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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17:47 (금)
위기의 순간에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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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에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라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3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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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로 대장이 지시한 곳은 동상 아래였다. 그전에 대장은 폭파 대원 두 명을 다시 문 쪽으로 보냈다.

아무래도 재폭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평소 습관을 따른 것이다.

그런 지시를 내린 대장은 두 명의 대원이 뛰는 것을 보고 반대쪽으로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었다. 거대한 동상 두 개가 광장을 향해 손짓하는 곳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정해진 곳에 도착하자 대장은 둘씩 짝지어 사주경계를 명령했다. 대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벌써 그렇게 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향한 총신이 가볍게 떨렸고 떨리던 것이 멈출 즈음 대장은 다리 아래는 엄폐물로는 괜찮은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쪼그리고 앉았으나 겨우 동상의 정강이 정도밖에 오르지 않아 멀리서 본다면 사람이 그러고 있을 거라는 인상을 주기 어려웠다.

일어서도 사타구니에 머리가 닿을 염려가 없을 만큼 동상은 크고 웅장했다. 누구나 압도될 만한 크기 아래서 생명에 대한 안전을 조금 확보하자 대장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두 손 들고 밖으로 나가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마도 임박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영웅적 행동으로 보상받고 싶은 심리 때문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영웅적이 아닌 영웅 그 자체의 표본이었다. 그런 자신이 대장은 자랑스러워 빨리 죽었으면 하는 조바심이 일기도 했다. 과감하게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감격이 어디 있겠는가.

대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아무리 대장이 가자고 해도 살기보다는 죽는 목숨인데 기꺼이 그러겠다고 강제아닌 자발로 나선 것에 대해서는 대장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영웅의 칭호는 아니더라도 소영웅 정도의 대우는 받아 마땅했고 그것은 자신이 아닌 역사가 기록해야 한다. 교과서조차 멀리했던 그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는 자부심은 거대한 동상이 주는 위압감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대원 중 하나가 다리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가지고 온 폭탄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더 쓸 곳이 없었다. 눈치를 챈 대장은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말을 한 대원은 잽싸게 다리 주위에 폭발물을 매달았다.

연습용 모래 자루를 발목에 댄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동상의 다리에 매달리자 잠시 대원들은 웃음으로 동상의 주인공을 조롱했다.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작전을 연기하고 폐기한 그들조차 대원의 일부가 이곳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지금쯤 행방을 찾기 위해 섬이나 뒤지고 있을 뒤처진 자들의 용기 없음을 대장은 깔보면서 어리석은 자들에게 침을 뱉었다.

계급이 깡패이지 그들은 자신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완장을 차고 조교 모자를 썼을 때도 그들은 제대로 된 명령을 하달하지 못했다.

수시로 대장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지시한 것보다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더 옳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지만 훈련 중에는 감히 꺼내지 않았다.

말이 곧 법인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라고는 죽음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었고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가소로운 자들이었다.

겨우 중사나 대위 정도의 계급장으로 자신을 노예로 대하고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마치 철학자처럼 으스댔던 자들이 이런 자신의 행동을 감히 평할 수 있을까, 대장은 어깨를 추스렸다.

한 번은 소장이 훈련 점검을 나온 적이 있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게 전투모를 깊게 눌러 쓰고 실탄사격과 수류탄 투척을 눈앞에서 시범 보기를 원했다.

아군과 적으로 나눠 진행된 훈련에서 실제로 대원 3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소장은 사격이 빗나가면 옆에 있는 훈련대장 중령에게 조인트를 사정없이 날렸고 수류탄 투척으로 상대방이 죽기 전에 피할 때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죽지 않고 살았다는 이유였다. 그 소장보다 자신이 못 할 것이 없었다. 싸움에서 죽어야만 작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죽지 않고, 죽이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전투였고 그러기 전에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대장은 누가 알려 주기 전에 터득했다.

이미 정신으로도 모래섬의 훈련대장에 앞섰던 대장은 그들을 조무라기처럼 작게 보았고 지금은 모래알 정도였다.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더 그랬다. 그런 자들을 위해 죽음을 바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 번 더 어깨를 들썩였다. 그에 따라 소장 계급장도 따라 움직였다.

계급장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리라. 별 넷을 달았어도 과하지 않았다. 원수 칭호조차 부족했다. 대장은 그런 넘치는 위상에 만족했다는 듯이 엷은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이런 과감한 작전을 시행하고 동상의 다리 밑에 있는 존재만으로 그만한 가치는 차고 넘쳤다.

