 직전의 상황에 대장이 몰렸고 적들은 그것이 거짓이 아닌 진실인 것을 간파했다.

광장을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본의 아니게 가로지르는 대장은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자신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고 맞았다.

광장에는 한 곳으로 모으라는 적 수비대장의 지시에 따라 죽은 대원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서울의 시체처럼 평양의 시체들도 세기 좋게 나란히 하늘을 보고 누었다.

적들도 시체를 세고 있구나, 대장은 생각했고 그 생각 역시 틀리지 않았다. 적들이 시체를 세기 위해 손가락을 꼽고 있는 동안 대장은 간첩을 잡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녔던 어린 시절의 한구석에 생각이 머물고 있음을 알았다.

코흘리개 소년으로 돌아간 대장은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짧게 웃음지었다.

들고 가던 적들은 대장의 그 웃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달리 특별한 행동 대신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팔을 위로 들어 올리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들것도 없이 그냥 맨손으로 들고 가기에는 바른 자세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시로 가을 곡식을 추스르는 것처럼 위아래로 흔들어 들고 가기 좋은 상태를 만들었고 그때마다 대장의 몸 구석구석에서는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적들은 자기 피가 아닌 다른 사람의 피가 손에 묻고 옷을 적시자 얼굴을 찡그리고 어서 손에서 더러운 물건을 떼어 놓아야겠다는 듯이 걸음을 빨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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