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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몬테크리스토 백작> (1845)-복수가 신의 영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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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몬테크리스토 백작> (1845)-복수가 신의 영역이라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7.20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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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어느 한적한 시골 섬마을에 마음씨 착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 청년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면 정말로 옛날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모든 옛날이야기가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그런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 역시 옛날이야기인 것은 틀림없다. 이야기의 배경이 파리혁명 당시고 작품이 나온 시기는 그에 관한 후일담이 활발하게 이어지던 때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도 더 지난 일이니 옛날 옛적에, 라고 쓰고 시작해보자. 그러고 보니 정말 옛날이야기가 맞다.

그 옛날에도 지금과 같은 비열한 작태가 있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못난 인간의 심성은 마음 곱고 능력 있는 청년을 괴롭혔다.

청년에게는 늙은 아버지가 있었다. 그 늙은 아버지는 모든 세상의 아버지가 그렇듯이 아들의 무운장구를 빌었다. 다행히 아들은 빗나가지 않았다.

서두에서 마음씨 착하다고 말했고 바로 앞부분에서 능력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 청년의 앞날은 당연히 창창했다.

상선의 주인 모렐은 19살의 어린 에드몽 당테스를 1등 항해사도 모자라 갑작스럽게 공석이 된 선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 나이에 선장이라면 선주의 신임은 물론 탁월한 항해술 그리고 선원과의 화합 같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똑 부러지게 해나갈 것이다.

귀환하는 당테스의 마음은 선장이 되면 돈도 지금보다 많이 벌고 그러면 아버지를 부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메르세데스와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부푼 마음으로 항구로 돌아오는 그의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면 틀림없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행운 뒤에는 불행이 따라 다닌다는 속담은 이번 기회에는 틀리기는 바랐으나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시기하는 회계사 당글라르는 부아 심에 속이 부글부글 타들어 간다. 저놈이 없으면 자신이 선장이 될 수도 있다.

메르세데스의 사촌 페르랑 역시 저 녀석만 사라지면 메르세데스가 자기 차지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당테스의 적은 벌써 두 명이다.

▲ 당테스가 섬에 갇힐 때 독자들은 분노로 두 주먹을 불끈쥔다. 14년 옥살이 후 섬에서 탈출할 때 독자들은 쥔 주먹을 활짝펴고 박수를 친다. 섬에서 고통받았던 당테스는 섬에서 행복을 찾는다. 복수와 용서, 한 편의 길고 긴 대하 드라마는 마르세유에 가면 이프섬에 들러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 당테스가 섬에 갇힐 때 독자들은 분노로 두 주먹을 불끈쥔다. 14년 옥살이 후 섬에서 탈출할 때 독자들은 쥔 주먹을 활짝펴고 박수를 친다. 섬에서 고통받았던 당테스는 섬에서 행복을 찾는다. 복수와 용서, 한 편의 길고 긴 대하 드라마는 마르세유에 가면 이프섬에 들러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여기에 출세를 꿈꾸는 검사 빌포르가 가세한다. 당테스가 의심하지 않는 세 명의 적이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적은 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만 당테스는 적을 적이 아닌 아군으로 착각한다. 이런 정보의 불균형은 애초 싸움이 되지 않는다.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거나 다름없다.

세 명은 공모를 통해 악명 높기로 유명한 이프 섬의 감옥으로 당테스를 처넣는다.

약혼식 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날,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 당테스는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는 감옥에서 무려 14년 동안 갇힌다.

분노와 좌절 그리고 자살의 유혹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그런 어느 날 에드몽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또 하나의 죄수를 만난다.

로마 가톨릭 파리아 신부를 통해 그는 철학 문학 예술 종교 정치 경제 등 기품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모든 분야의 학문을 섭렵한다.

살아서 나가야 하는 존재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파리아 신부를 통해 그가 왜 감옥에 갇혔고 그를 감옥에 가둔 세 명의 범죄 행각을 확실히 알게 된다.

오랜 감옥 생활에 늙고 지친 파리아 신부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저 세상으로 떠난다. 떠나기 전 그는 당테스에게 몬테크리스토 섬에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간수들은 믿지 않고 미친 신부라고 거들떠보지 않지만 신부의 시체와 바꿔치기해 탈옥에 성공한  그는 섬에서 진짜로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보물을 손에 넣는다.

당테스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됐다. 복수의 칼을 서서히 갈기 시작한 당테스는 탈옥 후 10년이 되자 페르랑, 당글라르, 빌포르를 찾아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

감옥에 들어간 지 24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이다. 그 사이에 세 명은 승승장구했다.

무심하시지, 신이 있다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게 페르랑은 육군중장이 됐다. 그리로 모르세르 백작으로 프랑스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신부는 당연히 메르세데스다. 둘 사이에 알베르라는 이름의 똑똑한 아들이 태어났다.