두 대원은 폭약을 설치 후 동상 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애초 피신했던 계단 아래서 다음 작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이 오라고 손짓한 것은 그 다음이었고 그래서 후폭풍을 피하자 마자 그러리라고 다짐하고 다음 동작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동됐다.

이미 한 차례 공격으로 반쯤 허물어진 기둥과 대문은 두 번째에는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 진다는 계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건 니 생각일 뿐이다. 이런 질문을 독자가 한다면 맞다고 대답해야 하는 나쁜 결과가 나왔다.

두려움이 얼굴로 몰려오기 전에 번개처럼 앞으로 튀쳐 나간 대원들은 성공을 표시하는 오른 주먹을 들지 못했다.

아까처럼 줄을 끌고 계단으로 뛰어내리는 동일한 동작 후에 이어지는 폭파음 소리는 겨우 피지지익, 하는 작은 소리만 남긴채 모락모락 연기만 피어올랐다.

누군가 다시 작약을 손보지 않는다면 장착된 폭약은 그 자리에서 그 상태로 얼어붙고 말 것이다. 대장은 완전한 실패 앞에서 두 대원을 동상 쪽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손을 앞으로 펴면서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이리로 급히 올라는 신호였다.

그 순간 저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면서 서라, 하고 짧게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합창이 아니고 단말마로 한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대장은 알았다. 그는 그쪽으로 총구를 돌리면서 동시에 검지를 구부리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서라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순간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저승길에 올랐다. 저쪽 지붕에서 피를 흘리는 자를 지켜보고 있던 비둘기들이 다시 이쪽 지붕으로 날아와 앉아 이번에도 피를 흘리는 사람을 내려다 보았다.

내려다 보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비둘기는 여전히 피를 보고 있었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땅에 내려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듯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잠시 후 광장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새벽빛이 푸른색을 잃고 붉은 물이 살짝 비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주변이 밝아 왔다. 구름 속에 갇혀 있던 해가 드러나면서 광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폭발음이 처음보다 더 크게 들렸다. 10초 후 찍히도록 사진 설정을 해놓은 것처럼 뒤늦게 폭탄이 터지자 미리 대비하고 있지 못했던 계단 아래의 두 대원은 귀를 손으로 막으면서 공처럼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동상 쪽으로 뛰려고 한 발 내밀었던 다른 대원 역시 그 자리에서 몸만 아래로 대고는 죽든지, 살든지 지금은 그래야 한다고 다른 행동은 할 수 없다고 모든 동작을 멈춰 버렸다.

대장은 그 모든 광경은 한눈에 담았다. 손을 목으로 가져가면서 쓰러지던 서라, 라고 외쳤던 적이 쓰러지는 것과 연기가 더 세게 올라가면서 소리가 나고 파편이 튀던 저쪽의 상황까지 대장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가까이보다 멀리서 보니 폭발의 위력이 더 실감 났다. 소리의 크기와 퍼지는 연기와 파편의 흩날리는 각도가 이번에는 성공인가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다. 반반의 가능성이 그 순간 대장의 머릿속에서 들었다.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곳으로 대장은 대원을 끌고 뛰었다.

그들이 뛸 때 사람이 많아 걸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시간 지체가 없이 그들은 다시 두 명의 대원과 계단 아래서 합류했다.

터지지 않았다면 대장이 있는 쪽으로 두 명의 대원이 왔을 것이다. 합류하고 나서 대원들은 다시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그들이 달려온 광장은 이내 조용해 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출근하려고 그 길을 서둘러 가로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서처럼 운동하려고 나온 아침형 인간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고할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대원들은 다시 떨어져 내린 문짝 사이로 불나방처럼 뛰어들 준비를 마치고 대장의 지시를 기다렸다.

폭발에 참여했던 두 대원은 대장 무리가 오기 전에 다시 기둥 쪽으로 뛰어갔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서 보니 틈이 보이지 않자 두 대원은 동시에 미닫이문처럼 손으로 열기 위해 양손을 펴는 대신 몸으로 세게 부딪혀 보았다.

그러나 몸은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반동으로 다시 뒤로 밀렸다. 이번에도 문은 폭파되지 않았다. 견고한 대리석은 이런 것이다.

좀 비싸도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든 궁전 앞에 대장은 무력감을 느꼈다. 이곳은 부실공사도 없단 말인가. 그는 이마를 짚으면서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달려오던 적의 무리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지 대장은 알지 못해 더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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