당글라르 역시 성공 가도를 질주해 파리에서 가장 신임받는 대 은행가가 됐으며 사람들은 남작으로 그를 대우하며 우러러본다. 예쁜 딸 외제니가 있다.

악랄한 검사 빌포르는 검사 최고의 자리에 올라 많은 사람들을 단두대의 처형대로 보내고 있다. 그가 몇 글자 끄적이면 어느 누구도 시퍼런 칼날을 피할 수 없다. 훗날 모렐의 아들 막시밀리앙을 사랑하는 발랑틴이 가문을 더욱 빛낸다.

복수의 과정은 질기고 치밀하고 끈질기다. 여기서 그 세세한 이야기를 다 전할 수는 없다. 그 복수의 결과가 어땠는지도 설명하려면 일박이일은 걸려야 한다.

그러니 수고 높더라도 독자들은 이름만 알고 아직 읽지 않았다면 추리소설 같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바로 집어 들어야 한다.

읽고 나면 누가 어디서 부소니 신부니 선원 신드바드니 월 모어 경이니 하고 떠들면 아는 척 웃는 표정 대신 기꺼이 끼어들어 한마디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젊은 사람들의 낭만과 사랑, 우정과 배신, 복수와 음모 등이 천연색으로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껍거나 여러 권으로 나눠 번역됐다고 해도 지치지 않고 하나도 어렵지 않으니 그저 심심풀이 땅콩을 먹는다는 심정으로 읽어도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혹은 그런 우연이 연속으로 가능하냐고 따질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설명해 줄 사람이 없다.

복수하는 자나 복수 당한 자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저세상으로 떠난 지도 기억에 가물대기 때문이다. 시비 걸 생각 대신 재미있게 읽고 인간이 과연 인간일 수 있는 명확한 존재의 이유를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것만으로도 독서의 효과는 충분하다.

: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신의 다른 이름이다. 신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을 인간인 그가 척척 끝내고 있다.

신이 아니라면 적어도 신의 대리인 혹은 하느님의 중간자 정도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가 세트장의 배우들처럼 맡은 역할을 오차없이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복수가 지나치다고 말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당테스를 감옥에 보낸 세 명을 악마라고 칭했으나 나름대로 그럴만한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페르랑은 메르세데스를 당테스만큼 사랑했다. 메르세데스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페르랑이 살아서 말할 기회가 있다면 내 죄는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했을 뿐이다, 라고 당당히 항변 했을 것이다.

당글라그라고 변명이 없겠는가. 당테스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그에 못지않다. 그런데 새파란 자가 자신을 제치고 선장이 된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시샘할만하다. 그 역시 마이크를 들이대면 이게 세상 이치냐고 삿대질 할 것이 뻔하다.

연속된 독살, 그 자신은 미치광이가 된 검사 빌포르는 할 말이 더 많다. 그에게는 말이 아닌 펜이 주어져야 한다.

그 펜으로 흉악한자의 죄목을 유려하게 써 내려가듯이 그에게 ‘빌포르가 당테스를 감옥에 보낸 기소 이유서’라는 가제를 붙여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빌포르는 ‘...이유서’에서 자신은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서두를 시작하고는 반란자 나폴레옹 편에 섰다고 오해 할 수 있는 자를 그 정도로 처벌한 것이 과연 한 가문이 작살 날 정도로 비난을 받을 만큼 중범죄냐고 재판장에게 훈계조로 반격할 것이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듯이 그들 역시 그들이 처한 나름대로의 이익이 되는 이유로 당테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러면 당테스의 복수는 정당한가. 신의 이름으로 묻고 싶다.

모르세르를 자살하게 만들고 당글라르를 파산시키고 빌포르가 미친 자가 된 것은 과하다고 질책할 수 있는가.

그것이 비록 용서는 인간이 하고 벌은 하늘이 내린다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해도 그렇게 의구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반면 복수는 복수, 용서는 용서라는 테제도 형성되는 만큼 아버지가 잘못했어도 그 자식이 죄가 없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되도록 방향을 이끌어 주고 해피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백작은 복수의 화신이면서 용서의 아이콘이다. 아닌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 토를 달고 싶은 사람은 토를 달아도 상관없다.

한편 신분을 드러낸 백작이 메르세데스와 상봉 했을 때 다른 사람은 척 봐서는 전혀 모르고 자주 만나서도 모르는데 첫눈에 알아본 내 사랑 메르세데스를 만나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절절하다는 것만 밝힌다)

왕족이었다가 백작의 노예인 젊고 아름다운 하이데와 백작과의 관계에 호기심이 이는 사람도 당연히 생길 것이다. 그 호기심은 친절한 독후감이라는 평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지면보다는 원서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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